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입니다

낙랑문화 주체는 漢人아니다”

: 1 : 0




‘한(漢) 4군’의 하나인 낙랑군(樂浪郡)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중요하지만 학계가 애써 외면한 주제다. 사료 부족, 유적이 북한에 있다는 한계도 있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라는 그동안의 학설이 새로운 논의와 연구를 껄끄럽게 했다. 최근 고고학 자료를 분석, 낙랑군의 역사적 성격을 조명한 논문이 나와 고고·역사학계에서 화제다. 중앙박물관 오영찬 학예연구관의 박사학위 논문 ‘낙랑·대방군 지배세력 연구’. 새 시각을 담은 논문으로 낙랑군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지 주목된다.


◇낙랑군과 갖가지 해석=낙랑군은 한나라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계승한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진번·임둔·현도와 설치한 ‘4군’의 하나다. 토착세력에 눌려 곧 사라진 다른 군과 달리 낙랑군은 313년까지 420년간이나 평양 등 한반도 서북쪽에 있었다.


논란은 있지만 낙랑문화는 고조선과 삼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대세다. 당시 삼한은 낙랑과의 교역을 통해 나무덧널무덤(목곽묘)과 같은 묘제를 비롯, 새 문물과 기술도입으로 한층 더 발전했다. 고고학적으로 삼천포 늑도·창원 다호리·경주 조양동 유적 등이 낙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낙랑문화에 대한 해석은 동북아 각국마다 다양하다. 1900년대초 낙랑유적을 처음 발굴한 일제는 낙랑군을 한반도 지배의 이론적 근거로 접근한다. 식민사관인 ‘타율성론’으로 한국의 역사는 북쪽에서는 한나라 식민지인 한사군, 남쪽은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에서 시작됐다는 것. 한국은 자체적 동력이 아니라 타율로 발전했으므로 일본의 지배는 역사적으로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해방 이후 발굴에 나선 북한은 한나라 식민지로서의 낙랑군을 부정한다. 평양의 낙랑문화는 한나라가 아닌 고조선 속국인 ‘낙랑국’의 문화라는 것.


남한에서는 일제 식민사관의 극복이 덜 된 상황으로 식민지 수준보다 낮은 단순한 경제적 거점설, 낙랑군 영향력의 부정 등이 있지만 연구가 미미하다. 근래엔 낙랑문화는 한나라 중심의 중원문화와 다르게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낙랑문화는 ‘낙랑인’의 문화=오 연구관은 이 논문에서 기존 시각과 다른 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낙랑문화의 주체는 한인(漢人)이 아니라 토착인과 이주한 한인이 융합돼 나타난 새 문화세력인 ‘낙랑인’이며, 낙랑문화도 한나라 중심의 중원문화와는 크게 달라 단순히 한나라의 식민문화로 볼 수 없다는 견해다. 그는 낙랑군 설치 전과 직후의 묘제 분석, 목곽묘－귀틀묘－전실묘로의 변화과정과 그 부장품을 중원문화와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낙랑문화의 주체와 성격 등을 제시한다.


또 3세기초 등장한 대방군(帶方郡)의 성격·지배세력이 낙랑군과 같다는 기존 연구에도 반기를 든다. 양 군의 지배기반과 묘제의 발전과정·유물·멸망 과정 등을 분석한 결과 양 군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대방군은 오히려 낙랑군을 견제한 세력이라는 주장이다.


오 연구관은 “그동안 낙랑고분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 소홀했다”며 “낙랑군의 지배세력과 그 역사적 성격을 밝히려 했다”고 말했다. 중앙박물관 조현종 고고부장은 “이 논문을 계기로 고고·역사학계에서 낙랑군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