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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흥미를 위해, 휴식을 위해 그리고 정서 고취를 위해 음악을 감상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어떠한 경우이든 간에 사회의 환경정화를 위해 반가운 현상이다. 좋은 음악은 정서함양은 물론 인간의 성격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인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한국인이 한국 음악, 즉 국악을 소홀히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음악, 우리의 가락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종종 있지만 단지 형식과 오락으로 흘려버릴 뿐, 우리 음악 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이치를 알려하지 않는 모습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또한 우리 음악을 가르치는 스승들도 우리의 모든 것을 가르치기는커녕 돈벌이로 보는 사고에서 우리의 음악을 생활도구로 이용하는데서 더욱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음악, 우리의 가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의 피 속에 유유히 흐르는 민족 특유의 숨결을 읽어야 한다.

하나의 가락이나 율동은 반드시 호흡과 리듬을 가지고 출발한다.
한국민의 정신적인 바탕은 삼재(天地人)사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천지인 삼재는 바로 단군사상인데, 한민족의 태동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맥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에서 기록으로 전하는 조상들의 생활인 부여의 영고, 고구려 무천 등의 제천의식은 바로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됨의 의식인 것이다.

시조단군을 비롯한 47대 단군들은 일찍이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으로 주술적인 노래와 춤으로 천재를 주관하는 군주요, 제사장인 것이다. 우리민족의 리듬과 가락은 구체적으로 “정동중”의 가락이요, 리듬이다,
그것은 “동중정”의 가락을 원칙으로 하는 서양음악이나 무용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약”에서 “강”으로 흐르는 것은 “정동중”이요 “강”에서 “약”으로 기울면 “동중정”이다. 쉽게 보면 강약, 중강약으로 행해지는 서양음악은 “동중정”이요, 누들강변이나 진도아리랑처럼 약에서 강으로 흐르는 것은 “정중동”이다. 정동중은 집해결탈(集解結脫)의 공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의 정중동과 서양음악의 동정중의 리듬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의 역사를 개관하면 그들은 원래 비좁은 생활 터전에서 먹이를 구하는 습관상, 인간과 자연을 따로 구분하였고 자연은 인간에 의해 늘 파괴돼왔다. 즉 자연에서 먹이를 얻기 위해 자연자체를 공격하여 정복하고, 지배해야 했던 생활이 서양인의 정신을 관장하는 모태가 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과 달리 동양의 문화는 그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공격과 지배에 앞서 이것과 저것을 나누지 않고, 모든 사물을 하나로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자연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혜는 파괴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보호와 성찰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연을 보는 관점에서 서양정신과 동양정신이 다르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정동중, 동중정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이고 난해한 문제를 끌어내기 보다는 사물의 형성과정을 보는 동안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가져서는 안된다. 한낮이 어둠으로 익어가는 현상을 살필 때 강.약, 중강약의 법칙이 없다면 한낮과 밤중의 사이에 저녁노을 같은 과정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밤이 아침이 되는 과정에도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물의 움직임에 그러한 동작이나 리듬은 없지만 우주의 운행질서는 이러한 이치 없이 순리 자연적으로 공정하게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과 정복으로 지새워 온 서양의 직선적 감각에 의해 그들의 문명은 지속해왔다. 그리스나 로마의 미술과 음악이 경쾌하고 상무적인 직선적 율동으로 터를 잡고 칼과 방패를 든 전사를 찬양하여 나타낸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낚시대를 드리우고 살아온 이들은 자연의 귀의나 합일이 전제되기 때문에 곡선적 감각으로 우주와 자연을 꿰뚫어 왔던 것이다. ‘정동중’의 문화와 ‘동중정’의 문화는 이러한 차이가 있으며, 문화의 차이를 모른 채 음악을 안다는 것은 넌센스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서양인들은 노래와 춤을 별개고 구분하여왔다. 그러나 한국인은 노래와 춤을 별개로 나누지 않고 상고적 제정시대부터 “가무”라 하여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다. 음악과 무용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쪼개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습관인 것이다. 저 넓은 만주나 삼천리가 그대로 금수강산이며 사계절 철따라 자연의 느낌과 흥이 다른 속에서 맛과 멋을 다듬는 창조의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사람들은 한민족의 예술정신에 대해 말할 때 백제나 신라의 미술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미술에는 한민족의 노래와 춤이 배경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국유사에는 도솔가를 불러 왜적을 물리쳤다는 월명사,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연주했다는 백결선생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명산대첩을 찾아다니며 수련을 한 화랑들도 실은 노래와 춤을 추며 무가의 주술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노래하는 민족, 춤추는 민족, 흥을 아는 민족이다.

한민족의 노래와 춤은 우리의 산하에 응어리진 대기와 물소리에서 나온다. 그리고 솔바람소리, 학의 춤 같은 자연의 율동 자연의 가락으로 되어있다. 한국의 춤은 서양의 발레와는 다르다. 직선적인 것 같지만 곡선을 그린다. 저고리의 소매꼬리에 달린 선은 기와지붕의 선을 방불케 한다. 장구춤과 판소리의 선도 서양의 음표 따위로는 도저히 표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일년 24절기를 모체로 한 진양조, 일년 열 두 달처럼 열 두박으로 역어진 중모리, 호흡의 내면이 흥으로 급해지면 중중모리, 흥이 더욱 거세게 되어지는 자진모리, 질풍처럼 또 소낙비처럼 들판을 뒤흔드는 휘모리 등, 그 모든 율동과 가락은 자연의 이치를 인간의 차원에서 수용하고 소화하여 인간의 호흡으로 이룬 것이다. 바로 한국인은 삼재사상에서 우주와 하나 되려 하는 천인합일의 천손이요. 맛과 멋과 흥이 함께 어우러진 자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