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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정자나무

나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도심에서는 꿈조차 꾸지 못 할 자연!
말 그대로 전원생활이었다.

마을 어귀를 돌아 흘러가는 냇가와 마을 초입에 서있는 정자나무!
정자나무는 나의 놀이터이자 마을사람들의 휴식처이다.

5월 단오 때에는 정자나무에 그네를 달아 그네뛰기를 즐기고, 한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휴식처를 제공해주는 정자나무.

한여름에 아버지는 더위를 피해 정자나무를 벗 삼아 지내셨다.
나무 밑에 평상을 내다 놓고 오고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오수를 즐기는 여유!
다른 사람들은 한여름에 밭이나 논에 풀을 매러가지만 아버지께서는 한낮엔 어김없이 정자나무 밑에 계신다.
어른들 몰래 나무위에 오르내리고, 소리 내어 울어대던 매미를 잡겠다고 나뭇가지에 오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눈에 띠어 혼이 나곤 했다.
왜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밭에 가시지 않으시고 놀고 계실까?
어린마음에 아버지의 행동에 의문들이 생겼던 어린시절!
성장하여 결혼을 한 후에 아버지를 알 수 있었다.

새벽4시면 밖에 나가 논 밭일을 마치고 한 더위를 피해 정자나무를 벗 삼아 즐기시던 아버지의 근면성!
세상을 살려면 남들보다 근면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서 새삼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가신지 10년!
그러나 마을 어귀를 변함없이 버티고 있는 정자나무!

정자나무 밑에서 마을 일들을 논의하며 때마침 간식으로 내오는 음식들은 마을사람들의 정을 돈독 하게 했다.
그중 다른 집의 음식과는 전혀 다른 우리 집만의 특징인 음식들은 왜 그런지 먹기가 싫었다.
유독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던 나는 여름철에 수제비와 칼국수를 많이 먹었다.
그런데 우리 집 수제비와 칼국수는 다른 집들의 수제비와는 달리 누우런 수제비였기 때문이다.
다른 집들은 관공서에서 주는 배급식량으로 하얀 밀가루 인데 우리 집 밀가루는 아버지가 손수 지은 우리 밀을 도정해서 만든 밀가루였다.

유독 밭이 많은 우리 집에서는 보리와 밀 그리고 호밀농사를 많이 지었다. 남들보다 근면하신 아버지는 우리에게 좀더 많은 양의 음식과 양질의 음식을 먹이기 위해 하얀 밀가루보다는 보기는 좋지 많지만 영양이 많은 우리밀가루를 만드신 것이다.

올여름 무더위에 지친분들 시원한 정자자무 밑으로 가 우리밀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 한 그릇에 고향정취를 맘껏 느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