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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를 다시 걷다]-6. 봄의 제전, 서해안 풍어제
충남 내포지방의 서해안을 내리긋는 ‘천수만’은 얕은 바닷물의 만곡 운하 지역이다. 안면도로 가는 길은 뭍과 물이 한데 어울려 숨바꼭질하는 천수만의 점입가경을 보여주고 있다.

황도 풍어제에 펄럭이는 오방색 붕기. 조기를 몰고 다닌다는 임경업 장군의 어로 수호를 받고자 당집 앞에 올려세운 깃발들. 그러나 ‘봄의 제전’ 풍경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사진작가 황헌만

한반도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의 위쪽 동향의 천수만 쪽으로 꽃게 하나 달라붙으려 하는 모양새의 꼬맹이 섬이 딸려 있다. 섬 마을에 부속되는 섬 마을인 황도(黃島)다. 하지만 안면도는 물론이려니와 황도에도 연륙교가 놓여 ‘독립정신’의 섬마을들은 더이상 없다.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의 황도에서 천수만 너머로 빤히 바라보이는 뭍 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서산시 부석면 창리(倉里)다. 전통시대에 주사창(舟師倉)이 설치돼 있던 곳이어서 이런 지명을 내림받고 있다.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간월도(看月島)를 아래쪽으로 건사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를 바꾸는’ 방조제 공사로 ‘상전벽해’ 아니라 ‘벽해상전’의 광활한 벌판의 들머리로 변해버렸다. 황도리와 창리의 두 갯마을은 서로 눈을 흘겨가며 ‘잃어버린 황금어장’의 해조음이 그리워 마냥 칭얼거리고만 있는 듯한데 어째서 이곳을 찾았는가.

‘황도 붕기(朋旗) 풍어제’는 음력 정월 이튿날과 사흗날에 열리고, ‘창리 영신(靈神) 풍어제’는 하루씩 뒤로 물려 사흗날과 나흗날 이틀간 개최되고 있다. 두 풍어제의 가무음곡(歌舞音曲)과 백희(百戱)의 퍼포먼스는 화려하고 질탕하기만 하였다. 1989년에 찾았던 이곳의 ‘카니발’을 못내 그리워하며 다시 ‘심춘(尋春)순례’에 나선 것이다.

# 조기떼 몰고 다니는 임경업 장군 신앙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초입의 길목에서는 농민보다 어민이 더욱 달뜨는가 보다. 서해안은 남녘의 칠산 바다에서 북녘의 옹진반도 앞 연평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민속문화권역’을 이룬다. 조기떼를 몰고 다닌다는 어로 수호신 임경업 장군에게 치성을 드리는 일을 매년 빠뜨리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남해안과 제주도의 포구들에서는 ‘바람의 여신’ 영동할멈에게 우순풍조의 비라리를 바치기 시작한다. 높바람-높새바람-높하늬바람 등으로 달라져가는 바람결에서 순수와 불순을 제대로 맡아내야만 하는 터이다. 그리고 동해안에서는 세습무들이 편을 짜서 곳곳마다 ‘별신굿’을 올린다. 그 중에는 해랑당 등의 당집에서 남근석 및 목(木)을 ‘바다의 여신’에게 공궤하는 대동굿을 풍성하게 펼쳐 보이는 곳들도 있다.

바다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함께 받들려 하는 갯마을들의 ‘봄의 제전(rite of spring)’이다. 황도 풍어제는 이러한 제전의 ‘종합예술편’이라 살필 수 있다.

창리 영신제 행사의 ‘당 오르기’ (1989년 사진). 포구에 정박 중인 배로부터 ‘뱃기’를 추켜들어 거리 행진을 벌이어 ‘영신당’으로 올라간다

이 풍어제는 실상 하나의 제전이 아니라 형태와 방식이 다른 세 유형의 ‘잔치’를 한꺼번에 담아내고 있다. 첫째는 마을 대동제로 이곳에서는 ‘세경굿’이라 부르는데 내륙지방에서 벌이는 안택굿이나 지신밟기와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둘째는 당산의 당집에서 밤을 새워 드리는 ‘본굿’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대체로 임경업 장군에게 풍어를 비는 풍어굿의 콘텐츠이다. 셋째는 어선마다 배 안에서 올리는 ‘뱃고사’인데, 옛날에는 배 안에 설치된 서낭(배서낭)이 있었다. 뱃고사를 위해서는 당집에서 밤새도록 제사를 받아 잡순 붕기와 제물을 저마다 먼저 날라야 했던 것이니 행사 2일째의 새벽 경쟁이 소란스러웠다.

한국 농어촌의 ‘부락제’는 남성-유교 중심의 ‘동제’와 여성-무속 중심의 ‘당제’로 대별되지만 큰 변화를 겪어왔다. 전자는 ‘산업시대’의 속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고, 후자는 ‘미신’이라 하여 배척을 받아온 측면이 있었다. 오늘의 사정은 어떠한가.

‘무속행사의 틀을 벗어던지고 주민과 관광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를 지향한다고 한다. 부락공동체의 신명과 대동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풍어제’의 형식과 내용이 크게 바뀌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겠다. 신명, 흥(興), 대동, 두레…. 이러한 어휘들은 ‘전근대적’이기만 한 ‘민속언어’인 것일까.

# 사라지는 풍어제, 빼앗긴 들에 오는 봄

전통시대의 축제를 우리가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묻자면 맹목적인 ‘서구화’가 아니라 오히려 저들의 축제문화 콘텐츠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봄맞이 축제는 카니발과 페스티벌의 두 형태로 온 세계의 도시와 농촌을 활기차게 만들어 새로운 문화자원이 되게 하고 있다. 전자는 초기 교회의 사순절 종교제의 준비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는 고대 연극 및 가면극 축제를 계승시킨 것이다. 독일 등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축제에 감탄하면서 ‘왜 우리에게는 없는가’ 반문하지는 않는다. 지역축제는 놓아둔다 해도 서울 한복판에 30ｍ 높이의 산대(山臺)를 쌓아올려 ‘삼신산’의 전통 연희를 왜 재흥시키려 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한편 상업주의에 편승된 발렌타인 데이니, 화이트 데이니 하는 것에 맹목인 청소년문화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떠한 책임과 무책임을 표출하는가 하는 것도 살피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축제도 바르게 챙기지 못하고 남의 축제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황도 풍어제의 ‘배치기’(1989년 사진). 풍어를 바라는 선주와 선장과 선원들이 배에서 나와 풍물을 울리며 거리축제를 벌인다.

중국의 ‘춘제(春祭)’는 폭죽 터뜨리기와 붉은 색의 장식과 사자 탈춤놀이라는 3박자의 특성을 살려내고 있고, 일본의 ‘마쯔라’는 각 지역의 향토성을 오히려 개성적으로 발휘하게 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이번에 다시 살펴본 황도와 창리의 풍어제는 사양의 단계를 지나 어쩌면 쇠락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우울한 심사에 잠기게 한다.

‘풍경의 반란’이라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오방색의 커다란 종이 깃발들을 겹겹이 매달아 펄럭거리게 했던 ‘철선(안강망 어선)’들이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선외기 엔진 보트’라 부르는 낚싯배들만이 휑뎅그렁하다. 황도는 한때 제주도 넘어 동지나해까지도 출어했다는 중선 배(철선)가 30여척 가까이나 있었던 부자마을이었다. 선주들이 물주 노릇을 하여 본굿만 아니라 뱃고사를 참으로 성대하게 치렀고, 1977년의 민속경연대회에서는 이러한 ‘붕기 풍어제’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원근해 조기잡이 어업은 몰락해버리고 방조제 공사로 천수만의 환경이 변화돼 바지락, 새우, 소라, 꽃게 채취가 주민들의 생업이 되어 있다.

어로 수호신 ‘임경업 신앙’은 무의미하게 된 데다 마을 동산에는 도시자본의 유입으로 포스트모던의 감각을 뽐내는 ‘펜션’들이 새롭게 들어차고 있다. ‘풍어제’는 더이상 마을공동체성을 유지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안택굿과 지신밟기의 대동굿이 건성의 행사가 돼버리고, 충남 지정 무형문화재 12호인 ‘붕기타령’의 태평소 기능보유자(강대형)는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풍악과 풍물마저도 시들해져 있다.

서해안 조기잡이 어업권역의 뱃고사와 대동굿을 주도해온 황해도 출신 김금화(75) 일행은 매년 빠지지 않고 황도 풍어제에서 춤과 노래와 공수를 베풀어 왔다. 스스로 ‘나라 만신(國巫)’임을 자부해온 그는 이 제전의 마지막 행사인 ‘파제(罷祭)’를 갈무리하면서 ‘벌 대동춤’을 추었다. 모든 신령들 다 퍼먹이고 다독거려 돌려보내는 춤이라 한다.

이러한 ‘봄의 제전’으로 이 마을은 올해의 복덕과 안녕과 풍성을 누릴 수 있게 될 터이지만, 국풍(國風)의 ‘축제문화’를 바로세우는 것과 관련되는 고민은 남아 있다.

〈소설가 박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