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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장상용기자의 만화가 열전] '라이파이' 김산호 씨 ①
작성자 :
다물넷  (IP :210.182.108.25 )
적성일 :
2003-01-20
조회수 :
2826

[일간스포츠 - 2003년 01월 07일 보도자료]



첫 SF…전국 어린이 '열병'
약관의 나이에 공무원 100배 수입 '초특급 작가' 대우


남자 나이 26세. 대다수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시기다. 조금 더 빠르냐, 늦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데 20세에 패러다임을 바꾸고 26세에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한국을 떠난 만화가가 있다.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 씨(64). 빅리그 무대인 미국에 진출해서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그는 별명은 도깨비.

한국 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1959년~64년)는 마치 열병처럼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다. 인기로 치자면 전성기 때의 박봉성, 이현세, 허영만 씨 등을 모두 합쳐야 필적할 수 있을까.

자음 ‘ㄹ’을 새겨넣은 머리 두건을 두르고 외계의 침략자를 무찌르는 한국인 ‘라이파이’의 활약상을 그린 단행본이 나오는 날(주 1회)이면, 조금이라도 먼저 만화를 보려고 뛰어온 어린이들로 대본소가 북적거렸다.


라디오, TV도 별볼일 없고 아무런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에 한국판 수퍼 히어로 <라이파이>는 어린이들의 구세주였다. 대본소들이 보통 만화 한 권 씩 들여놓는 시대였지만, <라이파이>의 경우 똑 같은 책을 네 권씩 비치했다. 심지어는 권 당 20권 씩 갖다 놓은 대본소도 나타났다. 네 권을 보유해도 모자라, 한 권을 반으로 쪼개 8권으로 만들어 돌려보는 일이 예사였다.

인기 단행본 초판이 3000부인데 비해 <라이파이>의 초판은 4만~5만부가 기본. 지우개에 ‘라이파이’의 얼굴을 새기는 것도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크게 유행했다.

20세에 <라이파이>를 발표한 김 씨는 초특급 작가 대우를 받았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3000원~4000원인데
김 씨는 한 달에 30만원을 넘게 벌었다. 당시 박기당, 김종래 화백 등이 주도하던 50년대~60년대 만화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눈물을 짜는 신파극 일색. 그런데 <라이파이>는 그림을 글, 이야기의 보조도구로 이용한 기존의 만화 작법을 완전히 뒤집었다.

또 시원시원한 비주얼, 5대양 6대주, 우주를 누비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어린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후로 ‘김산호’라는 이름을 단 수십 편의 만화는 무조건 히트를 쳤다. 작가로서 그의 명성과 지위는 <라이파이>를 끝낸 24세에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26세 된 1965년 그는 필화 사건을 계기로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라이파이’의 적이 옷에 단 별이 문제가 됐다.

인공기와 닮았다는, 요즘 시대라면 말로 안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산으로 끌려갔던 그는 국내에서 창작의 의욕을 잃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는 국내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던 상황이었다. 일본 만화계 역시 그에게 성이 차지 않았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1970년대 미국서도 300여 편의 인기 만화를 발표하며 ‘레드 머플러(붉은 머플러를 즐겨 하고 다님)’ 유행을 일으킨 그는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을 벌이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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