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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국통사① 치우천황

  제2장 한웅시대-신시(神市) 배달한국(倍達桓國) ①
신시(神市) 배달한국(倍達桓國)

배달한국의 배달은 ‘밝달’과 같은 말로서
이는 ‘밝은 땅’, 즉 ‘태양의 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신시 배달한국은 ‘신치가 다스리는 밝은 나라’라는 뜻이다.

신시(神市) 배달한국의 임검 ‘한웅’

하늘의 한님이 스스로 인간들의 임검이 되어 우리 배달(밝달)민족을 이끌어주셨던 국[桓國] 시절의 창시기(創始紀)를 접고, 이제 인간들의 역사인 태시기(太始紀)를 살펴보자. 태시기 역사는 18대의 한웅님들에 의하여 1565년(B.C 3897~2333년) 동안 전개되는데, 국 서자부(庶子部) 장관의 벼슬에 있던 커밝한 한웅이 국에서 이탈하여 그를 따르는 큰 무리의 백성들 3000여명을 이끌고 동진하여 신시(神市) 배달한국(倍達桓國)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이 그림은 신시 배달한국의 시조 커밝한[居發桓] 한웅[桓雄]님의 존영이다. 배경에 보이는 세 명의 신하들은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와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 그리고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 등이다.
2003, oil on canvas (132X163Cm)

지금까지 한웅을 한님[桓仁]의 서자(庶子) 즉 첩의 아들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서자의 뜻이 지금과 달랐다. 배달한국 때에는 ‘서자부’라는 부처가 있었으며, 한웅[桓雄]은 국의 서자부의 장관이었다. 서자부(庶子部)라는 관직명(官職名)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보인다.
한웅은 신시 배달한국 임검(壬儉)님의 호칭이다. 우선, 한문자의 한[桓]을 풀어보면 우리말 하늘의 준말인 ‘’의 뜻 이외에도‘넓다, 크다, 높다, 왕, 최고 지도자’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말의 ‘ ’을 표현하려는 한문자도 ‘桓, 韓, 汗’등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결국, 한웅1)님은 임검님으로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일뿐만 아니라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사장(祭司長)이었다.
그 다음 ‘웅(雄)’자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하늘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신사기(神事記)』를 보면, “교화주(敎化主)는 한웅[桓雄]이다. 교화주는 만(萬)의 이치를 열어 보이신 하느님으로 한웅은 곧 스승이며 한님의 별칭(別稱)이다.”라고 분명히 정의하여 놓았다. 즉 한웅의 ‘웅’은 ‘스승’을 뜻하는 것이다.

신라의 남해 거서간(南解居西干)을 차차웅(次次雄)이라 하는데, 이는 곧 임검이나 존장(尊長)을 뜻하며, 지방말로는 무당(巫)이다. 그런데 무당의 역할이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화(禍)를 면하고 복을 받게 가르쳐주는 것이므로, 무당을 스승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지금도 회령지방에선 굿하는 무당을 스승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한웅[桓雄]은 하늘을 대신하여 한민족을 다스리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하늘의 섭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주1) 한웅[桓雄]
한웅의‘한’은 ‘환’의 옛 글자(새 우리말 큰 사전〈삼성출판사〉)

신시개천(神市開天)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에, “배달한웅[倍達桓雄]은 천하를 평정하신 분으로 그 도읍지를 신시(神市)라 한다(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其所都曰神市).”라는 기록이 있고, 『삼성기전-하(三聖記全-下)』편과 『단군고기(檀君古記)』 그리고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 제3(神市本紀第三)」 등에는 “커밝한 한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에 도착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니 신치[神市]라 하고 나라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와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 그리고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를 데리고 곡식, 생명, 형벌, 질병, 선악 등 오사(五事)를 주관하고, 무릇 인간사 360여 가지의 일들을 잘 다스려 세상을 교화하니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전 상』편에는, “한웅씨[桓雄氏]는 한님(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白山黑水之間)에 내려왔다.”라고 하여 커밝한 한웅님이 신시를 중심으로 새 나라를 세우신 곳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백산(白山)은 곧 백두산(白頭山)이고 흑수(黑水)란 북만주의 흑룡강(黑龍江)을 말한다. 안함로의 기록을 근거로, 한웅님의 도착지점을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에서 찾아보면 결국 최초의 신시개천(神市開天)은 하얼빈(哈爾濱) 완달산(完達山) 근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북만주 일대의 광활한 대지를 무인지경으로 정복하고 드넓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시 배달한국은 과연 무슨 뜻일까? 한국의 ‘배달’은 밝달[朴達, 倍達]과 같은 말로서 이는 ‘밝은 땅’ 즉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신시의 ‘신’은 ‘크다’라는 뜻이며, ‘시(市)’는 본시 ‘치’로 읽어야 하는 것으로 ‘사람’, ‘무리의 수장’ 등을 뜻한다. 따라서 ‘신시배달국’은 ‘신치 배달한국’으로서 곧 ‘신치가 다스리는 밝은 나라[太陽帝國]’라는 뜻이다. 이 말은 후대에 ‘한웅’, ‘단군’ 등 존칭이 등장하면서 관리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배달한국 개천(倍達桓國 開天)

개천(開天) 원년(元年) B. C 3898년, 커밝한 한웅은 만백성의 추대로 천황에 즉위하면서 배달한국의 개천(開天)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천황의 통치이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
그동안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이처럼 지배자들의 통치철학을 건국이념으로 뚜렷하게 밝히고 개국한 경우는 없다. 이러한 ‘홍익인간’의 정신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다같이 요구하는 최고수준에 도달한 이념으로 천손족다운 긍지가 담긴 정신이다.
천황은 곧 전국 여러 곳에 수두단[蘇塗壇]을 세우고 홍익인간을 위한 세 가지의 윤리(倫理敎育)를 가르쳤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① 사랑의 윤리(愛倫)-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② 예절의 윤리(禮倫)-임검과 백성간의 예법, ③ 도리의 윤리(道倫)-스승과 제자간에 서로 지켜야할 도리 등이 그것이다.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백성들을 교화(敎化)시키는 가장 중요한 신서(神書)였다.
천황은 풍백, 우사, 운사의 세 장관에게 명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유익하도록 기본법을 제정하니 그로부터 서로간의 분쟁이 사라지고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되었다.
이 기본법 중에는 결혼예물을 짐승가죽으로 하는 혼례법이 있고, 곡식이나 물건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시장법도 있었다. 공물과 세금도 법으로 정했으며, 부자와 군신 그리고 남녀의 행동거지도 명확하게 구분지어 서로의 자리를 지키도록 하였다. 또한 음식, 의복, 주거의 제도도 만들어졌고 미혼자들은 머리를 땋게 하는 풍습도 생겼다.

나라의 각종 행사엔 백성들이 모여 열을 지어 돌면서 공수(貢壽 : 供援) 혹은 두열(頭列)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행복을 기원하였다. 나라에서는 농사일을 원활히 하도록 하기 위하여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月曆]을 만들었으며 원활한 교역을 위해 산목(算木)이라는 숫자(數字)와 계산법(計算法)도 보급하였다.
커밝한 한웅님은 농사를 주관하는 고시례(高矢禮 혹은 高矢)로 하여금 새로운 작농법을 연구·개발하게 하니 이때부터 원시적인 농사법을 버리고 새로운 농사기술을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하여 지금까지도 풍작의 일부를 고시례에게 바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녹도문(鹿圖文)

한웅천황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단연 녹도문 창제를 꼽을 수 있다. 녹도문은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공식문자다. 공식문자가 필요했던 것은 국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을 천문(天文)이 아닌 인간들의 문자로 기록하여 보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천황의 특명을 받은 신치 혁덕[神誌赫德]2)은 모래밭 위에 난잡하게 찍혀 있는 사슴들의 발자국을 본떠서 소위 사슴 그림글자인 녹도문(鹿圖文)을 완성하였다.

다만 우리들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상과 같이 확실한 고기(古記)의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녹도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시본기 제3(神市本紀第三)』에, 만주 길림성 경박호의 선춘령(先春嶺)과 또 합강성(合江省)의 우수리(Usuri)강의 바위에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닌 녹도문의 자취로 의심되는 흔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필자는 이 기록을 믿고 현지를 방문하여 한달 이상 머물면서 찾아보았으나 끝내 녹도문의 흔적을 찾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주2)신치 혁덕[神誌赫德]
신치 혁덕의 ‘신치(神誌)’는 배달한국의 고대 문자를 주관하던 벼슬의 이름이고, 혁덕(赫德)은 신치의 벼슬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다.

배달한국 제2세 천황 커부리 한웅
[倍達桓國 第2世 天皇 居佛理 桓雄]

개천(開天) 96년(정유년) : B. C 3804년, 커부리(또는 커불리) 한웅은 시조 커밝한 한웅의 뒤를 이어 배달한국의 제2세 천황에 올랐다. 선황 때부터 신시(神市)를 중심으로 펼쳐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기본정책과 한웅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백성들은 모처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당시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서로 넉넉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제국의 도성(都城)으로 변신한 신시(神市)에 통치를 위한 각종 기관이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시적인 질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성내의 질서와 치안을 유지할 자경단을 창설한 것이다. 자경단의 조직적인 활동 덕분에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유린하던 맹수들을 모조리 쫓아내니 비로소 백성들은 마음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선황(先皇) 때에 왕금영(王錦營) 우사(雨師)가 개발한 목축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이제는 제법 소, 말, 돼지, 곰, 호랑이 등 많은 짐승들을 잡아 가두면서 본격적인 목장운영의 기술을 발전시키니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자연스럽게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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