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의 영토는 작은 토끼 모양의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배웠다.
어려서 해방을 맞고 곧이어 6.25전쟁. 그리고 연속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한국 역사가 어디 옳고 그른지 의심해 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저 배운대로 우리는 때리면
맞고, 하라면 하는 순하고 착한 복종형의 작은 토끼 같은 백성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세계 지도를 볼 때마다 좁은 한반도, 그나마 두 토막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에 마음이
답답하였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그 넓은 대륙을 만끽하며 세계가 좁다고 헤매고 다녔다.
1981년에 사업차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나를 만리장성까지 안내한 사람이 “김
선생 고향이 가우리지요? 사실, 옛날 같으면 이 장성 밖부터는 벌써 김선생의 나라가
아니었겠소?” 하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국과 그 역사에 대해
망각속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심봉사가 눈을 뜨듯 외마디 소리를 내뱉은
나는 그 후 계속해서 만주를 가로질러 여러 옛 도시들을 돌아보는 동안, 우리역사 속에
무언가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김성호씨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일본사기, 중국오천년사 등 미국, 홍콩, 대만. 중국. 일본. 북한 등 각지의 조선 역사나 동양 역사에 관한 수십 종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고 연구하다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우리글로 기록되어야 할 우리 역사서들이 하나같이 뜻 글인 한문으로 기록됨으로써 발생하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영어의 올바른 한문 표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말의 발음도 한문으로 표기하기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은 서울을 한성이라고 쓰고, AMERICA를 미국이라고 쓰니, 발음이 중요한 남의 고유명사를 제멋대로 조작하여 적음으로써 그 의미를 변질시키는 것이다. 똑같은 이치로, 우리말로 된 우리의 옛 나라 이름, 땅 이름. 사람이름을 모두 자기들 귀에 들리는 대로 썼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우리의 역사 자료를 모두 무시해 버린 이 땅의 한학자들이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써 놓은 역사서를 그대로 옮겨 베끼면서 우리의 이름들을 중국식 한문 풀이로 해석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발견은, 내가 우리의 민족사로 생각했던 한국의 사서들이 사실은 실라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지방사였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중화족을 집안 싸움에 끌어들여 동족을 죽인 후 중국식을 따르고 모방하며 스스로 소중화로 행세하고, 중국의 적을 자신들의 적으로 삼아, 중국과 맞서 싸운 만주 지방의 우리 겨레를 모두 오랑캐라 불러서 우리 역사로부터 뚝 잘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역사를 전공한 일도 없고, 따라서 어느 학파에 소속될 이유도 없으며, 또 한번 내세운 이론을 싸워 지켜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이 애써 발표한 각종 논문이나 저서들 중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그러한 입장에서 나는 잃어버린 민족사를 다시 복원해 보려고 내 나름대로 무려 7년간을 애썼다.
그러는 동안 자연히 하던 사업도 내던지게 되고, 내 온갖 정열을 여기에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모양이 되든지 만들어 보려고 우리 역사의 모든 단서와 사료 조각들을 짜 맞추어 어려운 퍼즐을 완성하고 보니, 그 모양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아니고 씩씩한 기상으로 동아시아의 대륙을 호령하던 거대한 호랑이였다.
참조한 책과 논문, 기타 자료들이 대부분 전문적이어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어렵기도 하고, 또 지루할 것 같기도 하여, 생각 끝에 오래간만에 다시 붓을 들어 알기 쉬운 그림책으로 엮기로 하였다.
특히,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 2세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올바로 알게 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뜻으로 영어나 일본어판의 번역 출판과 그 지역으로의 보급까지 생각하여 저술하였다. 물론 짧은 시간에 묻혀진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복원, 정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대로 교정판을 낼 생각이지만, 선입견 없이 자라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 학자들에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이 그들이 가야 할 길의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단기 4326년 9월 다물해야 할 땅 만주에서
저자 김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