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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발해호', 7천만 민족과 함께간다

'발해호' 출항, 좌초된 '발해1300호'의 한풀이용 일까

황진이 논설위원

발해뗏목 탐사대가 우여곡절끝에 마침내 출항을 하게 되었다. 최종 예정날짜는 2월 10일 오전 10시경 예인선에 의해 거진항 금강조선소를 출발, 당초 예상되었던 40여시간 보다 빠른 속도인 약 30여시간의 항해를 거쳐 다음날인 2월 11일 오후 5시경 블라디보스톡항 앞바다 공해상에서 본격 도전에 나선다.

98년도 1월, 당시 독도수호대 대장이었던 장철수씨 등 제1차 탐사대가 일본 도고섬 부근에서 암초에 좌초, 대원 전부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이 일에 본격 나서기 시작한 지 만 7년만의 출항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출항소감을 물었을 때 "출항하는 그날부터 나는 해방이다" 라는 답변은 이해가는 면이 있다. 한 인간이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각고하며 기다린 인고의 값을 생각하면 그에게 출항이야 말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남들은 거친 겨울바다와 싸울 그의 안전을 걱정하지만 그에게는 출항 자체가 성공을 의미하게 하는 '7년간의 고통스런 기다림의 현실'이 있었다. 이제 분명히 다가올 거진항 '출항'을 통해, 그만이 겪고 있던 7년간의 기다림의 현실이 '거친 겨울바다와의 싸움'이라는 현실로 대체될 것이며, 그가 꿈꿔온 '발해사 찾기' 및 민족통일이라는 이상은 그러한 새로로운 현실에 맞설 원동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 '7년간의 기다림'이라는 현실이 그에게 가한 어려움은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재원의 마련이라는 물적인 조건의 불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중과 민주를 감싸 안으면서도 고대사 회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도 그의 힘을 빼기에 충분했다.

이에 관한 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나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나 사실 별 차이가 없었다. 반도사관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도 결국 민중사학이 도달한 사관은 반도사관의 극복이 아니라 어찌보면 '자학사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민족사 적대적'이었다.

그렇다고 '발해사 찾기'에 나선 그가 반민중적이라든가 반민주적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는 충분히 민중적이며, 충분히 민주적이다. 말하자면 그에게서 민족과 민주와 민중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의 민족 고대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전통을 맹목적으로 배척하는 일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의미의 음미를 통하여 그를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적어도 내 눈에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출항'을 앞둔 지금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졌다. 그에 대한 이해를 독자들과 공유함으로써 그가 선도하는 이번 항해의 의미를 폭넓게 음미할 수 있기를 원했다.

비록 그가 빠삭한 이론가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민족과 민주와 민중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는 보기 드물게 종합적인 탐험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발해사 회복을, 민족통일을 염원하며 출항하는 그가 결코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의 항해는 결코 역사매니아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몸짓이거나 제1차 탐사대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선의의 행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중민주적 인식이 고대사와 만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의 상징에 해당한다.

한민족이 어디 남과 북으로만 분리되어 있었던가. 동과 서로도 분열되어 있었고, 민족과 민주로도 파열되어 있었으며, 다시 전통과 근대로도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이 모든 분리며 파열이며 분열을 가로지르는 그의 종합적 성격이 갖는 의미는 이해할 만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이해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발해뗏목탐사대의 성공적인 출항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은 정말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하는 거친 질문을 견뎌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파열되고 분열된 어느 한 조각만을 위한 제한된 의미의 도전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탐사대원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한 것이었던가, 아니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방대장의 역사관심의 가치에만 주목하였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같은 민중민주적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응원하고자 하였던 것인가.

이러한 논의는, 왜 그가 가야 하며, 우리는 왜 그를 사적으로가 아니라 공적으로 그를 마음 깊숙이 후원하여야 했는가 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방의천, 그리고 그의 태도를 공유하고 있는 탐사대원들은 그와같은 파열된 지점을 모두 가로지르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파편적이라기 보다는 종합적인 것이다. 파열된 조각 조각을 모두 아우르는 그와같은 종합성을 갖지 않고서야 어디 7천만 민족과 함께 이번 뱃길에 나선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하여 '발해사 회복'이라는 역사적 대의, 그것만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의 고대사 관심과 그의 민중민주적 지향성의 만남은 그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로 음미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역사찾기 그 자체의 의미가 폄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보장하지 못하지만 발해사신들의 교류항로를 복원한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 것이고, 그 중간기착지로서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염원하는 '남북통일'이라는 역사정치적 대의 자체의 의미의 음미를 또한 놓칠 수가 없다. '통일신라'에 의해 발해는 '북국'으로 불렸으며, 따라서 통일신라는 한민족사의 '남국'이었다. '발해사 찾기'는 바로 잃어버린 북국의 역사찾기이며, 그것은 '중국'에 의한 고구려사 강탈에 대한 역사적 남북간 민족공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 때문에 미래의 제3차 탐사대의 출발지로 발해의 최남단 무역항이었던 북한의 청진항이 계획되고 있는 것이며, 역사적으로는 옹색할 지언정 한반도기를 달고, 돛대 맨위에 한반도 조각품을 달고 가는 것이며,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뗏목 '발해호'의 후미에 치우천황상을 판 목각판을 붙여서 출항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에게서 전통과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는데, 이 또한 그 자체가 갖는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돛대 맨위의 한반도 조각품은 단지 한반도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돛대 자체가 소도를 상징하며, 한반도 나무조각품은 소도위의 '신조'를 상징하는데, 그것은 세발까마귀이거나 닭으로서 형상화되기도 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소도'의 형태에 대하여 간단히 예시라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언젠가 KBS 전주방송국에서 제작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중국의 광서성 백제박물관에서 촬영한 소도의 모습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 나무막대의 맨 위에는 '새'가 있고, 나무막대의 몸통은 '용'이 휘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소도문화가 우리의 정체성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인가 ? 소도문화는 기본적으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문화를 말하는데, 바로 이러한 '한 사상'은 오늘날 한국문화를 최초로 형성했던 시원문화로서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언어의 변질, 정체성을 상실한 '신인간'의 출현 등으로 인하여 극히 위협받고 있는 문화요소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류의 힘은 이러한 시원문화 뿐만 아니라 불교문화 및 유교문화, 그리고 서양문화에 대한 창조적이고 보편적 적용력을 갖춘 소화력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소도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이들 문화요소 가운데 특히 시원문화이며, 천지인 삼위일체사상이다. 이러한 시원문화요소는 그 자체로도 존재하고 있지만 불교나 유교문화의 형태로 변형되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그 영향력은 보다 보편적이고 광범위하다.

이러한 전통문화를 위협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은 바로 세속화경향이자 서구화, 미국화 경향이다. 한민족의 제천문화는 바로 이러한 경향에 의하여 약화되어 왔으며, 기독교의 인격화된 유일신사상에 의하여 '하늘'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심지어 숙고된 대안없는 호주제 폐지로 말미암아 이제 모든 사회적 네트워크 마저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이 모든 악재의 기반이 되고 있는 '한글과 한자의 파괴'가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음은 주지하는 바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발해뗏목탐사대가 내거는 소도와 삼족오의 하늘숭배사상과 문화 (일명 수두문화)의 상징화는 전통 및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굳이 '구정'을 출항일로 배려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정'다운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없이 그저 놀고 먹는 날로 전락되어 버렸지만 이번 발해호의 도전은 가장 구정다운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해호의 승무원들과 우리는 지나친 세속화로부터의 이탈, 전통적인 하늘숭배사상의 회복 등을, 내건 항해과정 및 그에 대한 음미작업을 통하여, 그리고 국민과의 공유를 통하여 일거에 국민적 민족적 관심사로 부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제반 개별요소들은 사실 민중민주라는 요소와 상합한다기 보다는 대립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방대장과 대원들의 경우 그런 걱정은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음미를 통하여 그동안 서로 대립하던 시각이 서로 통합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샘솟는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간략히 짚어 본 여러가지 의미만큼이나 중요한,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항해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의미가 새벽을 알리는 상징, 닭의 해에 구정을 깃점으로 출항하는 발해호를 통하여 온 민족에게 알려지고 공유되어 하나된 민족의 신새벽, 한문명의 신새벽을 열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또한 바로 그것을 일본 도고섬 앞에서 좌초한 '발해 1300호'의 영령들의 진정한 숙원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