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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국통사① 치우천황

  제1장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천해(天海)시대③
홍수기(洪水期)

천손족인 한민족이 한님에 의하여 파미르고원의 천산(天山) 일대에서 일어났으며 어느 한 시기에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일대로 옮겨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의 대대적인 이동에 대하여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문헌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다만 필자는, 석제임 한님 때에 사람들이 말을 다루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어떤 기상의 변화로 인하여 생활환경이 파괴되자 기마에 의한 이동이 불가피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였는데, 이제 독자들과 함께 그 추측의 근거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B.C 400년, 『성경』 창세기의 저자는 그로부터 약 1600년 이전에 일어났으리라고 추측되는 노아의 방주사건을 극적으로 기록하여 놓았다. 그런데 이 사건 기록으로부터 또다시 1500년 전인 옛 바빌로니아 왕조 때의 점토판(粘土板) 기록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일어났던 또 다른 7일간의 엄청난 대홍수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황하 유역의 대홍수와 범람에 관한 참담한 기록이 있고, 양자강 중류의 요족(힀族)도 대홍수사건을 설화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홍수 관련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이들 설화가 단순한 설화가 아닌 실제 사건 기록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 연대를 확실하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이어서 파미르고원 일대에 넓게 자리잡았던 국의 영역도 엄청난 홍수의 피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기온 문제에 초점을 맞춰보면 문제가 좀더 확실히 보이는데, 후빙기 최적기후(最適氣候) 시대(약 B.C 5000~2500년)의 범세계적인 기온상승(평균 2~3℃)에 의해 고산지(高山地)의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생활터전인 평원이 집중호우와 하천의 범람 등으로 물에 잠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인 한님으로서는 백성들의 생존을 위하여 대대적인 민족이동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밀기(密記-表訓의 三聖密記)』에 이르기를, “ 한국[桓國]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强族)이 있어 걱정거리였다. 한웅[桓雄:커밝한 황자]은 그들을 모아 삼신(三神:하늘의 교훈)과 전계(佺戒:신선의 가르침)를 설교한 후 설득하여 서약을 받고, 선악을 구별하여 상과 벌을 주는 법을 선포하는 한편 그들을 토멸해야겠다.”라고 했다.

지위리 한님 시절의 국은 모종의 반란사건이 사방에서 발생하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의 고기(古記)들은 한결같이 별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점잖은 글로 은폐하고 있지만, 문장의 행간을 들여다보면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분석해보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동안은 사람들의 수효가 적었고, 또 한님이 펼치는 하늘의 섭리를 백성들이 잘 따랐을 뿐만 아니라, 사방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여 굳이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아도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은 늘어나고 문명의 이기들이 속속 등장하여 어느새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로 차별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심이 질투를 낳게 되니 결과적으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 파당을 짓기 시작했고 한번 생겨난 패거리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취하여 양보할 줄 몰랐다.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같은 동포임에도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지위리 한님의 여러 황자(皇子, 庶子)들 중 커밝한 한웅황자[居發桓桓雄皇子]가 있었다. 커밝한 황자 역시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내분(內紛)으로 지새는 국의 앞날을 심각하게 걱정하다가 마침내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서, 뜻이 맞는 사람들 3000명을 거느리고 해가 뜨는 밝은 동방으로 새로운 대지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출발에 앞서 어전(御前)에 나아간 커밝한 황자는 아버지 한님께 작별인사를 올리고 “그동안 국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거울삼아,동녘에 새로 나라를 세우되, 백성들을 크게 위하고유익하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기본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삼겠다.”고 맹세하였다.

백성들을 위하여 홍익인간을 실행하겠다는 황자의 결심을 기특하게 생각한 지위리 한님은 크게 기뻐하였다. 한님은 커밝한 황자에게 국의 보물인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면서 “이제 사람과 사물을 다 바로잡았으니 3000명의 백성들을 데리고 가서 하늘의 가르침을 열고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여 자손만대에 모범이 되는 큰 법을 세우라.”고 축원하였다.
이는 홍익인간의 통치이념이 단군보다 아득히 먼 옛날인 커밝한 한웅 시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弘) : 넓다, 크다, 깊고 두텁다, 공간적으로 ‘널리’의 뜻
익(益) : 더하다, 이롭다, 도움이 된다
홍익(弘益) : 우리의 이익
인간(人間) : 인류, 사람들
홍익인간 : 인류공영(人類共榮)

커밝한 황자가 그의 무리를 이끌고 동방으로 떠나자, 그동안 작당하여 말썽만 일삼던 반고(盤固)가 한님 앞에 나아가 그들의 무리도 남방으로 떠나겠다고 하니 한님이 그대로 허락하였다.
반고는 재물과 보물을 모두 꾸리고 10간 12지의 신장(神將)들을 비롯하여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았) 등과 함께 삼위산(三危山)의 라림동굴에 이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제견(諸?)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칸[盤固可汗]이라 했다.

반고는 중국인들이 그들의 고대역사를 가능한 한 올려잡기 위하여 천지개벽 때부터 등장시키는 전설상의 천자(天子)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반고가 제견이 되었다 하므로, 결국 견융(犬戎), 서융(西戎), 융적(戎狄)의 조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삼위산 주위에 퍼져 살면서 주(周)나라를 비롯하여 주변국들을 끈질기게 위협하며 악명을 떨쳤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이 바이칼호수 일대에 머물다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 온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그 발자취가 증명된다. 몽골족의 발자취를 추적하던 인류학자 하웰스(W. W. Howells)는 몽골족을 옛 몽골족(Early Mongoloid)과 새 몽골족(Late Mongoloid) 둘로 나누었는데, 그중 약 1만년 전후로 하여 옛 몽골족이 남쪽으로 이동했고, 그후 더 북쪽의 옛 시베리아족들이 내려와 정착하면서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조사 결과도 있는데, 최근 일본 오사카 의과대학의 마쓰모도(松本秀雄) 교수는 항체유전자(抗體遺傳子)를 이용하여 몽골족의 혈청 중에 Gmab3st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또 바이칼호수의 북쪽에 있는 부리아트(Buryat)족의 혈청검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부리아트족 중에서 52%, 한국인 41%, 일본인 45%에서 Gmab3st를 발견했다고 한 결과 등이 그것이다.

한국 고대사의 정의

본 저자는 ‘’은 ‘하늘’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라는 단어 속에는 ‘하나’라는 뜻과 더불어 ‘크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다른 몇몇 언어학자들은 좀더 구체적으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하늘을 뜻하는 ‘’은 ‘하라’ 또는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는 ‘해(太陽)’이고 ‘나’나 ‘라’는 ‘땅’이나 ‘터’라는 우리의 옛 말이므로 곧 ‘태양의 나라’, ‘태양의 터’, ‘하늘나라’, 혹은 ‘하느님의 나라’라는 우리의 옛 말이라는 것이다. ‘’을 ‘하늘’, ’하날’의 줄임말로 보든지 혹은 ‘하라(태양)’에서 변음되어 왔다고 보든지 결국 한민족은 ‘하늘민족’이라는 우리 민족의 고유명사이다. 그래서 옛 문헌들에 우리를 ‘천손족’이라고 기록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국명인 ‘대한민국’은 위대한 ‘천손족의 나라’ 즉 ‘Republic Of Great Hahn’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영문 표기인 Republic Of Korea(코리아민국)에는 천손족의 나라(Great Hahn)라는 민족의 정의가 없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원조상들이 천산으로부터 천해로 이동하여 한국을 세워 7세의 한님시대를 거친 후, 다시 커밝한 한웅의 집단들을 중심으로 광명의 신천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 북만주 일대에 넓게 자리잡고 신시 배달한국을 세우는 이동경로를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는 ‘가우리사(史)’로 불리는 중원의 역사와 위(倭列島)로 구분되는 동한사(東韓史) 그리고 서한사(西韓史)인 동이사(東夷史)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류법은 주로 정복민족을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다. 물론 한만지역(韓滿地域)에는 이미 문명시대의 훨씬 이전부터 정착해 살고 있던 토착민들이 있었다. 한반도에는 약 100만년 전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에 해당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들이 진출하여 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그리고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초기 농경시대(약 8000년전)로 진입하여 토착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우리 사(史)

‘가우리1)’는 ‘세상의 중심인 가운데 땅’의 뜻으로 한국사(韓國史)의 본류(main root, 本類)를 뜻한다. 지역적으로 구분해보면 대체로 만주 중서부 전역과 한반도를 포함하며 지배계층은 주로 부여족들이다. 가우리는 ‘高麗, 句麗, 九黎’ 등 다양하게 표현되나 이들 한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어의 ‘가우리’로 발음되는 단어들이다.

주1) 가우리
‘가우리’의 ‘가우’는 가운데를 뜻한다(예 : 가운데, 한가우 등),‘가우리’의 ‘리’는 장소를 뜻한다(예 : 자리).
결국 ‘가우리’는 ‘가운데 자리’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을 한족(漢族)의 고유 국명(國名)으로 알고 있지만, 한족이 중국을 나라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100년도 안된 일이다. 우리의 북방세력인 대청제국(大靑帝國)의 식민통치로부터 한족이 독립(辛亥革命)하면서 비로소 중국을 국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 민족은 이미 수천년 전 역사의 시작 때부터 벌써 천손족이라는 민족사상(民族思想)과 국가철학(國家哲學)으로 세상의 중심에 선 가우리(가우자리)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가우리’를 종족명과 관경(官境)의 명칭으로 써왔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우리(세상의 중심국가)이므로 한족(漢族)들의 나라는 그들이 무엇(중국)이라고 부르던 간에 가우리의 가장자리(변방국)일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의 또 다른 표기는 지나(支那)인데 이는 본체의 곁가지 나라라는 뜻으로(가우리의 곁가지 나라) 해석할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의 관경(官境)인 ‘가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측 기록자들에 의하여 ‘동쪽에 살면서 큰활(大弓=夷)을 쓰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동이(東夷)’라 불렸다. 가우리의 ‘리[黎, 麗]’자가 같은 발음의 ‘이(夷)’자로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두려움과 존경의 뜻을 담았던 ‘이’의 뜻이 오랜 세월 동안 식민통치의 억압과 착취에 반발하면서 악의적인 의미가 더해져 본 뜻과는 상관도 없는 오랑캐의 뜻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대부분 중국을 정복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강력한 무력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부르듯이 중국인들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서이(西夷)’라고 부르는데, 그들을 침략한 제국들을 모두 오랑캐라며 ‘夷’자를 쓰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오랑캐의 뜻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夷’자는 그외에도 ‘평온하다(가우리의 통치하에선 질서가 잡혔음)’,‘기뻐하다(주변의 무력집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음)’,‘범상하다, 크다, 무리, 동료’등의 긍정적인 뜻과 함께 ‘상처, 손상’등의 부정과 ‘멸함, 없애버림’과 같은 무시무시한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이 가우리의 ‘黎’자를 ‘夷’자로 바꿔 쓸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을 탄 가우리의 무력집단이 가을철 수확이 끝난 중국인의 마을에 나타나 한해의 피땀 흘린 수확을 무자비하게 공출해가고 각종 세금을 거두어 갔으니 우리 선조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원망이 어떠했을까? 이것이 존경과 두려움의 ‘夷’자 속에 원망이 가득한 오랑캐, 도독놈 등 부정적인 뜻이 더하여진 배경이다.

적어도 수만년 전 한반도에 선주했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선사시대 문화의 흔적들.

동한사(東韓史)

동한사는 가우리의 동쪽에 자리잡은 민족들의 역사를 일컫는 것으로, 주로 여진족을 지배계층으로 하고 지역적으로는 동만주[黑龍江省, 沿海州, 北海島]를 포함한 왜열도(현재의 일본열도)의 민족사를 말한다. 이들의 역사는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귀중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일본의 역사는 크게 북부의 여진족 계열과 남부의 부여족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한민족의 왜열도 진출 시기와 관련이 있다. 동한의 역사는 추후에 따로 정리하여 출판할 계획이다.

서한사(西韓史)

서한사는 현 중국의 내몽고로부터 남쪽으로 하북성(河北省), 산동성(山東省), 강소성(江蘇省)에 걸친 옛 청구(靑丘) 땅의 역사를 말한다. 이 지역은 배달한국[倍達桓國] 시절부터 엄연한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서쪽에 자리잡은 화하족이 수를 앞세워 침략해오면서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끊이지 않다가 격동의 20세기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한족들에게 모조리 빼앗긴 비운의 지역이다.

서한사는 시기적으로는 배달한국의 초기부터 중국사에서 말하는 삼황오제 시대 까지를 말하는데, 이 기간은 중국인들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위 동이족의 통치 시기이다. 배달국은 서쪽에 위치한 화족의 방향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동쪽의 큰활(大弓)을 쓰는 민족’이라는 두려움과 존경의 뜻으로 ‘동이(東夷)’ 혹은 우리말 가우리의 한자식 표기인 ‘구려(九黎)’라고 불렀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문헌 속에서 동이 혹은 구려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신기하게도 서한사를 쉽게 복원할 수 있게 된다.

서한사(西韓史)

  • 동이사(東夷史)
  • 불쥬신사(卞朝鮮史)
  • 동호사(東胡史)
  • 거란, 요사(契丹, 遼史)
  • 청, 식민통치사(淸, 植民統治史)

가우리 사(九黎, 高麗, 句麗史)

  • 신시 배달한국사(神市 倍達桓國史)
  •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 부여열국사(扶餘列國史)
  • 신라, 백제, 가야사(新邏, 百濟, 加耶史)
  • 밝해사(勃海史)
  • 김사, 대청제국사(金史, 大淸帝國史)
  • 이조선사(李朝鮮史)
  • 대한민국사(大韓民國史)

동한사(東韓史)

  • 삼도열국사(三島列國史)
  • 일향출운국사(日向出雲國史)
  • 왜, 야마토사(倭, 大和史)
  • 일본제국사(日本帝國史)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