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08
마니산 '단군의 샘'… 한 서린 뚜껑을 열다
‘지금으로부터 4287년 전,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는 마니산 참성단. 그 곳에 있는 ‘단군의 샘’은 예부터 소원을 이뤄주는 영험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었다. 어느날 샘에 물이 끊기자, 마을엔 “신이 노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기 시작했다.
민족의 영산’ 강화도 마니산. 그 곳에 있다는 ‘단군의 샘’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4월 21일이었다. ‘단군의 샘’은 4287년 전인 ‘기원전 2283년,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강화사·江華史)는 ‘참성단(塹城壇)’ 인근의 샘이다.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마니산 꼭대기에, 그것도 바위를 뚫고 물이 치솟아 올라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온 곳이다. 신령하다 하는 곳은 으레 그렇듯, 이곳에 대해서도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여럿 전해오고 있다. 마니산 밑자락 화도면 상방리 주민 오명섭(68)씨는 “자식없는 사람이 샘물을 먹고 아이를 갖기도 했고, 정성을 빌어 소원을 이루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변이 생긴 것은 60~70여년 전인 1930~1940년대. 망해버린 조국을 한탄했기 때문이었을까? ‘감로수(甘露水)’를 뿜어내던 샘이 갑자기 활동을 멈춰버린 것이다.
마을엔 물이 끊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 여인이 이곳에서 생리대를 빨아 부정을 탔다”는 주장과 “똥물을 퍼부어 신이 노했다”는 주장. 마을 노인들은 아직까지도 “부정을 탔기 때문에 샘이 말라버렸다”고 믿는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오물을 버려 물이 끊겼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뭔가 다른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살펴야 했다. ‘단군의 샘’ 행사를 주관한 민족정기 선양 위원회 ‘쇠말뚝 뽑기 운동본부’의 소윤하 위원장은 “신성한 장소로 숭배됐던 샘의 물이 왜 갑자기 끊겼는지, 혹시라도 인위적인 훼손의 흔적은 없는지를 살펴보려 한다”며 “수십 년간 밀폐된 채 방치돼 왔던 우물의 뚜껑을 열겠다”고 나섰다.
고려사·강화사 “단군이 제사 지낸 곳”
마니산이 있는 강화도(江華島)의 역사는 한반도의 태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강도(江島)’와 ‘화도(華島)’ 2개의 섬으로 이뤄진 강화도. 이곳 화도면 사기리와 동막리, 하점면 장정리 등에서 석기시대 유물이 채집된 바 있고, 하점면 부근리·신삼리 등지에선 고인돌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화엔 ‘국조(國祖)’ 단군과의 관계를 전하는 유적이 유달리 많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사적 136호인 참성단이다. 이곳은 절벽 위로 자연석을 쌓아 만든 일종의 신전. 하지만 언제 누가 어떻게 쌓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고려 원종 5년(1264), 왕이 친히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과 ‘강화도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이라 전한다(江華有摩利山 山頂有塹城壇 世傳檀君祭天壇)’는 고려사(권·卷56, 지리지)의 기록, 고려 원종 11년(1270)과 조선 인조 17년(1639), 숙종 43년(1717)에 단을 보수했다는 ‘참성단 중수비’의 비문 등이 전해질 뿐이다. 이 기록들은 1264년 이전에 이미 참성단이 지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마니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氣)가 센 장소”로 “풍수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대표적 생기처의 하나”다.(주간조선 1999년 4월 8일자 참고) 그래서 그런지 마니산엔 기도하는 사람들, 기를 얻으려는 수행자들, 영기(靈氣)를 강하게 하려는 무속인들이 유달리 많다. 그런 마니산에서도 특히 기운이 강한 곳으로 꼽히는 장소는 정상을 300m 가량 남겨둔, 참성단 밑 길목의 반경 10m 내외. 강화군청은 이곳에 표지판을 설치, 등산객들에게 “넘쳐나는 생기를 느껴보라”고 권하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발생했다.
“능선 따라 쇠말뚝 박혀 있어”
“여깁니다.”
앞서가던 ‘쇠말뚝 뽑기 운동본부’의 권승정씨가 소리를 높였다. “여기가 쇠말뚝이 있는 곳입니다. 이 능선을 타고 연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뽑은 것만 2개, 이것까지 치면 3개째입니다.” 권씨가 말을 이었다. “발견하고도 아직 뽑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있고, 저쪽 건너편 능선에도 네댓 개 더 있어요. 다 합치면 마니산에서 지금까지 찾은 것만 10개쯤 됩니다.”
권씨가 손가락으로 능선 자락을 가리켰다. 진짜로 쇠말뚝이 하나 박혀 있었다. 말뚝은 산비탈을 향해 끝부분이 ‘ㄱ’자로 살짝 휘어 있었다. 먼저 도착한 소윤하씨가 끌과 정으로 말뚝 주변을 쪼아내고 있었다.
“이게 잘 안빠지네요. 두어 시간 더 해야 되겠는데. 작키(공구의 일종)를 가져와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마시고, 밑에서 위로 쳐 올려 보세요. 주세요. 제가 해볼게요.” 권승정씨가 비탈로 내려가 해머를 잡았다. 그렇게 30분 가량 지났을까? 권씨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어? 움직인다. 뽑힐 것 같은데요. 나온다. 나옵니다.”
“그래요? 봅시다. 자, 같이 합시다.” 소윤하씨가 거들었다. “하나 둘 셋~.” 소씨가 나무 등걸에 몸을 묶어 고정시킨 뒤 힘차게 말뚝을 잡아당겼다. ‘스윽’ 소리가 났다.말뚝이 뽑혀나온 것이다. 쇠말뚝은 얼핏 보기에도 흉물스러웠다. 오랜 세월을 지낸 듯 거뭇거뭇 녹이 슬어 있었다. 길이는 80㎝ 정도. 손을 내밀어 쥐어 봤다. 엄지와 중지 손가락이 간신히 맞닿았다. 굵기는 4~5㎝쯤 되는 것 같았다. 소씨가 해머로 쇠말뚝을 두드렸다. ‘징~징~’ 종소리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담금질을 여러 번 거친 무쇠는 이런 소리가 납니다. 들어보세요. 이건 수차례 열처리를 거친 무쇠입니다.”
“말뚝을 뽑은 뒤엔 주변 흙이나 돌가루로 그 자리를 메워줘야 합니다.” 구멍 주변의 돌을 잘게 부수며 소씨가 말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셈이죠.” 권씨가 말을 받았다. “이쪽을 보세요. 여기 빈 구멍들이 있죠? 큰 말뚝이 있는 곳엔 항상 이런 공혈(空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공혈이 항상 7개란 점이에요. 나름대로 뭔가 의미가 있을텐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요.”
“그런데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네요. 말뚝 뽑느라 경황이 없어서…. 소윤하입니다.”
소씨는 1985년부터 전국을 돌며 100여개의 말뚝을 뽑아온 ‘쇠말뚝 대부’다. 합천 모산재 무지개터, 북한산 백운대·탕춘대성, 여수 앞바다의 백도, 속리산 문장대·입석대, 설악산 수렴동, 진도 녹진 사달바위…. 20년간 그가 뽑은 쇠말뚝은 말 그대로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었다.
“서울대에 쇠말뚝 연대 측정 의뢰”
소씨는 이 말뚝이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박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증거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일엔 증거랄 게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을 하거든요. 말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어김없이, 인근 주민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박은 것이라고요. 한두 곳도 아니고…. 주민들이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말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니산 관리사무소의 이희섭씨가 소씨의 말을 반박했다. “20~30년 전에 마니산 계단 공사를 위해 케이블카를 놓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뚝들은 아마 그때 박은 것일 겁니다. 버팀대로 쓰려고 말이죠.”
소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면 여기 이 공혈들은 뭡니까. 불필요한 구멍들을 왜 7개씩이나 북두칠성 모양으로 뚫었을까요. 버팀대로 쓰려면 쇠말뚝을 외진 곳에 박을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생기가 강한 곳을 찾아, 그것도 가파른 곳을 골라, 눈에 안 띄게 박아넣을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주민 박희길(65)씨는 소씨의 편을 들었다. 박씨는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들은 말”이라며 “일제 때 이 마을에 장사가 나오지 못하도록, 일본 사람들이 혈을 끊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오명섭(68)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 들었습니다. 마을에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기혈을 끊었다는 거예요. 옆 봉우리 만경대 능선에도 쇠말뚝이 몇 개 더 있어요.”
오씨는 ‘단군의 샘’에 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참성단 옆에 있는 샘 말입니다. 거기에도 그랬다는 말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물이 안 나오게 못된 짓을 했다고….”
‘단군의 샘’에서 ‘백회’를 발견하다
소씨는 2000~2001년에 걸쳐 서울대에 쇠말뚝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고 한다. “쇠말뚝 탄소 성분을 조사한 결과, 숯이 아니라 석탄으로 열처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1950년대 전까지 대부분 숯을 이용해 쇠를 다뤘어요. 석탄을 이용했다는 것은 이 쇠말뚝이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일본에선 1950년대 이전부터 석탄을 이용해 무쇠를 주조했습니다.”
소윤하씨가 말을 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기사(주간조선 2004년 2월 26일자 참고)가 얼마전에 나왔잖습니까? 그 후 모 방송사에서 그게 말뚝이 아닌 것처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쇠말뚝 행사를 주관했던 일본 종교단체를 찾아가서 ‘이게 쇠말뚝이냐’고 물으면, 그 사람들이 ‘쇠말뚝 맞다’고 하겠습니까? 일본 종교단체 주장을 왜 그대로 내보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보도된 사진을 확대 현상해 살펴봤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쇠말뚝이 아니라 제단의 다리’라고 했는데, 사진을 살펴보면 제단 다리는 쇠말뚝과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어쨌든 오늘 이걸 뽑아서 참 다행입니다. 못 빼내면 내일 또 올라와야 했는데. 허허. 오늘 운이 참 좋네요. 이렇게 큰 것을 이렇게 금방 뽑아냈으니….”
일행은 산꼭대기로 걸음을 옮겼다. 정상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단군의 제단’ 참성단을 중심으로, 한편으론 강화도가, 반대편으론 서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었다. 참성단은 둥그런 밑단과 사각형의 제단으로 이뤄져 있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둥근 형상은 하늘을 상징하고, 네모난 형상은 땅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고대 우주관을 표현하는 모양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관은 신라의 첨성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샘은 참성단 앞에 있었다. 입구가 나무 뚜껑으로 가려져 있어 하수구인지 우물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기 쉬웠다. 고사를 지낸 일행이 뚜껑을 뜯었다.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흙더미와 오물을 치우고 청소하길 수시간.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했던 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돌 몇 개가 우물 복판을 떠억 가로막고 있었다.
“저게 저기 왜 있나? 그 큰돌 말이에요. 그걸 빼낼 수 있겠어요?” 작업을 도와주던 청년에게 소씨가 물었다. 청년이 돌 틈으로 정을 박아넣었다. “움직이긴 하는데…. 빠지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 밑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아요. 돌을 두드리면 울립니다. 어?”
이야기하던 청년이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이게 뭐죠? 청년이 못으로 뭔가를 긁어냈다. 하얀 가루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백회네요.”
일행이 말을 받았다. “백회? 백회가 왜 있지? 어디 봅시다.” 소윤하씨가 손바닥에 ‘백회’를 올려놓고 살폈다. ‘백회’는 연이어 나왔다. 밀가루같이 하얀 가루였다. 만져보니 매끈거렸다. 돌가루와는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백회인지, 백회라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뿌려넣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흘러들어간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생겨난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일행은 제각각 추측만 내놓을 뿐이었다.
소윤하씨가 결정을 내렸다. “만약 누군가가 백회를 뿌렸다면, 의도적으로 샘을 훼손한 뒤 ‘부정을 탔다’고 헛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란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일단 샘을 청소한 것으로 만족합시다. 돌을 치워보면 좀 더 다른 것을 알아낼 수 있겠지요. 지금으로선 어떤 예단도 하지 맙시다.”
일행은 소씨의 결정에 따라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궁금증은 여전했다. 샘을 막고있는 돌을 치우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60여년간 막혀있던 ‘단군의 샘’은 과연 다시 물을 뿜어낼 수 있을까? 땅거미가 어둑해졌다. 속절없이 석양만 저물어갔다.
마니산=글·사진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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