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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80넘은 노모가 계신다.
한복을 즐겨 입는 아들이기에 어머니께서는 막둥이인 나의 옷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더 쓰신다. 손수 옷에 풀을 해서 그것을 밟으시고 또, 다듬돌에 놓고 다듬질을 하시는 어머님!
그러기에 어머니께서 만져주시는 나의 옷에 정감이 더 간다.

남자들 옷은 옷을 만지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옷의 테가 좋은 것이여.
그리고 어디에 나가도 옷이 깔끔하게 만져져 있으면 흉을 보지 않는 것이라며 행여 밖에 나가 며느리 욕이라도 먹일까봐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하여 아들의 옷을 다듬돌에 놓고 다듬질을 하신다. 또닥또닥 다듬질의 소리는 이제 잊혀져 갔지만 그래도 한여름 대청마루에서 아들의 옷을 매만지시는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우리집의 유일한 음악 소리다.

과거 우리 할머니들은 집안에 며느리를 고를 때 다듬질 소리를 듣고 그 며느리를 평해왔다.
저 며느리가 생기복덕할 며느리인가? 아니면 패가망신할 며느리인가? 는 다듬이질을 하는 며느리의 정성스러움에서 찾고 있다. 시아버지의 옷이나 지아비의 옷을 다루는 며느리가 정성으로 다듬질 할 때와 하지 못해 하는 다듬이 소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듣고 다듬이질을 하는 여인네들의 삶을 그대로 평해 왔던 것이기에 더욱 그러 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오면서 들려오는 또닥또닥 하는 다듬질하는 소리를 듣고
저 소리는 시집못간 노처녀의 푸념의 소리 .아니면 사십 세의 완숙미가 넘치는 어머니의 다듬질소리. 또는, 지아비를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청상과부의 다듬질 소리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듬이질은 우리 여인들의 삶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탁기에 세탁을 하고 다듬질 보다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어 버리기 때문에 다듬질은 옛날 어머니들의 유산물로 들어 볼 수 없어진지 오래 지만, 다듬질 속에 여인들의 삶과 철학이 숨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서방님의 옷을 다듬질 하면서 자신의 정성을 드려 옷을 매만지는 아내의 정성은 우주내면에 흐르는 음양합일의 정서가 흐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가락중 굿거리나 휘모리장단 중 합장단(덩장단)을 친다.
즉, 장구의 채편과 궁편을 함께 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합(떵)을 표현한다.
우주에 흐르는 음과양이 서로 만나 집 (합)이 된 것으로 이 합장단에서 모든 것이 파생 된다는 것이다.
음 과 양의 만남!
즉, 남녀의 만남은 결코 강한 힘만으로 될 수 없다.
서로의 감정이 흐르고 그 감정에서 사랑이 엮어 갈 때 비로써 만나는 것이다.
합은 또 하나의 생을 탄생하는 것이다.

남녀 나이 18세가 되면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즉 남녀가 음양의 이치를 알았을 때 비로소 남자는 상투를 뜨는 것이다.
음양의 합일, 바로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의미요. 음양의 합일은 부부가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남의 의미는 그 만남자체에 정성스러움이 담겨져 있다.
정성이 담겨있지 않은 만남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요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한 여인이 그간 살아온 친정을 두고 새로운 시댁에서 새로운 식구들과 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새로이 부부연을 맺은 남편 과 생활은 더욱 그러하다.
부모로부터 그간 받아온 자정교육과 여자로써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배웠지만, 그러나 자기 내면에서 남편에 대한 공경심과 시부모님의 공경심이 우러나오지 않을 경우 생활에 대한 정성스러움이 배어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이 듬뿍 담긴 다듬이 소리는 그 소리 자체만 들어도 정겨운 소리로 우리 귓가에 들려오지만. 정성이 깃들이 않은 다듬이 소리는 어쩐지 어색함으로 들리는 까닭이 이 때문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정겨운 다듬질소리!
정말 어느 음악가의 노래 소리보다 아름답고 정겨운 노래 소리였다.
비록 80 노모가 가끔씩 들려주는 다듬질 소리지만 어쩐지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어머님의 그리움과 어머니께서 손수 매만져주신 옷을 보면서 왠지 다듬질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선전했던 판소리의 명인 박동진 선생의 이 한마디가 가슴속 깊이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