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통 북’ 제작기법 복원한 김 용근씨
“통 북으로 북을 쳐야 소리가 품에 안겨”
전북 남원시 운봉읍사무소 직원 김용근(45·행정7급)씨는 ‘판소리 박사’로 통한다. 소리꾼들의 호적과 족보 등 각종 자료 6천여 점을 모아 명창 사를 꿰뚫고 있다. 명창들의 후손과 지인들을 찾아 녹음한 구술자료 테이프만도 1천여 개가 넘는다. 게다가 애초 취미로 북채를 잡았던 그는 맥이 끊겼던 전통적인 통 북 제작법을 복원하는 ‘경지’에 올랐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북 만드는 것을 보았다. 몇 년 전 고인이 된 아버지는 생전에 통나무를 파 절구통과 김칫독을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아버지는 1년에 한 두 차례 정도 명창들의 의뢰로 ‘통 북’을 제작했다. 통 북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 북으로, 판지를 붙여 만든 ‘쪽 북’과 다르다. 남원 출신 판소리 인간문화재였던 고 강도근 명창도 김씨의 아버지에게 북을 맞춰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교를 졸업한 아들이 북에 관심을 두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배워봐야 돈벌이도 되지 않는다’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6년 8월 남원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북을 만났다. 공무원으로 남원을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으면서 소리와 북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국악원에서 소리를 배우다가 “목이 별로다”는 말을 듣고 북채를 잡았다. “장모님이 오셔서 셋방 문을 지켜도 뿌리치고 북을 치러갈 정도”로 빠져 들었다.
판소리 다섯마당 소리를 장단별로 편집해 들었다. 한 4년 정도 독학하니 “귀가 열린다”는 느낌이 왔다. 소리에 맞춰 북을 배우며 아버지가 만들었던 통 북 제작에 도전했다. 김씨는 “일제시대 육송을 베지 못하게 하고 한우를 자원으로 통제하면서 전통적인 북 제작법의 맥이 끊겼다”고 말했다.
87년께 주천면 고향 집에 작업장을 만들어 아버지가 사용하던 대패와 끌을 잡으면서 ‘고생길’에 들어섰다. 80년 이상 된 육송을 구입하기 위해 월급을 다 털어 넣기도 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북 제작에 매달리는 남편을 보고 아내(43)는 “제발 그만하라”고 성화였다. 통나무에 황토를 발라 보름 동안 수분을 조절한 뒤 옴팍하게 구멍을 파가면 번번이 벌어졌다. 송진과 좀을 없애려고 수증기 찜 방식을 복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우 소가죽을 석회와 섞어 놓으면 큰 형님이 “냄새 난다”며 내다버려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먼 산을 보며’ 한마디씩 던져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000년께 드디어 통 북 제작에 성공했다. 통나무의 홈을 차례로 파 스피커 모양의 ‘공명판’(일종의 울림 판)을 만드는 것이 통 북 제작의 비법이다. 한지와 삼베에 이어 한우 가죽을 입히기까지 무려 1년 8개월이 걸린다. 김씨는 “통 북으로 북을 쳐야 소리가 품에 안긴다”고 웃었다.
김씨는 공방을 열어 통 북을 본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꿈이다. 6년 동안 적금을 부어 남원시 인근에 1천만 원짜리 작은 집을 샀지만, 아직 작업도구를 들여 놓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서양에선 고전음악뿐 아니라 손으로 만든 바이올린 명품의 맥도 이어지고 있다”며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정부가 통 북 복원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남원/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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