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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히노마루’의 기억




일본 국기인 일장기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름 자체가 ‘히노마루(日の丸)’다. 그러나 일장기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그리 홀가분하지 않다. 총칼에 짓눌렸던 식민시대의 기억 탓이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해군 군함기인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태양 둘레에 이글거리는 햇살을 그려낸 이 깃발을 앞세워 침략전쟁이 감행됐다.


일본에서 일장기 예절규칙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군국주의 시절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공립학교 졸업·입학식에서 일장기를 향해 기립하고 기미가요(일본국가)를 부르도록 지침을 내렸으나 “교육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때마침 일본 내에서 ‘신(新)보수주의’ 조짐이 엿보이는 마당이다. 군사 대국화를 위해 자위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무라이 부활론’이다. 이라크 파병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프티 내셔널리즘’이라는 자조섞인 비판처럼 이에 대해 모두 달갑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장기에 대한 강제적인 기립예절 지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그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내달초 공식 개방되는 서울시청 앞 광장이 일장기 모습을 띠었다 해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네모진 테두리에 둥그런 잔디밭이 일장기를 닮았다는 얘기다. “대청마루에 뜬 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서울시측의 해명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과연 어떻게 보느냐는 각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아무리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고 대중문화가 개방됐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일제시절 지어진 총독부(옛 중앙청) 옥상이 일본의 ‘일(日)’자형인 데다 경성부청(현 서울시청)도 ‘본(本)’자형을 띠었다는 해묵은 주장에 새로운 논란이 추가된 셈이다.


〈허영섭 논설위원 gracia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