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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가 世界史 왜곡”

강철구 교수 “균형잡기 위해 연구회 출범”
입력 : 2005.01.23 17:32 28'




“서유럽문명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문명을 부각시키기 위해 구미(歐美) 학자들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아프리카문명을 왜곡·과소평가했다. 북아프리카 문명의 일부인 이집트문명은 아리아족이 만든 것으로 강변됐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전제·부패·폭력 등이 특징으로 해석됐다. 또 그리스문명은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과의 관련이 단절됐고 비잔틴문명·이슬람문명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도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화여대 강철구(姜哲求·57·서양사) 교수가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에 의해 왜곡됐다”며 “유럽사가 세계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19세기 이전의 역사는 각 문명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다(多)중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최근 펴낸 ‘역사와 이데올로기’(용의숲)에서 “구미 학자들이 서유럽의 역사를 보편적인 문명사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과장과 은폐를 통해 세계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에게 서양사를 가르치면서 ‘서양의 영광’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습니다. 신화가 사실을 덮어버린 가장 큰 예는 서양의 근대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서 시작했다는 인식입니다.” 14~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에 개인의 자각, 인간 중심적 태도, 자연의 과학적 인식, 근대 국가 등 서양 근대문명의 중요 요소들이 나타났다는 주장은 19세기 역사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실제로는 18세기에 와서야 그 같은 가치와 현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럽중심주의를 퍼뜨린 학자들은 헤겔·마르크스·베버 등 19~20세기 초의 거장뿐이 아니다. 브로델·홉스봄·월러스틴 등 20세기 후반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16세기 이래 세계 경제는 서유럽이 중심, 남동부 유럽이 반(半)주변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가 주변부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18세기까지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은 중국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세계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기존 학설의 해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럽중심주의의 바탕에 깔려 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함께 비(非)유럽적 전통을 계승하는 새로운 관점과 사관(史觀)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강철구 교수는 “보다 균형잡힌 세계사 인식을 위해서는 동·서양사, 국사를 아우르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료 학자들과 ‘세계사연구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