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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50

인터뷰기사: 라이파이에서 대한민족통사 시리즈를 출판하기 까지...
작성자 :
다물넷  (IP :124.80.67.126 )
적성일 :
2006-05-19
조회수 :
3995

대쥬신제국사, 한국105대천황존영집, 대한민족통사시리즈 치우천황 단군조선 대제독이순신 등의 역사회화집을 펴내고 있는 김산호 선생님은 1958~1966년에는 슈퍼 베스트셀러인 우리나라 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를 펴낸 분입니다.
우리나라 초기 만화계의 거두였던 분이 지금은 역사관련 회화집을 집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연관되어 지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인미디어에서 출판된 “만화 절대지존 그들을 만나다”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게재된 글을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상상이 현실로! 최초의 슈퍼 베스트셀러 [라이파이] 작가


경기도 용인군 토곡면 삼계리에 위치한 4층 짜리 빌라 맨 위층에 자리한 집은 안에 들어가 있으면 속세를 잊게 한다. 동네 골목길을 연상한 복도며 장독대, 황토방이 있는가 싶으면 사우나실, 미니 바 등의 서양식 장소도로 있다. 만몽제라고 이름지어진 산호 선생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2005년 5월11일 대낮인터뷰.

산호 선생은 한국만화 사상 최초의 슈퍼베스트셀러 <라이파이>의 작가다. 발행예고 포스터를 최초로 냈고, 라미네이트 광택을 표지에 처음 도입했으며 판형과 종이에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다. 일주일에 한번씩 책이 나와, 이때면 만화방마다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도 당시의 진풍경.



요 며칠간 계속 연락을 해도 전화를 안 받더라.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열흘간 중국을 방문하고 그저께 밤에 돌아왔다. 바삐 다녀온 것은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한 열흘간 다녀왔다. 장소는 두만강 발원지다. 사진도 찍어오고, 그곳이 우리 땅이라는 사실도 재삼 확인하고 왔다.


요즘 하는 일이 무엇이길래 중국 방문이 필요했나?

크게 보자면 이전에 출간했던 <대쥬신제국사>나 <한국105대 천황존영집>의 보급판의 필요성을 느껴 준비하는 것이며,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면 오는 금요일에 나올 만화단행본 <치우천황>에 이은 <단군조선> 편(6월 중순 발간 예정)에 게재될 일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방문 길에서는 무엇을 확인했나?

늘 느끼는 것이지만 북간도와 만주 지역은 확실히 우리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두만강 발원지를 갔는데, 그 발원지는 두만강을 경계로 한 양측 두 나라를 사람의 다리로 건널 정도로 좁다.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지점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물론 1시간 30분만 걸어 내려가면 강폭은 엄청나게 커진다. 두만강 중국지역의 마을이름이 고성리, 토문리... 그렇다. 중국은 마을 단위에 ‘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잔재다. 여기 뿐 아니라 연변 등에도 한국의 잔재는 속속 확인된다.


중국을 자주 오가는 것 같던데...?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규모 그림 작업을 하기 위해서도 자주 간다. 여기 작업실에서도 일을 하지만 대규모 작업은 만주 연길 화전자에 있는 화실에서 주로 하는 편이다. 그곳은 화실 넓이가 70여평 되므로 대규모 작업을 하기가 좋다. 300~500호 짜리 작업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출판사를 설립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번 금요일(5월 13일) 치우천황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도서출판 다물넷이다. 내가 만든 출판사다. 직접 출판사를 설립한 이유는 최고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보통 우리나라 출판사는 영세성 때문에 그 책에 맞는 종이와 인쇄 방법을 선택하기보다는 이익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편집하는 데 하 세월, 인쇄하고 제본하는 데 세월 보내기 일쑤다. 최선의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현재하고 있는 작업은 <대쥬신제국사>와 <한국105대 천황존영집>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작품집으로 보인다.

그렇다. 대쥬신제국사는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말풍선을 집어넣는 만화스타일로 구성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달리 성인층의 독자가 많았고, 그들은 기존 만화스타일의 작품집보다 좀 더 진지한 형태를 원했다. 그래서 성인위주의 작품집으로 만들었다. 그림과 글이 적당하게 어울린 형태로 보면 된다. 더러는 논문도 실린다. 2003년 9월에 성균관대에서 열린 고대 한일관계 학술회의(고대 한일역사전개의 올바른 방향성 탐구) 때 발표자 중 한사람으로 낸 논문도 그 중 하나다. 치우천왕집을 시작으로 단군조선, 대제독 이순신, 백제와 왜, 부여사, 신라사, 한민족의 분국 일본 등등 계속 이이질 것이다. <한국역대천왕존영집>은 <한국105대 천황존영집>의 보급판으로 보면 된다. 나는 이런 형태도 앞으로 만화의 한 장르로 자리할 것으로 추측한다.


부산피난 시절-대략 13세쯤 되었을텐데-<만흥씨>라는 부산일보 시사만화를 보고 만화세계로 빠져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전된 이야기다. 물론 만홍씨의 작가와 한동네(서대신동)에 살았고, 그 집을 들락거렸다. 나는 그전부터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또 대신동 밑에 위치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만화에 빠져있었다. 당시에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한국 작가 이름으로 둔갑돼 출간됐다)가 인기를 끌었는데 역시 즐겨보았다. 그러던 차, 먹물이 만화로 변화는 과정을 유심히 보게됐고(만홍씨 작가의 작업을 통해), 이러한 점들이 모여 나로 하여금 만화가의 꿈을 꾸게 했다.


만화작가의 길은 쉽지 않다. 어떻게 공부하고 단련했나?

그 당시는 워낙 살기가 어려워 다들 직접 벌어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그림솜씨를 앞세워 극장 간판을 그렸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문화극장, 다음엔 파라마운트, 국제, 나중에 봉래극장에서는 선전주임까지 맡았다. 이 일을 하면서도 물론 <만화세계>라는 만화전문잡지에 틈틈이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누렸다.


즐겨봤던 작품이나 좋아했던 만화가는?

주로 미국만화를 즐겨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프린스 바리언트>다. 내 작품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은 기초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과장되지 않으며 회화적으로 아주 우수한 작품으로 오늘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는데...

그림을 좋아했고, 회화는 만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본이 되므로 주저없이 택했다. 입학 후에는 간판 그리기를 그만두고 만화를 그렸다. 솔직히 말해 간판 그리는 것보다 수익이 쏠쏠했다.

데뷔작이 <황혼에 빛난 별>(1957년)이다. 독립투사의 이야기인데, 19살 나이에 데뷔하는 일도 쉽지 않았겠지만 독립군이야기를 극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요즘 19살은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당시 19살은 만만찮은 나이다. 해방된지도 얼마되지 않고 더구나 전쟁의 소용돌이도 금방 지났다. 모두 자립정신이 투철할 때다. 그런 이야기는 항상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다.


이듬해에 <전쟁과 평화> <펨페스트> 등의 세계 고전을 만화화 했는데...

우리 집은 원래 선비 집안이라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읽었다. 그려낸 대부분이 내가 읽고 감명받은 책들을 만화화 한 것이다. 나는 특별한 장르가 없다. 다양한 부분에 모두 관심을 뒀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겠다고 여겨지면 바로 작품화했다.


1958~1966년은 <라이파아>시대라고 할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어디서 어떻게 착안했나?

그 때는 정말 우울한 시대다. 가난하고 희망이 없는 시대였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미국에는 슈퍼맨이 있고, 일본에는 아톰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들과 비견되는 무엇이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 진 것이 라이파이다.


얼마나 많이 팔렸나?

당시는 지금처럼 출간이나 판매가 투명한 시대가 아니다. 더구나 작가 위에 군림해 있던 출판사가 몇 부 팔린다고 제대로 말할 턱이 있나. 다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이 라이파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기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라이파이라는 사람이 갖은 신무기를 써서 화제를 모으는 데다가 우리를 돕고 있는 미국을 오히려 도와주고 세계를 구해주니까 얼마나 통쾌했겠나. 또 당시는 순정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인데 남성위주의 판타지 한 액션물이 희귀성을 부채질 했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상대(적)를 단순히 총을 쏴서 죽이는 것이 아닌 단지 마비시키는 정도에서 무기를 쓰고 직접 몸으로 발차기 등을 해서 적을 무찌르는 인간적인 히어로인데다 미묘한 러브스토리가 살짝 흘러주니 인기가 높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주먹질보다 발차기가 통쾌한 법이다.


배경이 22세기다. 하필이면 22세기인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좀 먼 미래여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라이파이의 작명도 궁금하다.

22세기라면 이름이 바뀔 것이라고 상상됐다. 아마 그때 즈음이면 김아무개, 이아무개가 아니라 코드화될 것 같았다. 코드화되는 이름 가운데 외우기 쉽고 부르기 쉬운 것을 찾다보니 그렇게 됐다.

라이파이에 보면 별별 신무기가 총동원된다. 제비호부터 시작해서 레이저건, 유도창, 로켓벨트, 전파발신기 등등 무수하다. 라이파이를 기획하고 이러한 신무기까지 구상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겠다.
글쎄, 무엇을 하겠다고 일단 떠오르면 그것에 필요한 부대 사항들은 쭉쭉 잇따른다. 이를테면 외계인인 슈퍼맨은 가슴에 S자를 사용하지만, 한국인인 라이파이는 ㄹ자를 로고로 해야겠다. 슈퍼맨은 마음대로 하늘을 날지만 인간인 라이파이를 하늘에 날게 하려면 어떤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로켓벨트를 달자. 우주와 지구를 쉽게 오가려면 우주왕복선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생긴 것이 제비호. 제비호를 어떻게 부를까? 전파발신기가 필요하겠다. 그런 식이다. 등장인물도 그렇다. 라이파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여성이면 더 눈길을 끌겠다(제비양 탄생). 라이파이의 라이벌 중에 여성을 하나 등장시켜 삼각관계를 은근슬쩍 부추기면(녹의 여왕) 재미가 더 있지 않을까. 그렇게 구상된다. 이런 것들은 빠르면 하루, 길면 며칠 정도면 충분하다.


모두 4부까지다. 처음부터 4부까지를 계획했나?

처음에는 한 권 내놓은 것이 잘 팔리기만 원했다. 잘 팔려야 그 다음 권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그렸는데 폭발했다. 그래서 계속 내게됐고, 권을 거듭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게 된 거다.


해방군이라는 이름과 깃발에 그려진 붉은 별이 인공기와 관계된다고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조사도 받고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일 때문에 미국행을 결행했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 일로 인해 좀 더 빨리 가게됐지만 어차피 가려고 했다. 라이파이로 한참 인기를 끌 때다. 다른 출판사 사람들이 라이파이에 대항할 다른 작품을 찾아다닌 모양이더라. 그러다가 “라이파이가 일본 작품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모아졌고(그 당시에 일본 만화를 버젓이 한국작가 이름으로 바꿔 출판하곤 했다) 일본의 출판사에 라이파이 원작자를 문의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경유로 일본 사람들도 라이파이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는 일본 현지 출판을 제의받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해외진출에 염두를 두게 됐고, 기왕 외국으로 진출할 바에 만화, 애니메이션 최고봉인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가 필화사건이 터졌다.


중앙정보부까지 간 만화작가는 전무후무할 것 같다. 무슨 일을 겪었나?

조사하려고 본 게 아니라 라이파이가 하도 인기가 있으니까 호기심으로 보다가 부른 것 같다. 라이파이와 싸우는 상대가 해방군이다. 그 해방군의 깃발에 붉은 별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방군이라는 이름이 북한을 연상시킨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다 극중 해방군은 셌다. 라이파이가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원래 책의 마지막엔 다음 편을 기대하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나도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라이파이가 궁지에 몰린 것처럼 연출했는데, 그것도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 다음 호엔 라이파이가 해방군을 멋지게 무찌른다. 당시 일주일에 한권씩 나왔으니 일주일만 더 기다렸으면 됐을 일인데 나를 너무 빨리 부근 꼴이다. 한 일주일간 출퇴근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랬다. 1966년도의 일이다.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4부 이후도 계속 나왔을까?

좀 더 이것저것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윤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윤 박사는 이런 저런 신무기를 만들어 라이파이에게 제공한다. 신무기 만드는 과정 같은 것을 에피소드로 꾸며보고 싶었는데 놓쳐 아쉽다. 대신 미국에 가려고 뒷마무리를 열심히 했다. 나의 작품을 중간에 끝낼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피터링>을 출간했다. 피터링은 라이파이와 제비양의 2세다. 두 사람의 결혼은 라이파이 4부 마지막 편에 나온다. 피터링은 아버지의 사망 후 유지를 받들어 악을 무찌른다. 시리즈물로 27권이나 계속됐다.


작품을 하다보면 처음 예정한 것과 다르게 전환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캐릭터나 스토리에서 전환된 경우는 없나?

전환됐다기 보다 진화된 경우는 라이파이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라이파이를 구상할 때 라이파이의 몸이 3등신이다. 미키마우스 등 당시 인기 캐릭터는 대부분 3등신으로, 3등신이 가장 익숙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라이파이는 액션을 한다. 특히 태권도의 발차기가 주 액션인데 3등신으론 가당치도 않다. 그래서 자꾸 길어지게 되고 급기야는 8등신이 됐다. 코도 처음에는 동그랗다가 나중에는 쭉 뻗은 코가 된다.


등장인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모두가 내 자식이니 모두 애착을 느낀다. 구태여 고르라면 라이파이. 제비양, 녹의 여왕이다.


진행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심했던 인물은?

녹의 여왕이다. 처음에는 단지 악한일 뿐이었다. 그러나 적이지만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녹의 여왕은 라이파이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구해주곤 한다. 라이파이와 제비양 세사람의 야릇한 삼각관계도 나중에 설정된 거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녹의 여왕 팬도 많았을 것이며 라이파이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괜히 그렸다는 인물은 없나?

목표가 있었으므로 인물을 창조했다. 괜히 그렸다는 인물은 없고, 최대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다. 윤 박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행 때문에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펼치지 못했다. 김 탐정의 경우는 라이파이로 하여금 국내에서 보다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게 하려다 보니 축소됐다. 김 탐정은 수사권을 가진 사람이다. 수사를 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라이파이에게 의뢰해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구상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김 탐정과 손을 잡으면 국내에서 돌게 된다. 김 탐정이 세계를 상대로 수사할 수 없지 않는가.


홀로그램, 우주왕복선(제비호), 삐삐 개념으로 주인공이 차고 다니는 호출기 등등 등장하는 장비 중에 오늘날 실현됐거나 실현을 앞둔 것이 많다. 어떻게 착안했나?

미국 과학잡지를 꾸준히 봐온 것이 착안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것에다 상상력이 합하여 꽃을 피웠다고 할까. 정말 톰 크루즈가 나오는 미래 범죄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라이파이가 메고 다녔던 로켓벨트가 등장하지 않는가.


라이파이가 나오는 날엔 기다리는 독자들로 줄을 설 정도였다. 전무후무한 인기였는데... 독자가 느끼는 체감 인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출판사 사장이 마음대로 책을 낼 때였는데, 내 마음대로 냈으니 그 인기는 짐작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이것저것을 시도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발행 예고 포스터도 내가 처음 시도했고 표지에 라미네이트라고 하는 광택내기도 시도했고, 책의 크기를 2배로 늘여 4X6배판으로 내기도 했다. 종이도 좀 더 고급으로 택했고, 사진 분해도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은 내 작품을 좀 더 돋보이게, 좀 더 독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한 노력이다.


일주일에 한 권이 출간됐는데,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한다. 기획하고 스토리 짜고 데생하고 펜 터치하고 일이 너무 많다. 당시엔 기껏해야 1~2명의 문하생을 두고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스튜디오 개념을 도입했다. 분업화된 일을 하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작업을 한다. 물론 나는 기획이나 컨셉 등 토털 아이디어를 낸다. 이렇게 하니까 일주일에 한 권은 물론 2권 이상 동시제작도 가능하다.


당시의 만화계와 작가상황이 궁금하다.

한국만화가 정립되기 바로 그 이전 시대라고 보면 된다. 만화가들은 이를 위해 이것저것을 시도했다. 순정만화가 주류로 각광을 받았고, 일본만화가 작가 이름만 한국 이름으로 둔갑해 한국만화인 듯이 출판됐다. 대본소에 납품하는 출판사가 작가들을 좌지우지 했으니까 고료는 쌌고, 작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다.


당시 활약한 작가가 누구며, 친분이 두터웠던 작가는 누구인가?

권영섭 박기당 김종래 신동우 박기정 길창덕 추동성 등등이 기억난다. 대부분의 작가와 모두 가까웠고, 특별히 친했다면 권영섭 정도일까.


라이파이 애니메이션 투자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25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제의는 받았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그것으로는 제작비가 맞지 않다. 만약에 만든다면 최고의 테크놀로지를 투입할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적어도 100억원의 제작비가 든다. 25억원을 들여 만들면 망한다. 라이파이의 이미지만 나빠질 뿐 덕 될 것이 없다. 만약에 100억원을 투자한다면 1000억원을 벌어들일 자신이 있다. 괜히 만들었다가 이미지만 나빠지면 곤란하다. 그럴 바엔 라이파이를 전설 속에 묻어두고 싶다.


라이파이 외에도 <십자가에 핀 꽃><검은 나비><모비딕><우리천사><차돌장군><청동마왕><흑검무><광풍도시><불타는 창공> 등을 냈다. 어떤 장르의 만화인가?

특별한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다. 어떤 내용도 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리천사는 순정만화다. 흑검무는 무협물이며 불타는 창공은 2차 세계대전 비사를 다룬 항공만화다.


1966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만화전문 출판사 찰튼코믹스 전속작가로 활동했는데...?

미국엔 3대 메이저 만화출판사가 있었다. 델은 클래식 쪽으로 주로 명작만화를 냈다. 마블코믹스는 판타지 쪽 출판사로 <슈퍼맨><배트맨> 등을 출판했고, 찰튼코믹스는 광범위하게 이것저것을 냈는데 공포 심리 쪽 만화가 강세를 띠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서부극을 그렸다. <콜로라도의 달>이 서부극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기본이 튼튼하면 어디든 환영받는다. 미국에선 만화가를 아티스트라고 부른다.(화가는 파인아티스트(fine artist)다).


미국에서 모두 700여편의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샤이언 키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서부활극으로 미국 이주 초기작품이다. 라이파이가 우리나라 50대 남자들의 추억의 작품이라면 미국 40~50대 남자들이 잊지 못하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라이파이가 인기 끈 것 못지않게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동양풍의 만화, 한국적 특색이 담긴 만화를 많이 발표했다.

구한말 미국에 망명 온 한국인(상투 틀고 삿갓을 눌러썼다)이 정의를 위해 태권도로 악당을 응징하는 <플로토>, 치마저고리 입은 유령을 등장시켜 임진왜란의 부당성을 밝히는 <유령이야기> 등등 한국과 동양적 분위기를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용녀>는 웨렌 출판사에서 낸 괴기담 만화집 <뱀파렐라>에 실려 세계 17개국에 출판됐다. 영어는 물론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됐다.


대사는 한글로 넣고 영어자막 처리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임진왜란 때 희생당한 조선여자가 복수한다는 내용의 <약속>이란 작품이다. 아마 한글 말 풍선에 영어자막 작품은 최초일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외국만화를 보는 기분이라고 독자들이 더 좋아하더라.


미국에서의 작가 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행복했고, 풍요로웠다. 창의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미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80년대 세계 최초로 바다 밑을 여행하는 관광잠수함 마리아 1호를 사이판 앞바다에 띄우고 제주도 서귀포 문섬에 마리아 3호를 띠우는 등 사업가로도 대단했다고 알고 있다.

산호그룹의 회장으로 세계를 무대로 뛰었다. 관광잠수함을 직접 디자인했고,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서 기계설계를 했으며 룩셈부르크의 한 은행이 파이낸싱했다.(배는 홀수로 부른다. 1호, 3호, 5호...)


<대쥬신제국사>와 <105대 천황존영집>은 고조선을 비롯 우리 역사와 관련된 일종의 역사서적이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산호그룹 회장으로 사업할 때 중국 북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북경대학의 역사학 교수를 만났는데 우리 고대 역사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게됐다. 그러다 사업을 접은 후 아예 그곳으로 가 발품을 팔면서 흔적을 더듬었다.

7년간 자료조사를 했다는데 7년이란 정말 만만찮은 기간이다.
정말 안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간도지방이나 만주 지역은 샅샅이 뒤질 정도였다. 고조선과 관련되는 책도 수소문해서라도 구했다.(책을 한권 보여주면서) 이 책(만족대사전, 滿族
大辭典)은 이 세상에서 두 개 뿐이다. 한 권은 저자가, 한 권은 여기 내가 갖고 있다. 다른 책은 중국 당국에서 모두 없애버렸다(만족대사전에는 여진이나 만주 등이 한국과 같은 민족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즉 중국의 분열을 사전에 막기위해 없앴다는 것이다). 구입할 수 없는 책은 복사해서 가져왔다(복사한 책이 여럿 있었다). 읽고 해석한 덕분에 중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다.


대쥬신제국사란 무엇인가?

쥬신이란 조선이나 여진, 숙신의 이두식 표현이다. 내가 모은 자료에 따르면 그들과 여진족, 말갈족 등은 우리와 한 핏줄이다. 예맥이나 부여의 도읍지만 봐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되지만 일제 후 역사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일부학자들에 의해 호도된 것이 지금까지 왔다. 나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는 하나의 방법으로 대쥬신제국사를 기획하고 펴낸 것이다. 대쥬신제국사는 고조선만 국한 된 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한민족 전체의 역사다큐만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는 회화극본체로 그렸다.

항상 새로운 기법은 창조되어야 한다. “이 내용엔 어떤 작법이 어울릴까”를 생각하고 그것에 맞추면 된다. 대쥬신제국사는 정통회화기법이 어울릴 것이라고 여겼다. 회화극본체는 정통회화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데뷔작부터 일관되게 민족의 자긍심과 기상을 일갈한다. 뚜렷한 이유라도 있나?

독립군 후손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는 누구나 다 그랬을 거다. 생각해 봐라. 다른 나라의 지배 밑에서 핍박받다가 해방된 지 얼마 안되고, 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이로 인해 민족의식이 고취된 거다. 그것뿐인가. 나라가 약하면 쫓겨다니고, 천대 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우리는 재건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 되는 거다.


<대쥬신제국>의 완성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한국 105대 천황존영집>은 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본 적도 없는 선조들을 그리기는 정말 어려웠겠다. 그렇다고 자료가 제대로 갖춰진 것도 아닐텐데.... 제대로 그리려면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었겠다.

자료는 중국에서 모은 것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그리기에는 충분했다. 본적이 없고 초상화가 없더라도 그 문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강감찬 장군의 초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외모는 짐작한다. 그에 관한 많은 글들이 그를 대변한다. 이 작업도 마찬가지다. 자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풍모와 기개가 절로 느껴진다.


대 작업을 하다보면 자신도 알 수 없는 영감작용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매일 집중적으로 생각하면 현몽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10초 후에 잊는다지 않나. 다만 이미지가 확연히 떠오르는 경험은 몇 번 했다. 대답이 될는지는 모르나 내가 꼭 해야하는 신의 계시라는 점은 느꼈다. 뜻이 있는 역사학자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또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역사의식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할 수밖에 더 있나.


작품을 할 때 중국에서 주로 작업한다. 화실이 넓어 큰 캔버스를 마음놓고 그릴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이유가 있을까?

현장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약에 10월 전투신을 그린다고 치자. 만주 모 지방에서의 10월은 그 곳에서 10월을 경험하지 않고는 곤란하다. 직접 그곳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그리면 왠지 그 기운을 받는지 그림이 힘차지고 완성도가 달라진다.


용인에 둥지를 튼 것은 언제며, 이유는?

중국 만주 등지를 오가면서 대쥬신제국사 제작을 결심하고는 귀국을 결행했다. 처음부터 용인을 택한 것은 아니다. 집사람은 친구들이 많은 서울 논현동에서 살고 싶어했고 나는 조용한 동해를 원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조율해 용인 정도로 택하게 됐다. 문제는 집이었다. 대부분의 아파트 등은 바닥과 천장 길이가 너무 낮은데 그것도 싫었고 획일적인 구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전긍긍하던 중 막 시공하려는 집이 있었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변경할 것을 약속받고 가장 윗층 두채를 사서 텄다. 꼭대기 층인 관계로 바닥에서 천장 높이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3층에서 올라오는 계단부터 4층 전체를 전부 내가 설계하고 작업을 감독했다. 4층 입구에만 만몽제라는 간판을 달았다. 제자들이 달아준 거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라이파이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2003년 가을에 40, 50대로 구성된 팬들이 모였고, 동호회도 결성됐다.

동호회 사람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그들을 분석해보니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40~50% 정도가 전문직에서 종사하고 있더라. 일련의 모임에 나타난 유명인을 소개하면 최백호, 전유성, 고영수, 강석, 양희은, 박재동, 이익훈 등등이 기억난다. 강석과 최백호는 서로들 기억하는 대로 라이파이를 그려 자기가 그린 것이 맞다고 아옹다옹하기도 했다(두사람 다 맞다. 진화라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른데 각기 자신이 강하게 추억하는 부분을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최백호는 신곡 재킷에 유도창을 든 라이파이를 그려 선물해오기도 했다. 이익훈은 라이파이를 보고 외국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고, 외국어학원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더라.


오래 작업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올 것 같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아직도 작업이 가장 즐겁다. 건강은 끄덕 없다. 항상 즐겁게 사는데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은 매일 1시간 정도. 러닝머신에서 1시간 정도 걷기 및 조깅을 하는 정도다(운동방에 러닝머신 구비). 운동 후 샤워하고 황토방에서 잠을 잔다. 피로가 풀리고 개운해진다.

순 한국식 음식도 건강을 도울 것 같은데(인터뷰하면서 점심을 함께 했다. 부인이 직접 차려주었는데 배추우거지무침, 오리무침, 미역줄기볶음, 굴전, 김치, 백김치, 갈치구이가 나왔고, 특히 향긋한 쑥 된장국은 별미 중 별미였다).
나이가 먹을수록 포식과 육식은 건강에 적이다. 나는 항상 이 정도로 가볍게 먹는다.


계단을 올라와 집 문에 들어설 때 만몽제라는 현판을 봤다.

만몽은 내 호다. 만가지 꿈이라는 뜻인데, 그 탓인지 나는 항상 꿈을 꾸고 꿈을 먹고 꿈을 판다. 항상 꿈과 함께 하므로 늙지 않는 것 같다.


작가가 되려는 예비생들에게 조언해줄 게 있다면? 작가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것, 나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창작력과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 그림의 기초가 튼튼해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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