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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여 고분에 깃든 고구려魂, 중국은 아는가


이번 국토박물관 순례는 무대를 잠시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고구려 돌무지무덤으로 옮긴다. 사실 나는 국토박물관 순례기를 마치면 뒤이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해외편으로 중국과 일본 속의 우리문화를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군사작전 같은 이름으로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당장 나로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를 느낀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치지도외시하다가 자기들의 고대·중세 변방사로 편입시킨 것은 1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이때부터 중국은 과민할 정도로 우리를 경계해왔다.

구체적인 예로 북한에서는 1988년부터 8년에 걸쳐 『조선유적유물도감』전 20권의 원색도록을 야심적으로 펴냈는데 이중 제 8권 발해편만은 흑백의 옛날 사진으로 되어 있다. 97년 방북 때 내가 이 책의 편집자인 리정남 조선중앙력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통한의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중국으로 발해유적 촬영을 가려고 중국에 비자신청을 내면 연구자들은 무조건 막는 겁니다. 그래서 기자 신분으로 위장해 신청도 해봤는데 족집게처럼 뽑아내더란 말입니다. ”

그날 우리는 건국 1천3백년을 맞은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에 대해 마치 징용 끌려가 죽은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누이의 심정으로 서로 아는껏 얘기했다.


그리고 2000년 가을 중앙일보 '압록강.두만강 탐사 기획' 때 나는 지안의 광개토대왕비를 보면 그 옛날 단재 신채호 선생이 비석을 안고 한없이 도셨듯이 사방을 돌며 원없이 사진을 찍겠노라고 벼르고 갔다. 그러나 중국 경비원은 사진기의 접근조차 막았다. 그 많은 유명한 벽화고분엔 하나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무덤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왔다.

그때 우리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그날 밤 불쾌하고 쓸쓸하고 울적한 심사를 달래보고자 우리는 압록강변으로 나아가 허름한 술집에서 실컷 퍼마셨다. 때는 추석이 가까워 둥글고 누런 달이 강 건너 만포(滿浦) 땅 포플러 가로수 길을 어스름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때 신경림 시인이 쓴 시가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이다.

그나마 그 때는 지금보다는 통제가 덜한 때인지라 우리는 통구(通溝)라는 압록강 지류변에 있는 고구려 돌무지무덤, 이른바 적석총(積石塚)만은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고구려고분이라면 벽화고분만 이름 높고 위대해 보이는 것처럼 말해지지만 죽음의 건축으로 비장미를 간직한 것은 오히려 기단식 돌무지무덤이다. 보통 사방 20~30m의 석축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강자갈돌을 높이 7~9m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지금 지안엔 그런 고구려 돌무지무덤이 무려 1만1천3백기가 확인되어 있다. 우산(禹山) 아래에 3천9백기, 칠성산 고분군이 1천7백기, 마선구(麻線溝) 고분군이 2천 5백기이다. 그 중에서도 우산하고분군은 원형도 잘 남아있고 돌무지무덤 사이로 옥수수밭이 늘어서 있어 그 예스럽고 장엄한 분위기는 마치 이것이 고구려의 기상이라는 침묵의 증언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이 돌무지무덤의 행렬을 좀더 멀리서 조망해 보고 싶어 환도산성(丸都山城) 답사 때 사과나무 과수원 할아버지의 불호령을 무시하고 산꼭대기로 올랐다. 그 순간 펼쳐진 우산하고분군의 장대한 돌무지무덤 행렬,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영상으로 내 가슴 깊이 박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고 이 날 이 때까지 고구려 돌무지무덤을 탄미하는 중국인의 글을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역사란 그것을 간직한 자의 것이다. 당신네들은 한 시절 고구려 문화유산의 물질적 형태를 지금 소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그 속에 깃든 혼을 이어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속으로 흘렸다. 그러면서도 고구려가 삶의 터전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결국 우리의 영역이었던 압록강 북쪽을 중국에 내주고만 것이 못내 애석하게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2002년 연경(燕京)에 간 사신들의 길을 따라 만주를 답사했을 때 선양(審陽)의 청나라 유적지를 보면서 내 마음은 달라졌다. 그 강성했던 만주족이 결국은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 하나로 전락해 한(漢)족의 핍박을 받으며 겨우 자치구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비할 때 대한민국의 처지는 얼마나 당당한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가 겪고 있는 고초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중국은 약 13억 한족과 약 1억명의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중국의 한족이란 크게 90개, 작게는 30개 소수민족이 피를 섞으며 형성된 민족이다. 그들이 다른 민족으로 분화되지 않은 것은 진시황의 통일과 한나라의 형성 덕으로 이들은 자신의 몸집을 최대한 키우고 주변, 이른바 오랑캐들은 소수화하는 변방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재벌화하고 주변은 구멍가게로 전락시키며 자민족을 지키는 대외정책을 썼던 것이다. 한족과 고구려의 충돌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한족의 무지막지한 패권주의에 자신을 지켜낸 변방의 민족국가는 거의 없게 되었다. 지금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모국(母國)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은 오직 몽고족과 조선족뿐이다. 동아시아 고대.중세사에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오늘날 세계사는 지구 전체를 말하지만 근대 이전의 세계사는 다섯개 문화권의 역사로 나뉘며 각 문화권은 중심부문화와 주변부문화로 구성된다. 유럽문화권은 비등한 민족들간의 충돌 속에 중심부문화가 이동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17세기 스페인과 영국, 18세기 프랑스, 19세기 독일… 그러나 동아시아문화권은 중국의 패권주의로 19세기 오도록 중심부를 차지하고 오직 우리나라.일본만이 주변부문화를 형성해왔다.

만약에 한국.일본마저 문명의 흐름에서 낙오됐다면 동아시아 문화사는 얼마나 단조로웠을까. 고려사람마저 청자를 못 만들었다면 세계 청자의 역사는 중국사로 끝날 뻔했다. 중국의 불교미술, 중국의 수묵화, 중국의 음악… 그것을 우리나라와 일본이 받아들이고 보조를 같이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불교미술, 동아시아의 수묵화, 동아시아의 음악으로 내포가 깊어지고 외연이 확대됐다. 그 점에서 중국은 우리가 귀한 동반자임을 알아야 하고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사대주의를 편 것은 따지고 보면 문명의 흐름에 낙오되지 않으려는 하나의 안간힘이고 슬기이며 술책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항시 우리가 주변부문화에 놓였던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민족적 열등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럴 이유가 없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은 손가락질 받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압록강 이북의 땅을 아쉽게도 중국에 떼어주긴 했지만 그 대신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갖는 주주로 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이며 자랑이다. 중국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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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9 17:58 입력 / 2004.01.30 09:37 수정





▶ 이 기사에 대한 나도 한마디는 총 3 건 입니다.




최정호 (mutitnun) 01-30 06:00 추천 : 6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동북아 역사에서 중국을 제외하면 몽고를 비롯한 북방기마 민족의 역사가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 간과 되었군요. 아마 90:10 춘추전국시대부터 청말까지 중국 한족의 역사는 북방기마민족과의 투쟁사가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북방기마민족이 중국을 지배한 경우만 해도 5호16국, 수, 당, 5대 10국, 원, 청 (진, 한, 송, 명 만 한족의 통일 왕조) 이고, 만리장성, 당 천도 ...

최영수 (chiwoo44) 01-30 00:01 추천 : 1
이미 10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고구려 문화재에 대해 한국 학자들이나 관광객의 접근을 꺼리고 비우호적으로 나온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역사성을 이해할 때 그 10년동안 정부와 학계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학계야 학술적 연구외에 관여를 할수 었다지만 정부는 무었인가? 맨달 정권싸움에 자기 익속만 채기는 정치인들 삭 쓸어다 포항제철 용광로에 집어 넣어 버려야 되는데......

김순규 (lakehome) 01-30 03:09 추천 : 0
지금 동북삼성과 내몽고자치주의 1억3천만 인구 중에서 소수민족은 만주족 1000만 몽고족 500만 조선족200만 정도. 조선족도 조선말기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이주한 주민이 대부분이고 고구려나 발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주민은 거의 없다. 청의 발생지인 백두산 북쪽의 연변지방은 봉금정책으로 무인지경이되었는데 청말기에 조선족이 먼저 이주하고 한족은 나중에 이주하였다. 만주의 한족은 현지인보다 청말이후에 이주한 주민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