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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국학의 위기/노정용 문화부장

한국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한국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독일의 베를린 훔볼트대와 튀빙겐대 한국학과가 지난 2002년에 폐지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레겐스부르크대의 한국어 강좌마저 폐지됐다. 그리고 유럽 한국학 연구의 본산이라 할만한 영국 옥스퍼드대 한국학과와 미국 워싱턴대 한국학과가 폐강 직전에 국제교류재단과 동포사회의 재정 지원으로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옥스퍼드대와 워싱턴대의 예에서 보듯이 지금 한국학은 산소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겨우 연장하고 있는 중증환자와 다름없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외의 한국학과들은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모두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학과를 유지하는 데는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지만 만일 한국학과가 폐지된 후 다시 개설하려면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당장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에서는 뚜렷한 지원책도 내놓지 않은 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미네소타 주 콘코디아의 ‘한국어 마을’의 창시자 로스 킹 교수는 “지금 상태로는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만큼 세계에 알려지려면 10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 해외 한국학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적극적인 투자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숲속의 한국어 마을은 초기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재정 지원이 이뤄져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매년 자국 언어마을을 위해 수백만달러씩 쏟아붓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 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하는 6000달러가 전부라고 한다. 국내에 지자체마다 설립하고 있는 ‘영어마을’ 운영비의 10%만 지원해도 해외 한국학의 미래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킹 교수의 주장을 곱씹어보면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며 균형감각을 잃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해외 한국학의 위기는 최근 한류가 형성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을 제외하면 전 지역에서 감지된다. 특히 유럽은 한국인 동포나 이민세대의 층이 얇아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종속돼 온 게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유럽의 교과서에는 한국의 영토인 독도가 일본의 다케시마로 표기될 지도 모른다고 영국 옥스퍼드대의 제임스 루이스 교수는 경고한다.

해외 한국학이 이토록 위기를 맞은 것은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이나 중국이 일본학이나 중국학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이 유일하다. 그렇다고 국제교류재단의 재정이 넉넉해 충분히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한류와 지난 2002년의 월드컵 열기를 비롯해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날개 돋친듯 팔려나가고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상을 수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외에서의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몇몇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우수한 한국학 학자들을 양성하는데 관심을 쏟는 대신에 ‘얼굴 마담’과 같은 학자들만 후원해온 무성의한 지원책 때문이라고 이유를 손꼽는다.

실제로 해외 한국학과 교수진의 무능과 불성실은 현지 학생들로부터 한국학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게 해외 유학생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독일어권 한국학과 교수 중에서 한국학으로 교수 논문 자격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현지의 다른 인문학 교수들과 비교할 때 수준 이하의 강의를 하다보니 이같은 위기가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한국학에 관심있는 현지 학생들과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체계적인 교수 양성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현지 대학 사정에 대한 실사 없이 단지 몇몇 얼굴 마담같은 한국학 강사나 교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무차별적인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교민 자녀를 중심으로 학생을 확보하겠다는 안일한 발상을 버리고 철저히 현지 학생을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은 더 이상 해외 한국학의 위기에 대해 남의 일처럼 팔짱만 끼고 수수방관하지 말고 당장 나서라. 현지 한국학과 주변의 장사꾼같은 한국학 강사나 교수를 철저히 검증해 지원을 차별화하며 진짜 한국의 정신문화를 존중하는 한국학 교수를 중심으로 대학에 한국학 센터를 지어주라.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균형잡힌 학문하는 자세요, 경제수출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두는 일이 될 것이다.

/ noja@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