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98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700리가 맞습니다.
아래 글은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이고, 모두 경원 도호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두번재 경원 도호부에 대해서, 이전에 있는 경원 도호부에 대한 설명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후일의 참고를 위하여 남겨 둔다고 하였습니다. 기록이 중첩될 경우 옛날 기록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뒤의 기록은 현재 함경도 경원이 겹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마지막 부분만 남겨 두었습니다.
아래 기록을 보시면, 세종 실록 지리지에서 공험진은 분명 두만강 밖 700리로 기록하고 있으며, 두만강 밖 지리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북쪽으로 흐르는 강과 송화강으로 추정되는 강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함길도/길주목에 경원 도호부 기록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함길도에 경원 도호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길주목에 있는 경원 도호부 기록을 인정하자니, 이제까지 열심히 변조한 기록을 뒤집어야 되고, 함길도에 있는 경원 도호부를 인정하자니 사학의 기본 원칙을 깨야 되고 어떻게 할지 참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선춘령비는 야인에 의해서 지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래출처: http://sillok.history.go.kr
◎ 경원 도호부(慶源都護府)
사(使)가 1인이니, 길주도 우익 병마(吉州道右翼兵馬)를 겸한다.
옛 공주(孔州)로서 혹은 광주(匡州)라고도 칭하는데, 오랫동안 호인(胡人)에게 점거(占據)되었었다. 고려의 대장(大將) 윤관(尹瓘)이 호인(胡人)을 몰아내고 공험진 방어사(公險鎭防禦使)를 두었다. 본조 태조(太祖) 7년 무인에 덕릉(德陵)과 안릉(安陵)이 있다고 하여 경원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성(城)을 수축하기 위하여 땅을 파다가 인신(印信) 1개를 얻었는데, 그 새긴 글에 ‘광주 방어지인(匡州防禦之印)’이라고 되어 있었다. 태종(太宗) 9년 기축【영락(永樂) 7년.】에 목책(木柵)을 소다로(所多老)의 영기(營基)에 설치하고 부(府)를 옮겼고, 10년 경인에 야인(野人)의 난리로 인하여 경성군(鏡城郡)에 합쳤다가, 17년 정유【영락 15년.】에 경성(鏡城)의 두롱이현(豆籠耳峴) 이북의 땅을 떼어서 다시 도호부로 삼고, 부가참(富家站)에다 목책(木柵)을 세우고 치소(治所)로 삼았다.
복호봉(伏胡峯)【부의 동쪽에 있는데, 본부 사람들이 진산(鎭山)으로 삼는다.】 대천(大川)은 두만강(豆滿江)과【부(府)의 동북쪽에 있다. 그 근원이 백두산(白頭山)에서 나오는데, 동쪽으로 흘러서 동량북(東良北)으로부터 사지(舍知)·오음회(吾音會)·수주(愁州)·동건(童巾)·다온(多溫)·미전(迷錢) 등지를 지나 회질가(會叱家)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서 소다로(所多老)·동림(東林)·오롱초(吾弄草)·아오지(阿吾知) 등지를 거쳐 공주(孔州)를 지나고, 동쪽으로 23리를 흘러서 사차마도(沙次亇島)에 이르러 갈라져 5리 정도쯤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빈강(愁濱江)이다.【두만강 북쪽에 있다. 그 근원은 백두산 아래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서 소하강(蘇下江)이 되어 공험진(公險鎭)·선춘령(先春嶺)을 지나 거양성(巨陽城)에 이르고, 동쪽으로 1백 20리를 흘러서 수빈강이 되어 아민(阿敏)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20리, 서쪽으로 경성(鏡城) 두롱이현(豆籠耳峴)에 이르기 40리, 남쪽으로 연해 굴포(連海堀浦)에 이르기 12리,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백 리, 동북쪽으로 선춘현(先春峴)에 이르기 7백여 리, 서북쪽으로 오음회(吾音會)의 석성기(石城基)에 이르기 1백 50리이다.
호수가 2백 91호요, 인구가 3천 2백 33명이다. 군정은 익속군(翼屬軍)이 3백 1명, 수성군(守城軍)이 58명이다.
땅이 기름지다. 간전(墾田)이 52삭(朔) 13일(日) 3조(朝) 반조(半朝)【이것이 바로 본부(本府)의 전지(田地)이다. 본래 타량(打量)함이 없으므로, 곧 일경(日耕)으로써 근거(根據)를 삼았다.】 2천 1백 82결이다.【논은 겨우 50결인데, 이것도 경성(鏡城)에서 떼어 내어 내속(來屬)시킨 것이다.】 토의(土宜)는 피·콩·조·메밀이다. 토공(土貢)은 표범가죽·곰가죽·사슴가죽·삵가죽·여우가죽·잘[獺皮]이요, 약재는 녹용·당귀(當歸)·인삼·망초뿌리[秦]·방풍(防風)·택칠(澤漆)·속새[木賊]·삿갓나물[蚤休]·바디나물뿌리[前胡]이요, 토산(土産)은 범의 가죽·연어·문어·상어·방어·대구·황어(黃魚)·송어·굴·미역·곤포(昆布)·다시마이다. 염분(鹽盆)이 15개이다.
읍 목책(邑木柵)【둘레가 7백 38보(步)이다.】 고랑기 목책(高郞岐木柵)이 부의 동북쪽에 있고,【둘레가 1백 66보이다.】 청암 목책(靑巖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고,【둘레가 3백 보(步)이다.】 부리하 목책(夫里下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고,【둘레가 2백 1보(步)이다.】 용성 목책(龍城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다.【둘레가 2백 75보(步)이다.】 동림성(東林城)【동쪽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다. 안에 큰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21보(步)나 되며,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태종 원년 신사에 그 성을 수축하여 경원부(慶源府)의 산성(山城)으로 삼았다.】 아오지 고성(阿吾知古城)이 동림성(東林城) 남쪽에 있고,【옛 경원부(慶源府) 때에 군사를 주둔시켜 수어(守禦)하던 곳이다.】 공주성(孔州城)이 아오지성 남쪽 두만강 가에 있다.【옛 경원부(慶源府) 때에는 읍성(邑城)을 삼았었다.】 공주성(孔州城) 남쪽 5리쯤 되는 평야(平野) 가운데에 두 개의 둥근 봉우리가 있는데, 남쪽에 덕릉(德陵)을 모셨고, 북쪽에 안릉(安陵)을 모시었다. 태종 10년 경인에 함흥부(咸興府)로 옮겨 모시었다.
동림성(東林城)에서 북쪽으로 5리쯤 가면 소다로(所多老)의 영기(營基)가 있고, 그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會叱家灘)이 있으니, 바로 두만강의 하류이다. 강을 건너 10리 되는 넓은 들 가운데에 큰 성이 있으니, 곧 현성(縣城)이다. 안에 6개의 우물이 있다. 그 북쪽으로 90리 되는 곳의 산상(山上)에 옛 석성(石城)이 있으니, 이름이 ‘어라손참(於羅孫站)’이다. 그 북쪽으로 30리에 허을손참(虛乙孫站)이 있고, 그 북쪽으로 60리에 유선참(留善站)이 있으며, 그 동북쪽으로 70리에 토성기(土城基)가 있으니, 곧 거양성(巨陽城)이다. 안에 돌기둥 둘이 있으니, 예전에 종(鍾)을 달던 곳이다. 종의 높이가 3척, 지름이 4척이 넘었었다. 일찍이 경원(慶源) 사람인 유성(庾誠)이란 자가 그 성(城)에 가서 그 종을 부수어서 말 9마리에 싣고 왔는데, 겨우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었고, 따라갔던 사람 30여 명이 모두 죽었다. 그 나머지 쇠붙이는 풀숲 가운데 버려져 있었으나, 누가 감히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그 성은 본래 고려 대장(大將) 윤관(尹瓘)이 쌓은 것이다. 거양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 선춘현(先春峴)이니, 곧 윤관이 비(碑)를 세운 곳이다. 그 비의 4면에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호인(胡人)이 그 글자를 깎아 버렸는데, 뒤에 사람들이 그 밑을 팠더니,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4자가 있었다. 선춘현(先春峴)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면 옛 성터[城基]가 있고, 소다로(所多老)에서 북쪽으로 30리를 가면 어두하현(於豆下峴)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60리에 동건리(童巾里)가 있고, 그 북쪽으로 3리쯤의 두만강탄(豆滿江灘)을 건너서 북쪽으로 90리를 가면 오동 사오리참(吾童沙吾里站)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60리에 하이두은(河伊豆隱)이 있고, 그 북쪽으로 1백 리에 영가 사오리참(英哥沙吾里站)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소하강(蘇下江) 가에 공험진(公險鎭)이 있으니, 곧 윤관(尹瓘)이 설치한 진(鎭)이다. 남쪽으로 패주(貝州)·탐주(探州)와 인접(隣接)하였고, 북쪽으로 견주(堅州)와 접(接)해 있다. 영가 사오리(英哥沙吾里)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 백두산(白頭山)이 있는데, 산이 대개 3층으로 되었다. 꼭대기에 큰 못이 있으니,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豆滿江)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蘇下江)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압록(鴨綠)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흑룡강(黑龍江)이 된다. 그 산에 사는 새와 짐승은 모두 흰빛이며, 산허리 이상은 모두 속돌[水泡石]로 되어 있다. 부(府)의 서쪽으로 80리에 오음회현(吾音會峴)이 있고, 25리에 대령(大嶺)이 있으니, 이름이 ‘청산(靑山)’이며, 그 서쪽으로 10리에 큰 산이 있으니, 이름이 ‘다갈산(多曷山)’이다. 부의 남쪽으로 35리에 굴포(堀浦)가 있고, 동쪽으로 5리쯤에 창기(倉基)가 있는데, 속설에 전하기를, “고려[前朝]에서 북벌(北伐)을 할 때 조전(漕轉)하여 위수(委輸)5241) 하던 곳이라.” 한다. 부(府)의 남쪽으로 20리 바닷가에 순지(蓴池)와 웅구참리(雄丘站里)가 있고, 동쪽으로 장포(長浦)가 있으며, 그 동쪽으로 50리에 큰 못이 있는데, 바다와 통한다. 속설에 전하기를, “용(龍)이 있는 곳이라.” 한다. 진주(眞珠)와 명패(明貝)가 난다.
⊙ 경원 도호부(慶源都護府)
경원부(慶源府)의 지리(地理)는 이미 앞 지리지에 실려 있다. 지금 연혁(沿革)을 더 붙이자니, 이미 만들어진 책에다 이어서 기록할 수가 없고, 또 그 중복되어 나오는 것을 꺼려서 쓰지 아니하자니, 본부(本府)가 신설(新設)한 주(州)·군(郡) 가운데 가장 큰 진(鎭)이므로, 그 건치(建置)한 유래를 자세히 기록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그대로 두어서 후일(後日)의 참고가 되게 한다.
【원전】 5 집 69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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