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입니다

<한국사가 버린 도교, 운모가 되찾은 도교>


풍납토성 출토 선약 운모(雲母)

고대 한반도, 곳곳에 도교신학의 강한 영향력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오래 전에 멸실됐다고 간주된 화랑세기(花郞世記)가 1989년 부산에서 필사본으로 공개되고 그 진위(眞僞) 논쟁이 한창일 때 그것이 가짜임을 주장하는 한 저명한 국내 고대사 연구자는 이런 요지의 반대론을 폈다.

"찬란한 신라사를 헐뜯기 위해 누군가가 신라를 도교로 덧칠했다."
이에 맞서 그것이 7-8세기 신라 지식인인 김대문(金大問)이 쓴 화랑세기 그것을 필사한 것임을 주장하는 한 진본론자는 이렇게 받아쳤다.

"필사본에 나타나는 선(仙) 혹은 신선(神仙) 사상은 중국의 도교와는 하등 연관이 없고 신라 고유의 사상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둘러싼 진위 논쟁은 겉으로는 요란한 듯하지만 생각보다 일치하는 대목이 더 많다. 필사본 전편을 통해 매우 짙게 드러나는 도교적 성격에 대한 강제적 '추방'도 그 중 하나이다.

즉, 필사본 진본론자건 가짜론자건, 그들에 의하면 신라는 도교신학에 짙게 포위된 사회(왕국)일 수는 결코 없다.

이런 전통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강렬한 민족주의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로 연결된다. 조선적 전통을 발명하려 몸부림친 그는 공자와 중국에서 뿌리는 두는 유교, 인도와 석가를 본거지로 삼는 불교를 외래사상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외의 문화적 전통은 한국 고유의 사상이라고 자리매김하려 했다.

이런 외래사상에 맞서는 조선의 주체로써 그가 주목한 것이 고구려 상무정신과 함께 신라 화랑정신이었다.

한데 이런 그에게 고민은 화랑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이 짙은 도교적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진흥왕이 신선술(神仙術)을 매우 숭상해 화랑제도를 창설했다 했으며, 삼국사기에서는 그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산수간(山水間)을 유오(遊娛. 노닐며 즐김)한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신라 화랑도는 도교적 특성이 농후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교 교단이 되는 셈이며, 그 우두머리인 화랑(花郞) 혹은 풍월주(風月主)는 도교 교단의 지도자인 도사(道士) 혹은 천사(天師)가 된다.

하지만 단재는 화랑에 대한 이런 기록들을 모조리 가짜로 몰아대는 과격한 방법을 구사했다. 즉, 그는 그의 '조선상고사'(1931)라는 책에서 화랑에 대한 문헌의 이런 기술들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이 나온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단재건 화랑세기 가짜론자건, 심지어 화랑세기 신빙론자도 주의할 것은 그들 모두가 도교에 대한 문외한이라는 사실이다. 도교 경전 한 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작당(作黨)을 하다시피 해서 신라, 나아가 한국의 고대문화는 도교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고고학적 성과는 이와 같은 도교 추방론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1971년 기적적으로 발견되고 조사된 백제 무령왕릉은 소위 불교시대로 알려진 6세기 백제사회에 도교가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발휘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으며, 고구려의 각종 고분벽화라든가 414년 건립된 광개토왕비 또한 그 사회를 지탱한 제1의 종교사상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도교신학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신라측 성과는 더욱 놀랍다. 종래 신라는 한반도 삼국 중에서도 발전이 가장 더디고, 후진적이었으며, 그래서 중국 문화에 대한 영향이 가장 적었고, 가장 미미했다고 간주했으나, 4-5세기에 집중적으로 경주 평야 일원에 조성된 적석목곽분에서 이미 완연한 도교신학이 펼쳐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장 단적인 증거가 웬만한 규모의 적석목곽분이면 으레 세트로 출토되는 주사(朱砂)와 운모(雲母)라는 두 가지 광물질이다.

이 두 가지 약물은 후한시대에 편찬됐다고 생각되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든가 동진(東晉) 시대 저명한 도사인 갈홍(葛弘)의 저서 포박자(抱朴子), 중국 양나라 모산도교(茅山道敎) 교단의 천사(天師. 종교지도자)인 도홍경(陶弘景)이 편술한 진고(眞誥) 등의 문헌에 의하면 신선(神仙)이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복용하지 않으면 선약(仙藥) 중에서도 금ㆍ은ㆍ옥(金銀玉)과 함께 그 약효가 가장 뛰어난 상약(上藥) 중의 상약(上藥)으로 거론됐다.

신라 적석목곽분을 대표하는 문화인 다량의 금 제품과 은 제품과 옥 제품도 이제는 금속공예라는 각도에만 치중된 관점을 벗어나 그것들이 모두 약물(藥物)이기도 했다는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 남분(南墳) 피장자(被葬者) 머리쪽 11시 방향에서는 지금도 주사(朱砂) 흔적이 농후하게 확인되는 소위 돌절구(막자사발)와 봉대가 세트로 출토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3년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경주 계림로 고분군 중 제44호 출토 운모 덩어리는 4-5세기 신라사회, 특히 그 최고 권력층에 미친 도교의 영향이 얼마나 광범위했으며 막강했는지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사가 버린 도교를 운모로 대표되는 고고학적 출토 유물들이 되찾아 복권시키고 있는 있는 셈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