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연개소문과 관련된
내용만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옛날 수나라의 패전 경험을 철저히 공부, 연구한 당의 작전 지휘부는 보급품을 가우리군에게 철저히 파괴, 탈취당한 데에 수나라의 패전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번엔 해군을 동원하여 강력한 요동성을 피해 그 북쪽의 창려를 공격, 확보하여 해운 수송으로 보급품을 안전하게 저장해 놓고, 육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세적 장군의 입장에선 안시성을 좌두고 통과하면,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이 당군의 허리를 토막내어 분리할 것이므로, 작전상 안시성을 먼저 공파한 후 진격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안시성(安市城). 건안성(建安城)의 북쪽에 아름다운 탕지(湯池) 호수를 서쪽에 안고 동쪽에 연산 고지(燕山高地)에 의지하여
교묘하게 서 있는 안시성은 난공불락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안시성주 양만춘은 지용(智勇)을 겸비한 인물로서, 연개소문의 작전 지시를 받고 조카 양수봉과 함께 당군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안시성에 묶어 놓을 방책을 의논하였다.
드디어 당 태종(唐 太宗)이 금휴개(金?鎧 : 황금색 갑주)를 입고 늙은 이세적 장군과 함께 안시성에 도착하여 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이 때, 가우리의 북부 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이 말갈병(靺鞨兵: 옛 쥬신족으로 가우리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북 지방의 지원군) 15만 명을 거느리고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연산 고지에 보루(堡壘)를 만들어 주둔하며, 당군과 야전으로 맞섰다. 따라서, 당군도 성 공격군과 야전군으로 나누어 각각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설인귀(薛仁貴)의 야전군은 고연수의 가우리군을 공격하였는데, 가우리군은 당군(唐軍)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갑자기 역습을 하는 등, 병을 소부대로 나누어 교대로 공격하다 도망가다 하면서 밤낮으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한편, 노장 이세적이 지휘하는 성 공격군도 천자(天子)를 직접 모시고 전쟁에 임한지라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은 높고 견고하여, 당군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석포(石砲)로도 성 위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 성에 가까이 접근하려면 성 위에서 화살들이 비오듯 쏟아져서 막대한 희생을 당하였다.
성 밑으로부터의 공격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당 태종은 성 위로부터 공격하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하였다. 그는 안시성보다 더 높은 인공 토산(土山)을 급히 만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믿을 수 없는 대토목 공사에 당군 약 50만 명이 주야로 매달려서, 60일간에 걸쳐 드디어 안시성보다 더 높은 성(城)을 완성하였으니 7월부터 시작한 것이 어느덧 9월이 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토성(土城 : 사실은 木城임)은 높이가 100미터를 넘고, 길이가 900미터, 폭이 300미터나 되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역사상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 거대한 작품을 완성한 당 태종은 그 동안 피땀 흘려 일했던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풀어 크게 위로하니, 병사들은 천자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며 배부르게 취하며 오래간만에 편히 쉬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안시성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토성 위에서 안시성을 내려다보면서 석포를 쏘고 불화살을 쏘아 성을 불바다로 만들고 그 다음에 가교를 내려 성에 연결하여 안시성으로 넘어 들어가면 아무리 양만춘이라도 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토성을 바라보는 당태종의 마음은 흐뭇했고, 자신의 작품이 퍽이나 자랑스러웠다.
피곤에 지친 당군(唐軍)들은 포식과 과음으로 모두 내일의 승리를 꿈꾸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삼경이 지난 시간에 안시성의 성벽을 타고 내려오는 검은 그림자들이 있었다. 부장(副將) 양수봉 장군이 인솔하는 특공대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성 위로 가우리의 궁병들이 나타나 독화살을 날려 당성(唐城) 수비병들을 소리 없이 사살하고 있었다.
가우리의 특공대들은 당성의 기둥 하나하나에 염초와 유황 뭉치들을 묶고, 기름을 나무 기둥에 마구 뿌린 후, 불을 질렀다. 당성의 표면은 흙주머니를 덮어 토산(土山)처럼 보였지만, 그 속은 통나무들을 엮어 쌓아올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