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90
<남주(南州)>는 어디인가?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이나<동문선>이나 어떤 글을 보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남주(南州)"라는 이름이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 리인로(李仁老: 1152∼1220년)의『破閑集(파한집)』에 나온 이야기로써 알 수 있다.
"남주에 어떤 군수가 있었는데, 그곳에 한 기생이 예쁘고도 재주가 있어 너무 사랑한 나머지, 떠나고 나면, 이내 다른 이의 소유가 될까봐 그 기생의 두 뺨을 촛불로써 지져 성한 살이 없었다. 그 뒤 형양현(滎陽縣)에 살던 정습명(鄭襲明)이 이곳 남주를 지나다가 그 기생을 보고서는 가여운 생각이 들어 시를 써주면서 끝귀절에 '장안(長安)에 있는 오릉[五陵: 장릉(長陵: 高帝)·안릉(安陵: 惠帝)·양릉(陽陵: 景帝)·무릉(茂陵: 武帝)·평릉(平陵: 昭帝)]과 공자(公子: 장안의 부귀한 사람들)도 한(恨)이 끝없겠네.'라고 하고는 '서울[中華]로 가는 사람이 있거든 이 시를 내보이거라'고 했다. 그 기생은 영양공의 시키는 대로 하여 그 뒤로 보는 사람마다 보태주니, 살림이 넉넉해졌다."고 한다.
물론 이 남주는 지금 대한민국 땅에는 전혀 없는 지명이다. 과연 정습명이 지금 중국의 사천성 남주를 지나가다가 그곳 기생의 신세를 불쌍히 여겨 중국 관리들에게 그 사실을 유포했다는 말은 한반도가 고려라는 말로서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더구나 정습명은 고려 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남주와 그곳 군수와 기생과 정습명과의 관계와 그 내용에 장안에 있는 한(漢)나라의 다섯 황제의 무덤과 그 부자들과의 상관 관계가 고려의 땅, 곧 조선의 땅과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의 사천성과 섬서성이다.
이 글을 지은 리인로는 롱서( 西: 감숙성 천수현 서쪽 고을)에 사는 리담지(李湛之)와 함께, 황도(皇都: 하남성 개봉; 개경·개성)에서 멀지 않는 단주(湍州: 하남성 남양부 서쪽 림단현) 북쪽 앙암사(仰巖寺)에서 지내면서 시를 짓기도 했다. 그 뒤 20년이 지나 자진[子眞: 함순(咸淳)의 자(字)]이 남주(南州)로 부임하러 가다가 고달파서 그 앙암사에서 쉬었다는 것이다.
리인로 자신은 나이 30살에 금(金)나라에 사신(서장관)으로 가본 적은 있지만, 그 밖에는 함순과 마찬가지로 고려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장독(病의 글에 丙대신에 章 毒)·장기( 氣)에 관해 언급된 사료를 찾아보자.
먼저『後漢書(후한서)』「南蠻傳(남만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137년(영화 2)에 남주(南州)는 물이 따뜻하고 땅이 더운데다가 장기( 氣)가 더 심하여 열에 너 댓 명이 반드시 죽는다."
또 위의 책,「馬援傳(마원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처음에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 있으면서 늘 율무쌀[의이실(薏苡實)]을 먹었다. 이것은 몸을 가볍게 하고, 성욕을 줄여주어, 장기를 견뎌냈다. … 또 교지(交趾)로 싸우러 나갔는데, 그 지역은 장기가 많았다. …46년(건무 22)에 북쪽으로는 국경의 사막지대로 나가고, 남쪽으로는 강과 벌판을 건너는데, 해로운 기운[장독]을 무릅쓰고 쐬여 자빠져 죽는 군사가 많다."
여기서 남주(南州)는 사천성을 지나는 양자강 유역의 만현(萬縣)·기강현( 江縣)·옛 서주부(敍州府)가 있었던 의빈현(宜賓縣) 지역이다.
그리고 교지(交趾)는 안남(安南)의 동경주(東京州)이다. 이곳은 월남(越南: Vietnam)의 북쪽 지역이다. 그런데 교지성이 운남 동남부의 서주현(西疇縣) 서남쪽에 있었다고 하므로, 월남의 북쪽 경계인 마관현(馬關縣)지역이다.
이 지역은 사천성을 남부를 가로지르는 양자강 유역의 만현·기강현·의빈현이 있는 남주(南州)의 남쪽이며, 높은 산과 강과 호수가 있는 습한 지대이다.
여기서 율무쌀로써 장독을 견뎌냈다고 한 것을 보면, 그 율무가 장독에 효험이 있다는 말인데,『동의보감』에도 보면, "폐위·폐기(肺氣)·농혈(膿血)을 토하는 것을 다스리고, 해수(咳嗽)·풍습비(風濕痺)·근련(筋攣)·맥급(脈急)·건각기(乾脚氣)·습각기(濕脚氣)를 다스리며, 몸이 가뿐해지고, 장기를 이긴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장기·장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동의보감』에서는 "율무쌀"은 "장독을 다스린다"고 했는데,『본초강목』에는 오히려 그것을 다루지 않았다는 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일반적 상식은『본초강목』을 지은 리시진은 대륙의 명나라 사람이고,『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은 한반도 조선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장독"이라는 풍토병은 중국의 중남부인 양자강 유역 이남의 열대 지방에서 매우 심하게 발생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리시진이 율무쌀로써 그 풍토병을 다룬다는 말은 없고, 도리어 허준이 그것을 다루었을까!
말하자면, 리시진은 그 내용을 빠뜨린 것이 되며, 허준은 조선 사람이되, 장독이 발생되는 지금의 중국 땅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이며, 바로 그곳이 조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뒷날에 역사를 재편(再編)하면서 빚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남주보다 더 남쪽에는 안남(安南)이 있다. 거기에 장기가 있다고 했는데,『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안남의 관습이『동의보감』에 나오는 령남(嶺南)과 너무도 비슷하다.
"임금이 안남(安南)의 사신도 조공(朝貢)하러 연경(燕京)에 갔다는 말을 듣고, 그 의관(衣冠)의 제도를 물으니, 민암(閔 黑+音)이 대답하기를, '… 늘 빈랑을 씹는데 손[客]을 대하여도 그만두지 않았으며, 이[齒]는 마치 옷[漆]을 칠한 듯이 다 검었습니다. 거동은 대저 가벼웠으나, 접대할 때에는 례양(禮讓)을 자못 알았습니다. 신이 듣건대, 고(故) 판서(判書) 리수광(李 目+卒 光)이 전에 안남의 사신을 만나서 시(詩)를 지어 준 일이 있다고 하는데, 함께 창수(唱酬)하여 보니 또한 능히 글을 조금 알았습니다.'고 하였다."
이것은『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숙종(肅宗: 1674∼1720년) 17년(1691)에 민암(閔 黑+音: 1636∼1694년)이라는 사람이 우의정(右議政)이었는데, 안남(安南: Vietnam) 사람들의 풍습을 말한 것이다.
이 안남 지방에 빈랑이 나며, 그곳 사람들이 빈랑을 늘 씹고 살므로 이빨이 검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내용은 백제의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의 흑치(黑齒), 곧 검은 이빨을 연상케 한다.
물론 베트남·라오스·태국·미얀마 등의 나라와 운남성·귀주성·사천성·광서성·광동성 등지에는 아직도 빈랑자(Betel nuts)를 나뭇잎에 싸서 껌처럼 씹어 장독의 예방과 더불어 기분전환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빈랑이 생활관습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은《베트남史》의 예로써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락민(唯의 口대신 各 民)은 몸에 文身을 하고, 구장[草두변 아래 立+句 醬: 필발의 열매]의 잎으로 檳랑나무의 열매를 싸서 씹어, 이[齒]를 검게 만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檳랑의 열매는 이후의 베트남인들 생활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으니, 귀한 손님이 오면, 이를 내놓아 대접을 했고, 約婚時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禮物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고 했으며, 또, "베트남에서는 마을 축제 같은 때에 처녀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물건을 던져 배우자를 택하던가, 또는 여자 집에서 남자쪽에 빈랑의 열매를 보내어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결혼이 성립되는 풍습이 있었다."고 했다.
안남 지방 사람들이 "손님이 와도 그만두지 않는다[對客不輟]"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언뜻 보기에는 예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빈랑이라는 어원(語源)이 "賓(빈)과 郞(랑)은 모두 남자의 귀한 손님[客]을 높여서 일컫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베트남의 풍습에서도 보았듯이, 그래서 "교주(交州)와 광주(廣州) 사람들은 주인[勝族(승족)]이 손님[賓客(빈객)]을 높여서 반드시 이 빈랑을 먼저 드린다. 그런데 만약 우연히 만났더라도 이 열매를 내놓지 않으면 큰 실례가 된다."는 전통이 있다.
그러면 진정, 사람들이 왜 빈랑을 씹어야 하며, 무엇 때문에 빈랑을 손님에게 먼저 대접하는가? 하는 근원적 이유는 바로 풍토병 장독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역사에 나오는 "남주"는 남쪽 고을이기는 하지만, 열대 내지는 아열대지방이고, 그곳엔 풍토병 장독이 발생하는데 그런 병을 치료/예방을 할 수 있는 빈랑까지도 생산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단편적이긴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한반도와 지리적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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