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입니다

中―日 대립 격화 東亞 긴장 고조
중·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동아시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불붙은 양국의 마찰은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두 나라의 국가 전략과 맞물려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모두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나 국익과 관련된 여러 현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7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일 외교장관 회담이 향후 양국 관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뿌리 깊은 반목=양국의 갈등은 2001년 10월 중국 정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삼아 고이즈미의 중국 방문을 거부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중단된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는 지난해까지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칠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고이즈미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을 강력 요구한 이후 고이즈미는 중국측 입장을 고려,올해 들어서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았으나 기회 있을 때마다 참배를 시사,중국측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에서 가스전 개발에 나선 데 이어 중국 원자력 잠수함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고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까지 겹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움직임이 노골화됨으로써 중국 내 만연한 반일 감정에 불을 댕긴 것이다.

◇한치 양보 없는 외교전과 거세지는 중국의 반일 감정=양국의 외교전도 날로 격화되고 있다. 양국은 연일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관계 악화의 책임을 상대방에 돌리는 등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동중국해 가스전 시굴권 설정 방침에 대해 "일본은 중국의 중대한 관심을 직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이 문제로 발생하는 일체의 책임은 일본측에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다카시마 하쓰히사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반일 폭력 시위는 중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은) 폭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국제사회의 원칙과 질서를 무시한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는 국제법상 외국인의 생명과 재산 안전,외국 기업의 합법적 활동 보장,외국 공관 보호에 책임이 있다"고 중국측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불필요하게 인접국과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고이즈미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태도는 중국민의 반일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그동안 반일 시위는 베이징과 상하이 청두 중칭 광저우 선전 등 중국 주요 도시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이번 시위는 중·일 외교장관 회담일을 전후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예정이라고 홍콩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 주요 웹 사이트에는 16,17일 베이징 상하이 선양 구이린 등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를 갖자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의 중국 방문에 맞춰 개최되는 이번 시위는 형태나 규모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주목받는 중·일 외교장관 회담=일본 정부는 중·일 외교회담을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적 교류와 경제 교류 확대 등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작업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반일 시위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확연히 맞서 있는 데다 일본의 동중국해 가스전 시굴권 설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예상돼 긴박한 회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교도통신은 분석했다.

마치무라는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중·일 양국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동역사연구를 제안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어서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중국은 국제 여론이 일본에 부정적인 데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보수우경화와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보고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과거 반성 없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고,미국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에 편승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으려는 일본의 의도를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하겠다는 게 중국측 입장인 듯하다. 이러한 중국의 강성 기류를 대변해 친강 대변인은 중·일 외교장관 회담 성사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흥우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