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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56

민족사를 위하여 / 월간 참좋은이들21 4월호 특집에 실린글
작성자 :
다물넷  (IP :211.54.2.241 )
적성일 :
2007-03-27
조회수 :
4282


민족사학,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글 / 만몽 김산호 화백



만몽 김산호 화백이 지난해에 이어 3월11일 부터 30일까지 서울 경복궁역 대전시실에서 민족역사 회화전을 개최한다. 국학연구소, 한배달, 한민족생활의학 연구회, 미래산업기술연구원, 라이파이동호회 등이 후원한다.

이번 전시에는 민족의 태시기(B.C 5천903년 이전)와 배달한국(B.C 5천903년), 고종황제(조선)에 걸쳐 각 시대별 임금을 포함해 치우천황 등 고대사의 인물을 복원한 그림과 배경설명, 강역도 등이 선보인다. 김 화백은 자신이 역사회화에 대해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근거를 중심으로 완성된 그림 다큐멘터리”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 기회에 김산호 화백의 민족사학 연구방법론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민족사학, 어떻게 연구해야 할 것인가


민족사서들은 위서인가

한민족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민족사학에서는 기존 사학계에서 흔히 인용되는 모든 사서를 당연히 자료로 채택하여 연구하고, 이외에 특별히 민족사서라고 불리는 귀중한 사서 몇 종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 민족사서로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부도지(符都誌), 화랑세기(花郞世記)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사서들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사대모화사상이 팽배하면서, 대국(명, 청)에 불충한 내용이라 하여 대대적으로 수거되어 불태워졌으며, 또 일제시대에는 민족의식의 고취를 막기 위해 16만 여권이 불타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아 있는 이 사서들은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강단사학계로부터 끊임없이 위서(僞書) 시비를 받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증거들이 보완되고 연구되어 이제는 그 논란이 비교적 많이 가라앉은 상태이다. 특히 규원사화와 부도지, 화랑세기 등은 위서 논란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고, 환단고기와 단기고사는 아직 논란이 있으나, 위서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석하기 나름이거나 정황적인 이야기여서 논쟁의 필요성이 없거나, 구체적인 문제들 대부분이 증명되어 지난 10여년 전부터 더 이상의 위서로서의 새로운 문제 제기는 없고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들만 보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사학계의 입장

이들 사서들에 대한 민족사학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역자(譯者) 또는 저자의 가필이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도서 전체가 소설처럼 창작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만약 가필이나 주관적 해석이 있다고 해서 도서 전체를 위작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본다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사마천의 사기 등 모든 사서가 위서라는 이야기가 될 뿐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사마천의 사기에도 수도 없이 등장하고 저자의 주장을 사서 편찬에 반영한 사례도 셀 수 없이 많다.

학자라면, 사서의 내용을 놓고 하나하나 진위여부를 연구하고 밝혀내는 것이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사서들은 그간 자료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사학계에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이들 사서의 내용을 받아들였을 때만 기존의 다른 사서들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 중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들에 대해 그 정황을 알게 되는 사례가 많이 있으므로, 반드시 연구되어야 하는 사서들이다. 이외에 정사(正史)로 이야기되는 사서들을 보아도, 민족사서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의 진위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이들 민족사서들에 대해 위서로 치부해버리는 작태를 버리고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 내용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아내 잃어버린 민족의 고대사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민족의 시각으로 보는 역사

역사를 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현재 점유하고 있는 중국 영토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다. 이것은 현 중국의 정권이 한족(漢族) 중심의 정권으로서 역사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기간을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채택할 수밖에 없는 시각이다. 만일 현 정권의 시각(漢族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그들은 최근에만 해도 무려 270여 년간 만주족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독립한 신생독립국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 전체를 보면 그들이 자랑하는 5천년 역사에서 피지배 기간이 3천년을 넘기는 상황이니 이해할 만도 할 것이다.

반대로 중국 이외에 많은 열강들은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있다. 2천여 년간 나라가 없어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여러 민족이 섞여 있는 유럽의 나라들도 일단 민족중심의 역사관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기술한 후 로마역사와 중세를 거치면서 변화되어 가는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실 이도저도 아닌 역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이라는 커다란 사학(史學)의 시련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의 축소와 중국 중심의 역사관이 당연시되고, 더구나 일제가 우리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도입한 과도한 실증사관(實證史觀)을 신봉한 나머지 우리 역사를 치욕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과도한 실증주의 사관의 문제점

그리스와 트로이가 전쟁을 벌이고, 로마가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유럽을 정복해 나가던 때에 알에서 깨어나는 고구려·신라의 시조들, 1천 회에 가까운 침략에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3천리 금수강산,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으로부터의 시작, 백제 왕자들의 일본 볼모, 조공외교, 중국 황제의 임명장…등등 자랑스러울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민족주의 역사관은 우리의 역사를 한민족의 시각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즉,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는 시각이 아닌 한민족의 시각에서 한민족의 뿌리와 한민족이 해온 일들을 기술하자는 것이다.

또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증하기 위한 연구를 무조건 매도하는 풍토를 버리라고 주문한다. 과도한 실증주의 사관은 어떻게든 발굴된 유적유물이나 중국의 사서에서 기록한 내용만을 인정하고 이외에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운 발굴 성과가 등장해도 일단 부정하고 보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민족사학에서는 어떠한 기록이든지 어떠한 증거물이던지 일단 수용하고 이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행하기를 주문하는 것이다.

민족사학에서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 우리나라의 사서들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여 그 연구를 토대로 ‘왜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까?’를 시작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대표적 왜곡서라고 기존 사학계에서 지칭하는 일본서기나 만엽집 같은 도서들도 포함된다.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본다면, 어떠한 도서에서도 집필자가 의도한 바를 깨닫고 그 서술 내용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부정한다면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어떠한 성과도 낼 수가 없다. 이미 부정했는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일단 가능성을 두어야 연구해 볼 것이 아닌가? 연구를 해 보아야 부정을 하던 긍정을 하던 할 것이 아닌가?




사학계의 변화 양상

기존 사학계를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족사학계는 ‘실증적 증거’의 부족으로 ‘실증될 수 없는 역사관’이라는 기존 사학계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정황적 증거뿐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남한으로 국한된 연구 영역이었다. 민족사학계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주된 활동지를 한반도로 제한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과 중국이 있어 가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이는 기존사학계도 다르지 않은 조건이었으나 그들은 기껏해야 우리의 역사를 요동지역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았으므로 별 상관이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인 것으로 강단사학계가 그나마 강단이라도 점유하고 작지만 정부의 보조라도 받았던데 비하여, 민족사학계는 말 그대로 집 팔아서 연구를 해야 했기에 부족함이 더욱 더 컸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서도 발전된 경제를 바탕으로 유적 유물의 발굴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 민족사학계로 분류되거나 이전에는 아니었다가도 자유로워지고 활발해진 해외여행으로 해외에서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면서 기존 사학의 틀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실증사학은 민족사학계의 편이 되었다.

중국에서 발굴되고 있는 엄청난 양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은 여지없이 한민족의 문화와 활동영역을 밝혀주고 있다. 또 저 멀리 천산산맥, 알타이산맥, 과거 투르크 제국, 러시아 지역 등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곳 원주민들과 우리 한민족과의 밀접한 관계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에서조차 확연히 보여 이를 신기하다고 전하고 있는 정도이므로 그저 관계없다고 주장하기에는 실증적 증거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물론 민족사학계는 달라진 여건을 십분 활용하여 끊임없이 해외로 드나들며 실증의 증거들을 찾아내고 있으며, 이제는 강단사학계에도 현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사학과 민족종교는 별개

많은 사람들이 민족사학과 민족종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이다. 민족사학에서는 오히려 이런 오해를 크게 경계하며, 역사를 역사로만 봐 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학은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몇몇 민족종교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유사하거나 또는 어떤 종교단체가 이 같은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민족사학은 민족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다만, 민족종교가 그들의 특성상 민족사학에 관심이 많고, 그러다보니 일부 민족사학자가 특정 종교에 몸담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민족사학계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민족종교의 종교적 특성을 반영하는 경우는 없다. 만약 그러한 이가 있다면 그는 민족사학자라기 보다는 해당 종교의 교리 개발자일 것이다.

다시한번 바라건데, 비록 그 구분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민족사학과 민족종교의 혼동은 없었으면 한다.




박스

'민족적 자긍심과 기상'

<라이파이>에서 <대쥬신제국사>까지

김산호의 작품세계


김산호의 작품세계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원대한 기상과 웅지를 갖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이다.

1959년 미국의 슈퍼맨이 있듯이 한국에는 한국적 영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리기 시작한 라이파이는 강력한 파워를 지녔지만 외계인(슈퍼맨)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그의 작품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은 그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만화작가로 활동할 때에도, 새로운 장르인 회화극본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3기로 분류해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제1기 : 라이파이와 만나다(1957~1964년)

어릴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부산 피난시절 만화 그리기에 몰입하게 된 김산호는 서울에 올라와 서라벌 예대에 입학해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하였고 1957년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황혼에 빛난 별'이란 제목의 만화를 세상에 선보이며 만화작가로 데뷔하였다.

일본의 한반도 점령이라는 암흑기에 모든 민족이 숨죽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끝내 민족의 기상을 잃지 않고 독립을 위해 저항한 독립투사들의 생명력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빛난 것은 1959년부터 발표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시리즈이다.

라디오조차도 쉽게 갖기 힘들었던 폐허의 시기에 라이파이는 최고의 과학무기로 무장하고 악의 무리와 맞서는 한국의 영웅이었다. 가슴에 ‘ㄹ'자를 달고 태백산을 근거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라이파이의 영웅담을 통해 김산호는 지금은 비록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지만 반드시 웅비할 한민족의 기상을 한편의 만화에 담고자 노력하였다. 만화가 ‘저질'시비에 휘말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때, 사회의 질시를 당당히 맞서 22세기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국을 상징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풀어낸 라이파이 시리즈는 청소년들에게 내일을 꿈꾸게 하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제2기 : 보다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다(1965~1980년)

만화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고, 라이파이 시리즈내에 삽입되었던 붉은 별로 인공기 시비에 휘말려 정보부에서 고초를 겪은 1966년, 김산호는 더 넓은 세상에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미국만화의 90%이상을 제작하고 있던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활동하면서 <샤이언 키드(Cheyene Kid)>, <하우스 오브 양(House of Yang)> 등 30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뉴욕의 주간 연예신문인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와 '빌리지 타임즈(Village Times)'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아이언 호스(Iron Hores)' 출판사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김산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로 한국과 중국을 소재로 한 동양적인 만화를 그렸으며, 동양풍의 만화 속에서 한국적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미국의 독자들은 구한말 상해를 거쳐 미국에 망명 온 풍운아, 상투를 틀고 삿갓을 눌러쓴 한국인이 정의를 위해 악당들을 태권도로 응징하는 내용을 담은 <플로토>를 통해 동양 액션의 미학을 만났으며, 연속 기획물 <유령이야기>의 시리즈로 제작된 <약속>을 통해 임진왜란(1592년) 당시 조선의 풍습과 정서를,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유령의 한을 접하였다.

특히 <약속>은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여 말풍선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기획을 선보인 작품이기도 하였다.

제3기 : 웅비하라! 배달민족의 기상- 회화극본(1981년~ )

미국에서 인기 만화작가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사업가로서도 활동하던 김산호의 작가적 상상력은 1981년 중국방문 중 북경대학의 역사학도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약 6천년전 현 중국의 동부인 화북 산동반도를 포함해 만주 전역과 한반도에 걸친 거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배달민족. 한국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순식간에 김산호를 매료시켰고, 7년여간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1993년 동아출판사에서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를 출판하면서 27년만에 다시 국내팬들에게 돌아왔다.

<대쥬신제국사>는 만화양식에 정통회화기법을 도입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회화극본 양식이며, 스토리 상에서도 동아시아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독특한 기획이었다. 라이파이에서 대쥬신제국사까지 그 양식과 스토리의 차이는 있지만, 그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테마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자긍심과 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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