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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역사왜곡교과서 채택 저지 ‘국내 정·재계 나몰라라’

‘의견광고’ 통해 소리없이 계속되는 한·일 전쟁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2일 1000만원, 3일에도 1000만원을 더해 2000만원.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일본의 역사왜곡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성금으로 전달한 채 명함 한 장 건네지 않고 사라져버린 한 독지가.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많은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였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이하 역사교육연대)’가 일본 극우세력 ‘새로운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의 채택을 반대하는 의견광고를 일본 일간지에 내기 위해 국민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는 과정에서 최근 있었던 일이다.

이처럼 익명의 독지가를 비롯해 일반 국민들이 적은 액수라도 꾸준히 성의를 보여온 가운데 국내 정계와 재계의 호응은 거의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금운동 결과 대부분 일반 국민들 '쌈짓돈'...국내 정계·재계는 외면

역사교육연대에 따르면 지난달 4일부터 국민모금운동을 해온 결과 지금까지 3억9243만170원(3일 오후 2시 기준)이 모였다. 하지만 한겨레신문 6면을 통해 매일 공개되는 누적 기부자 명단에는 정치인과 기업의 이름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일본의 후소샤판 교과서가 집권 자민당과 우익성향 재계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김태홍,유기홍, 강창일, 이영순 등 올바른 역사교육의원모임 소속 의원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의 극우단체가 야스쿠니신사 20만 참배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감을 표명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신 꾸깃했던 주머니 용돈을 모은 전국 각지의 초·중·고등학교의 이름과 교육청, 일부 정부부처 공무원들, 육해공군 군부대가 주된 기부자들이다. 물론 ‘평화를 위하여’ ‘일역사왜곡반대’ 등 익명을 사용한 시민들과 일반인들의 이름이 1~3만원 소액 성금액수란에 줄을 잇고 있다.

1000만원이 넘는 고액기부는 서울특별시 직원일동이 그동안 모아온 성금 1억3200만원을 3일 기부한 것이 최대 금액(3일 현재 모금집계에서는 제외). 이를 제외하면 익명의 독지가 2000만원, 학습지회사로 잘 알려진 도서출판 디딤돌이 1000만원을 기부해 고액 기부로 손꼽힐 뿐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역사교육연대 관계자는 “기업의 경우 이해타산을 따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이번 기부가 연말 정산 때 기부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과 사업상 일본과 거래 관계가 있다는 것 등이 그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나라의 몇몇 대표적인 기업들은 문의를 하다가도 이후 연락을 뚝 끊었다는 것. 전국경제인연합에서 기부한 1000만원이 현재까지 재계 기부금의 전부다.

그는 “정치권도 별로 다를 게 없었다”며 “ ‘올바른역사정립’을 내걸고 있는 국회의원 모임 들에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 도쿄미쓰비시공업, 마루베니, 후지쓰 등 100여개 기업이 ‘새역모’를 후원하고 있다. 산케이그룹은 아예 후소샤를 계열사로 두고 있고 요미우리신문 등 언론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계에서는 극우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를 비롯, 아베 신조 전 간사장 대리 등 자민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한·일 소리없는 의견광고 전쟁’

이처럼 국내 정계와 재계가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 본토에서는 ‘의견광고’ 형식의 소리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교육연대가 지난달 22일 요미우리신문 전국판에 실었던 첫 의견광고.[자료=역사교육연대]

지난 역사교육연대의 의견광고에 대한 일본의 반격일까. 지난 1일 일본의 대표적 우파신문인 요미우리·산케이신문에는 각각 ‘야스쿠니 신사에 모이자’는 의견광고와 와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무죄’라는 취지의 글이 실렸다. 역사교육연대는 지난달 22일 요미우리신문 생활뉴스면 하단에 함께 동아시아 평화를 짊어질 이에게’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실었다.

요미우리에 실린 의견광고는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진행 예정인 행사 소개와 함께 ‘20만 참배운동 기금을 설치했다’며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모이자’고 분위기를 띄웠다. 야스쿠니 신사는 2차대전의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전범자 1000여명의 위패가 있는 곳. 게다가 산케이에서는 2차대전 종전 후 있었던 도쿄재판에서 11명의 판사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은 무죄라는 판결을 냈던 인도출신 펄 판사의 견해를 ‘혜안’이라고 포장하고 나섰다.

이어지고 있는 역사교육연대의 의견광고에 대해서도 일본 신문들은 그 표현 수위를 조절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일본 에히메 신문이 문제삼았던 박재동 시사만화가의 만화.[자료=역사교육연대]
역사교육연대가 지난달 29일 일본 에히메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려하자 신문측은 광고에 포함된 박재동 시사만화가가 그린 만화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이 만화는 일본 학생들이 후소샤판 교과서를 보면서 ‘전쟁은 멋진 것이구나, 그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걸…’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다. 이에 역사교육연대는 어쩔 수 없이 ‘PEACE’ 로고로 만화부분을 대체했다. 신문측의 문장 표현에 대한 추가 수정요구도 있었지만 협상을 거쳐 3일, 원래 문안으로 광고를 게재했다.

오는 6일 광고를 계획하고 있는 일본 산잉 중앙신보에서도 박재동 시사만화가의 만화 삭제와 일부 문구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사교육연대는 후소샤교과서 채택 위험지역을 선정, 지난달 22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전국판과 27일 아사히신문 동경본사판, 29일 훗카이도신문, 30일 니이가타일보에 이어 3일 에히메신문, 4일 구마모토일일신문까지 6번에 걸쳐 의견광고를 게재해왔다. 이후로는 5일과 6일 이틀 동안 일본 카나가와, 산잉 중앙신보, 토카츠 마이니찌, 아사히신문 관서 시코쿠, 추코쿠 지역판 등 4차례 더 의견광고를 실을 예정이다. 의견광고를 싣는 데는 1회당 한화 4000만원~7000만원씩 성금이 쓰였다.

이후 역사교육연대는 8·15를 앞둔 8월13일 전후로 역사왜곡교과서와 야스쿠니신사참배와 관련한 비판적 입장을 새롭게 정리해 일본 일간지 전국판에 전면광고로 낼 계획이다.

한편 지금까지 일본 전국 582개 지구 가운데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수도권 외곽 도치기현 오타와라시 한 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요근래가 일본 지자체별 교과서채택 작업이 거의 끝나는 시점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