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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국통사① 치우천황

  제1장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천지창조②
논문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뿌리

필자는 그동안 학계에서 관습적으로 행해온 정치사 중심의 학술연구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민족 중심의 인류학적 연구에 집중하여 겨레의 원류를 찾고 역사적·문화사적 그리고 정치사상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발전과정까지 광범위하게 탐구하여 민족의 종합적인 학문체계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겨레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켜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위한 대동단결을 이루어 내고, 세계화의 원동력으로 삼는 길인 것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를 비롯한 우리의 옛 역사서들은 한결같이 우리 민족이 시베리아의 천해(天海, Baikal)로부터 이동해왔다고 쓰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옛 기록을 처음 대했을 때 좀 황당하게 생각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옛 기록들의 진실성 여부를 직접 알아보기로 하고 역사의 현장을 거듭 방문하며 세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비행기와 기차는 물론 자동차 그리고 말까지 동원해 가며 이루어지는 현장답사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수반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현지에서 찾아낸 수많은 역사의 단서(정보)들 때문에 온갖 역경을 이기고 고산등정에 성공한 등산가들만이 경험하는 그 신비로운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독자들도 나와 함께, 『한단고기[桓檀古記]』를 비롯한 우리의 고대사들이 터무니없이 꾸며낸 위서(僞書)들인지, 아니면 한민족의 뿌리를 알리려는 역사적 기술인지 검증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우선 우리의 주의를 끄는 몇 편의 논문들을 소개한다.

1. 러시아과학원의 자하로프 박사와 이홍규 박사, 주채혁 교수는 「바이칼지역 원주민의 미토콘드리아와 DNA변형」이라는 논문에서 ‘부리아트족과 소요트(Soyot)족이 한국인과 같은 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발표하였다. 서울대의 이홍규 교수도 북아세아인들의 체질을 연구해본 결과 한국인의 원류는 약 25000년 전쯤 혹독한 빙하기를 이겨내고 바이칼호수 일대에 퍼져 살았다고 추정되는 여러 유전학적인 증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2. 이루쿠츠크 국립대학의 역사학부 교수 스비닌 블라지미르는 바이칼 지방을 20~30만년 전 인류의 발원지 중 하나로 보면서 특히 바이칼 지역의 네 종족인 에히리트, 불라가트, 코리1), 홍고도리로 이루어진 부리아트족2)의 기원을 약 20만 년 전까지 올려보고 있다고 하였다.

3. Baikal - ‘시베리아’는 알타이어로 ‘잠자는 땅’이고 ‘바이칼’은 ‘풍부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부리아트어로는 ‘신(神)들의 골3)’이 된다. 우리의 고서(古書)들은 한결같이 우리 민족을 천손(天孫)이라 하는데 부모(父母)인 하늘(天)과 자손(孫)들은 단군(巫)을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부리아트의 무(巫, 샤머니즘)4) 의식은 전통적으로 행하여오는 한국의 그것과 거의 같다.
부리아트의 소단군(샤먼, 무당)들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모시고 세계를 9단계로 나누고 있다. 아래는 지옥세계로 일곱 단계로 나누어져 ‘ 7 ’은 나쁜 숫자이고, ‘ 9 ’는 최상의 길수이다. 우리 민족도 9를 최상의 숫자로 삼는데, 이외에도 여러가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같은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4. 부리아트족은 집안에 날개 달린 말을5) 그린 천을 중앙에 걸어놓고 수호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5. 바이칼 일대에서 발굴되는 옛 무덤들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써 신라의 그것과 같고, 출토유물을 보아도 곡옥이나 말들의 순장풍습 등이 서로 같다. 더구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청동기의 민무늬토기들마저도 거의 같아서 서로 간에 같은 문화권의 관습적 전통을 공유했음을 알 수 있다.

6. 우리 조상들이 과연 어떻게 바이칼(天海)을 시원지(始原地)로 하여 지금의 한반도로 이동해왔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1차 사료의 보충을 위해 차선의 방법으로 2차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종교적인 사고방식이나 문화적인 공통점 그리고 현지의 전설들6)까지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하여 한반도와 바이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전문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오래된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방법과 같아서 그동안 무시해버렸던 주변의 작은 단서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아 재구성해보면 뜻밖의 해답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금강산 팔선녀’ 이야기가 그곳에도 거의 같은 줄거리로 전승되고 있고, 또 ‘우리 배달한국의 국조(國祖) 한웅[桓雄]께서 삼천 백성을 이끌고 천계(天界)에서 하강하셔서 나라를 세우셨다’는 옛 기록과 똑같은 맥락의 전설도 부리아트의 일반적인 전설집 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한웅님은 3천의 무리를 인솔했다는데 반하여, 그들은 3백의 백성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났다고 하는 정도일 뿐이다. 먼 옛날의 사건들로서 숫자 3천이나 3백은 다같이 ‘많은 무리들’이라는 단순개념의 추상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임을 고려한다면 동시대의 동일한 사건이 전설의 형태로 전해오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1) 코리(Khori)
‘코리’는 ‘카오리’, ‘가우리’로서 우리 9민족 중 특히 부여족을 가르킨다.

주2) 부리아트족
한민족 개천의 주인공인 한웅천황이 3000명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태양의 서식지를 찾아 동진할 때 합류하지 않고 뒤에 남았던 종족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천해를 지키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원류족인 셈이다. 민족의 명칭인 ‘부리아트’의 ‘부리’는 ‘불‘로서 ‘부여’의 ‘불‘과 맥(의미)을 같이한다.

주3)
현지말로 바이(무당, 샤먼)+칼(골, 곌)이다. 골(忽, gol)은 계곡이나 호수를 말한다. 만주에 있는 경박호(鏡泊湖)의 옛 이름이 홀안골(忽汗汨)이고 비류백제(沸流百濟)의 고향인 홀승골(訖昇骨, Xalxingol)의 ‘골’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주4) 무(巫)
바이칼 부족은 ‘무당’을 ‘푸닥’이라 한다. 우리도 푸닥(무당)들의 굿판을 ‘푸닥거리’라 하여 같은 어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5) 날개 달린 말
신라의 천마총 그림의 출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날개 달린 말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자로서 이해된다.

주6) 바이칼의 전설
바이칼 전설 중에, 몽골부족은 ‘늑대의 후손’이고, 코리(Khori, 가우리)부족은 ‘백조의 후손’이며, 부리아트는 늑대의 후손들 중 ‘숲속에 사는 민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알랑고아의 기록

바이칼 지역의 수많은 전설들 중에는 ‘우리의 옛 조상들이 정말 그곳에서 왔구나’하는 심정적 확신을 갖게 하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우리 가우리족을 백조와 연결시킨 전설로써 『몽골비사』가 전하는 몽골족의 여시조(女始祖) ‘알랑고아’의 기록이 그것이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리족이고 어머니는 바락족의 ‘바르구진고아’로 모두 바이칼족이다. 이 기록은 아버지족인 코리[가우리, Khori, 槁離]족의 탄생비화인데 “현지에 있던 황소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와 결혼하여 11형제를 낳았는데 이들이 모두 코리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서(古書)에 보면,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12개의 부족집단으로 출발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들도 여러 부족들(11형제)이 그곳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전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백조는 고리(가오리)족의 조상

①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바이칼의 천손족 중에서, 같은 ‘늑대의 후손’이면서도 ‘숲속에 정착’하기를 원했던 부족은 현지에 그대로 남아 오늘날의 부리아트족이 되었다.
② 넓은 초원을 생활공간으로 선택했던 기마족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내-외몽골 지역에 자리를 잡고 몽골족이 되었다.
③ 그중에서도 천손족(天孫族)의 사상을 신앙적인 믿음으로까지 승화시켜 무장한 우리 고리[가우리]족은 ‘백조의 후손’들로서 무려 300 혹은 3000명의 무리가 한웅님을 따라 동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물론 사람의 조상이 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 단순한 민간전설로 취급하여 흘려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족의 뿌리를 찾아 고대사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입장에서 이와 같은 전설이 어쩌면 한반도의 민족과 바이칼의 민족을 잇는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고리(가오리)족과 바이칼족의 세계관

1. 바이칼족은 고리[가우리]족이 백조(白鳥)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조가 갖는 민속적(民俗的)·주술적(呪術的)인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한다.

바이칼에서 백조는 ‘하늘을 날고, 땅을 걸으며, 물을 가른다’ 하여 하늘과 땅과 물(天地水)의 삼계(三界)를 내왕하는 영물로 여겨진다. 천손족인 고리[가우리]족의 염원을 하늘에 전하고 천상의 신명을 받들어 모시는 신(神)의 사자(使者)로서, 속계(俗界)와 영계(靈界)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영매(靈媒)로서, 아름답고 우아한 백조가 선택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상들이 사후에 백조로 현신하여 후손들을 보호한다는 주술적인 의미까지 깃들인 전설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집단(고리족)은 그들이 이동하며 머무른 곳마다 풍습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지금의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솟대 위의 새들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바이칼 지역에 흔히 보이는 백조 대신 한반도에는 철따라 날아오는 기러기나 철새 오리들로 변해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정착지인 한반도와 먼 옛날 떠나온 고향땅(바이칼, 천해)을 철따라 오가며 옛 조상들과의 영적인 교감을 이어가려는 염원의 한 표현인 것이다.

이로써 태고(太古) 때부터의 전통적인 사고(思考)로서 천손족(天孫族) 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 고리[가우리]족들을 하늘과 교통이 가능한 백조, 봉황, 까마귀(삼족오), 기러기 등등의 날짐승과 연결 짓고 특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백조를 상징적인 조상으로 보는 전설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2. 바이칼의 천해(天海) 지역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해간 고리[가우리]족들은 어떤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북부여기(北夫餘紀: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지음))』엔 “B.C 239년(임술원년) 부여(夫餘)의 시조 해머슴[解慕漱]이 웅심산(熊心山)에 웅거하여 난빈(蘭濱)에 황궁(皇宮)을 짓고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500종자(從者)를 거느리고 정사(政事)를 보며 저녁이면 하늘로 올랐다.”라 기록되어 있다. 또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의 「평양부조」에도 “황제의 오룡거를 따르는 200여 신하들이 모두 고니를 타고 깃털 옷을 화려하게 입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추무(鄒牟) 고주몽이 동부여를 급히 탈출할 때 그의 어머니가 두 마리의 고니(雙鵠)를 통해 보리씨를 전했다고도 하였다. 하늘의 전령사인 백조들이 생명의 씨앗을 전해준 것이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백조를 탄 선비. 우리 고리(가우리)족은 ‘백조의 후손’들로서 무려 300 혹은 3000명의 무리가 한웅님을 따라 동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바이칼족의 세계관을 보면 우주를 천상(天上)으로 보고 그 아래에 수직으로 위치한 상계, 중계, 하계의 3개로 나누어 보고 있다. 상계(上界)는 천상인 우주와 지상 사이의 공간으로 이 영역은 새들의 공간이다. 중계(中界)는 지상으로 사람과 더불어 굽달린 동물들의 공간이고, 하계(下界)는 물 밑으로 물고기들의 영역이다. 따라서 하늘을 날고 땅위를 걸으며 물길을 가르는 백조나 오리들을 삼계(三界)를 통하는 영매로 보는 것이며 이들을 통해 천상(天上)의 조상(祖上)들과 영적(靈的) 교감(交感)을 이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일본열도에 나타난 백조

바이칼을 출발한 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만몽(滿蒙)의 경계인 비류호수변에 머물렀다(제2의 정착지). 그러다 다시 남하하여 백두산 일대에 영구 터전을 마련하였으며(제3의 정착지), 조금 더 진취적인 부족들의 일부는 그곳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따뜻한 한반도를 타고 내려와 정착하여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다(제4의 정착지). 마지막으로 그들 중 일부가 다시 현해탄을 건너 왜열도에까지 진출하였다(제5의 정착지).
대대적인 민족의 이동은 이렇게 큰 바다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출이 어려워지자 마침내 왜열도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가정이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의 5번째 정착지인 일본열도에도 반드시 백조의 흔적이 나타나야할 것이다. 필자는 민족의 이동시기, 즉 초기 일본 정착 시기의 일본측 기록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경행기(景行紀)」에 “일본무존(日本武尊)이 죽은 뒤 백조가 되어 왜국(倭國)을 향하여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무존은 『고사기(古事記)』에 왜건명(倭建命)으로 나오는데 다같이 ‘야마토다케루노미고토’로 발음하라는 주가 달려 있다. 우리말로는 ‘해불휘’인데 청년 장수로서 저항하는 선주족을 무찌르고 그곳에 초기 민족 국가를 세우는데 영웅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죽은 후 백조가 되어 날아갔다는 것은 그의 출신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필자의 저서 『왜사(倭史)』를 읽은 독자들은 벌써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의 성씨를 ‘위[倭]’로 쓰고 있다는 것은 그가 비류백제의 본향인 졸본부여의 위족[倭族] 계열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백조(白鳥)는 흰새를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기러기 오리과에 속하는 ‘ SWAN ’으로 ‘고니(鵠)’를 말한다. 해머슴 천황이 고니(백조)를 타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중애기(仲哀紀)」에 성무왕(成務王)도 죽은 후 백조가 되었으므로 중애왕이 능역의 연못에 백조를 기르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단순한 전설의 가치를 뛰어넘어 문화적 사고를 공유한 집단들의 공통된 사고에 근거한 확실한 사건기록으로 볼 수 있다.

비산동에서 출토된 청동검

이상의 전설에 관련된 물증을 찾아보자. 백조로 대표되는 날짐승들을 천계와의 영매체로 믿는 사람들이 정말 한반도에 정착하였다면 또 다른 흔적들이 남아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대구의 비산동에서 출토한 청동검이다. 손잡이에 두 마리의 백조가 장식되어 있다. 한반도에 백조가 흔치 않은 새임을 생각한다면 이 검이 위에 소개한 전설과 같은 문화권의 집단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음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고 진실된 옛 역사를 되찾겠다는 목적에 고의로 딴지를 걸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그 누구의 눈에라도 선명히 보이는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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