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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087

고려, 조선때 우리나라에는 만리장성이 있었다.
작성자 :
김정환  (IP :116.32.137.28 )
적성일 :
2009-08-21
조회수 :
3863

고려, 조선때 우리나라에는 만리장성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만리장성을 쌓은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천리장성 고려의 천리장성 그위치도 고구려는 랴오뚱반도지점에, 고려는 평안도와 함경남도에 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것도 맞지 않는다. 특히 고려가 쌓았다는 장성의 이름은 천리장성이 아니다. 천리장성이라

는 단어는 어느사서에도 없다.



우리는 사서의 원본을 해석할 때 중요한 것을 항상 빼놓는다. <속칭 만리장성>이라고 단어이다. 이는 고려가 쌓은

장성이 있었은데 속칭 만리장성이라고 한점이다.한반도에선 만리장성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시아

대륙을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대륙에 만리장성의 흔적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현중국밖에 없다. 항상 번역시 빼놓는 것이 전에도 있었는

데, 고려의 강토가 만리였다는 말.. 사학계에서 의도적으로 감춘다는 의혹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다 옮겨놓

으면서 크고 위대한 부분에서는 빼놓는다,



상식적으로 팔만대장경, 이순신장군의 연전연승등은 잘 알리면서 더 훌륭한 우리의 영토가 만리니, 만리장성을 쌓

았다는 내용, 조선의 임금이 황제 ,천자였다는 내용들은 왜 등재를 안하는 것인가?




<<조선에 만리장성이 있었다는 증거



1. 세종(장헌)대왕실록 지리지 평안도에서

'평안도의 고장성 (옛장성)은 일명 만리장성이라고 부른다고 전해온다.. "

평) 평안도의 장성은 만리장성이다. 이는 한반도에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주1) 의주목에서

장성(長城) : 고려 덕종 2년에 평장사(平章事) 유소에게 명하여 북쪽 변경의 관방(關防)을 창설하였는데, 주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 옛 국내성의 경계로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ㆍ흥화(興

化)ㆍ정주(靜州)ㆍ영해(寧海)ㆍ영덕(寧德)ㆍ영삭(寧朔)ㆍ운주(雲州)ㆍ안수(安水)ㆍ청새(淸塞)ㆍ평로(平虜)ㆍ영원

(寧遠)ㆍ정융(定戎)ㆍ맹주(孟州)ㆍ삭주(朔州) 등 14성에 걸치고,




요덕(耀德)ㆍ정변(靜邊)ㆍ화주(和州) 등 3성에 다 달아 동쪽인근 바다에 연결했다. 연무(延袤 연은 동서, 무는 남북,

즉 길게 뻗음을 나타냄) 1천여 리를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가 25척씩이며, 일명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한다.




주의 동쪽 옥강리(玉江里)의 북쪽에 있는 것은 길이가 3백 2보(步)이고, 구룡연의 북쪽에 있는 것은 길이가 4백 11보

이다. 고동보(庫洞堡)ㆍ삼기보(三岐堡) 주의 북쪽에 있다. 검동보(黔同堡) 곧 검동도이다. 암림보(暗林堡)ㆍ미륵당

보(彌勒堂堡) 주의 서남쪽 40리에 있다.




평) 고려때 1천리를 쌓았다고만 나오지 천리장성이란 말이 없다. 다만 만리장성이라고 나올 뿐이다



3.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요즘의 감숙성 민현 서쪽에서부터 이어져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하란산 음산에 이르며 거기서 동쪽으로 돌아 열하

에 이르러 료수를 건넌다. 또 남쪽으로 동가강 압록강을 건너서 곧장 조선의 황해도에 이른다. 이것이 진나라 때의 장

성이다.'



평)현중국은 만리장성을 지칭하며 한반도 황해도까지 표현하여 한반도와 연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진나라도 원래

중원에서 있던 나라로 그당시 단군조선의 시대에 속했는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라 인정되어 진조선으로 부르기도 한

다. 만리장성은 진조선때부터도 대대로 북방의 적을 막기 위해서 쌓아온 것을 알수 있다.





<< 현중국의 만리장성이 곧 고려의 만리장성을 뜻한다.



1)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린주(麟州)는 옛 령제현이고 장성이 있다'



2)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린주(麟州)는 섬서성 북쪽에 만리장성이 있는 신목현 북쪽에 있다' 고 했다.




평) 고려의 린주가 중국 사전에는 섬서성북쪽에 있다고 해서 섬서성북쪽이 고려땅을 말한 것이 된다. 고려가 만리대국

임이 증명된 것으로 섬서성 북쪽에 장성을 쌓았다는 것은 남쪽중원이 고려가 있다는 말이 된다.그리고 린주의 장성이

중국사전의 린주 남쪽의 만리장성을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시대<세종대왕실록>문헌에서 조선에 만리장성에 있었다는 사실이 나오고, 그

만리장성이 현재 현중국에 있는 만리장성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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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목판본, 조선 중기(1530) 55권 25책.


조선은 건국 후 통치상의 필요에서 지리지 편찬의 중요성을 통감, 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신색 등이 1432년(세종 14)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찬진하였다.


양성지 ·노사신 ·강희맹 ·서거정등이 성종의 명으로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하여 1481년(성종 12)에 《동국여

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하였다.


이를 다시 1486년에 증산 ·수정하여 《동국여지승람》 35권을 간행하고,


1499년(연산군 5)의 개수를 거쳐 1530년(중종 25)에 이행 ·홍언필의 증보에 의해 이 책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출처:http://blog.daum.net/greatchosun/487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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