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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제3장 치우천황의 등극(登極)-대회전(大會戰)②
공상성 회전(空桑城 會戰)

필자는 지금도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치우천황이 치른 5천여년전 전쟁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각종 사서들을 정밀하게 살펴보았고, 기록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종군하며 취재하는 기분으로 직접 현지를 탐방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기록의 정확성 여부를 검증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의 전쟁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의 현대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시가 아직은 인류 문명이 발달하기 전이므로 전투방식도 약간은 원시적이었을 것이라는 강한 선입감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기록에 등장하는 각종 병기와 준비과정 그리고 치밀한 병참작전, 적병을 이용하여 정보를 캐내고 오히려 역정보를 흘리는 등의 현대전에서나 있을 법한 정보전 등, 전쟁의 전개과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전을 닮아 있어서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특히 천황의 화상(畵像)을 그려 붙여 적병들로 하여금 미리 공포에 떨게 하며 사기를 꺾는 고도의 심리전이 동원되었고, 염초와 유황 등을 이용한 연막전술이 펼쳐지며 이에 대항하여 지남거가 등장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된다.
결국, 인류의 전쟁 수행방법이 병장기(兵仗器)에 있어서는 엄청난 발전이 있어 왔으나 근본적인 작전개념(作戰槪念)에 있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치우천황이 개발·제작한 무기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공격용 무기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 비해, 하남성의 ‘이리두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중국측의 무기는 주로 월(鉞)과 과(戈)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바람같이 달려드는 동이족의 기마전에 대응하는 그들의 전략적인 필수 무기들임을 알 수 있다.
‘월(鉞)’은 도끼를 말하는 것으로 적의 말을 먼저 살상하여 기수를 떨어트리려는 것이고, ‘과(戈)’는 긴 창에 갈고리를 달아 적의 기수를 말과 함께 직접 걸어 쓰러트림을 목적으로 한 병기들이다. 이처럼 양쪽군의 무기체제만 보아도 기마 중심의 천황군과 보병 중심인 중국군의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완벽한 병기와 병참, 정보와 작전이 준비되고 연합부대의 재편까지 마친 치우천황의 연합군은 공상성(空桑城)이 멀리 보이는 지점으로 이동하여 성을 포위하고 적의 예상 퇴로를 미리 차단하였다.
치우천황은 공격에 앞서 공상 성주 유망(楡罔)에게 한통의 서신을 보낸다. 성주 유망은 헌원에게 충성을 맹세한 제후이다. 이 서신은 유망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군인 헌원(軒轅)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혼란에 빠진 유망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려는 고도로 계산된 심리전이었다.

공상성 작전도(空桑城作戰圖) Oil on canvas, (162x130Cm)

치우천황의 편지 내용이 『삼한관경본기(三韓菅境本紀)』에 전한다.

“너 헌구는 짐의 경고를 들어라. 이 세상에 태양의 아들은 오직 짐 한 사람 뿐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옳은 마음으로 질서 있게 공동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 짐의 책임인 것이다. 네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윤구서(三倫九誓)를 게을리하니 삼신(三神)이 내게 명하여 너를 토벌하라 하셨도다. 만약 삼신의 뜻에 저항한다면 하늘의 응징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천황의 원정이 하늘의 뜻임을 밝히고 즉각 항복하라는 협박이었다. 이에 유망은 아직 소식이 없는 주군 헌원과 치우천황의 높은 권위를 생각하며 갈등에 싸여 큰 두려움에 떨게 된다. 과연 천황의 의도대로 사기가 꺾인 것이다.
이로써 천황은 이번 전쟁의 당위성을 천하에 공표한 셈이 되었다. 이제는 공상성을 함락시켜 헌원에게 최후의 경고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드디어 천황은 지휘검을 높이 뽑아들고 총진격의 명령을 내렸다.

북애(北崖)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는 “드디어 군장비가 충분히 정비되자 대병을 지휘하여 구혼(九渾)에 올라 앞을 가로막는 적병들을 파죽지세로 무찌르며 연전연승하니 그 형세가 마치 폭풍우 같이 맹렬하여 천하가 놀라며 벌벌 떨었다.”라고 개전(開戰)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공상작전(空桑作戰)에는 이미 많은 군사적 정보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이 지역의 지리와 역학적(力學的)인 관계 등에 정통한 청구군(靑丘軍)이 선봉에 섰다. 청구군에게 바로 이웃하고 있는 공상성의 존재는 항상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선봉 청구군의 뒤를 치우천황의 본진이 가까이 따랐고 9군(九軍) 81대(隊)의 부대는 양쪽 날개를 활짝 편 모양으로 진을 넓게 펼쳐 세우니 곧 공상성이 포위된 모양이 되어 버렸다. 천황은 그동안 은밀히 준비했던 공성용 장비(攻城用裝備)들을 최전방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성루에 높이 올라서서 천황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공상 성주 유망(楡罔)과 그의 참모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새로운 공성장비들이 배치되는 것을 발견하고 아연 긴장한다. 공성장비 가운데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로 ‘비석박격지기(飛石迫擊之機)’가 있는데 이는 큰 돌을 날려 적의 성문이나 성벽을 파괴하는 투석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외에도 적의 성문을 효과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충차 등과 같은 여러 장비들이 투입되었다.

돌연 한 마리의 솔개가 천황의 손을 떠나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진군을 알리는 나팔과 북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진격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천황이 지휘하는 제국의 연합군이 기세를 올리며 노도(怒濤)와 같이 진격하자 겁에 질린 유망은 할 수 없이 소호(少顥) 장군에게 출전 명령을 내린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어서 장군 소호는 이미 공포에 질린 성병들을 추스려 제국군의 앞에 나섰다. 주군의 명령에 떠밀려 싸울 뜻도 없이 성문을 나선 소호의 성병들은 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뿔뿔이 도망쳐 버렸으나, 죽기를 각오한 소호는 아직도 그를 따르는 수십 기를 거느리고 천황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결국, 치우천황의 용력에 참패한 소호는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구했다.

과(戈)-창, 월(鉞)-도끼

※ 치우천황군은 청구(지금의 산동지방)에 상륙하여 반역에 가담했던 아홉 제후(諸侯)를 굴복시켜 그 땅을 모두 회수하였고, 곧이어 옹고산(雍孤山)에서 무기를 보강 정비한 후 다시 진격하여 12 제후(諸侯)를 불과 1년만에 제압하였다. 이렇게 청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진격하며 주변을 평정하고, 공상으로 진격해 마침내 일전을 치루게 되었다.

취응대(鷲鷹隊)
북만주 흑룡강성 북변의 설화속에 등장하는 치우의 전설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설화속의 치우는 호랑이나 늑대, 곰 등을 잘 부렸기 때문에 황제는 계속 쫓기면서 하늘에 기도하기를 동물들이 치우를 돕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빌었다는 것이다. 솔개를 사냥이나 약속된 신호 전달에 이용하는 것은 사냥꾼들에겐 전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공상성 함락(空桑城 陷落)

장군 소호(少顥)가 대오를 이탈하여 먼저 탈출해버리자 대장을 잃고 공포에 질린 잔병들도 모조리 창칼을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싸움은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이제 유망은 소수의 성병만 거느린 채 성안에 홀로 고립되고 말았다. 치우천황은 즉시 공성장비를 투입하여 직접 성문을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성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유망은 이제 그의 힘으로는 더 이상 공상성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주군인 헌원도 천황군의 진출을 알고 있겠지만 성을 구하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남은 길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성밖으로 나가 남자답게 싸우다 죽든지, 아니면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치욕적인 죽음을 맞든지, 그것도 어렵다면 차라리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해 보든지 하는 선택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어차피 천황이 노여움을 풀지 않고 징벌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진출해 온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마침내 유망은 성문을 열고 천황의 자비에 그의 목숨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먼저 항복과 복종의 뜻으로 하얀 의복으로 갈아입은 후, 옥새(玉璽)를 공손히 두 손으로 받쳐들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섰다.
이때의 상황이 여러 역사서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비롯하여 여러 사서들이 전하는 전황을 살펴보자.

『규원사화(揆園史話)』 : “이제 치우천황군은 양수(洋水)를 건너 공상(空桑)으로 진격하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陣留)로서 유망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공상에서는 소호(少顥)가 군사를 이끌고 대항하여 왔는데 치우천황이 안개를 크게 일으키고 옹호창(雍狐槍)을 휘둘러 소호를 공격하니 소호는 허겁지겁 탁록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대변경(大辯經)』 : “공상 성주 유망(楡罔)이 소호를 시켜 거전(拒戰)하게 하였는데 천황이 예(芮 : 뾰족한 날)의 과(戈 : 창)와 옹호(雍狐 : 끝이 벌어진 창)의 극(戟 : 날이 두 개인 창)을 휘둘러 소호를 크게 무너트리고 안개를 일으키어 적의 장병들로 하여금 혼미자란(昏迷自亂 : 판단력을 잃고 방황함)하게 하니 소호가 크게 패하여 급히 달아났다.”

『술이기(述異記)』 : “치우씨의 귀와 옆수염이 검극(劍戟)과 같고 머리에는 뿔이 있어서 헌원의 병사와 접전할 때 뿔로 치받아 병사들이 감히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단 한번의 접전에서 크게 패한 소호는 혼비백산하여 본진이 있는 웅이산으로 도망친 후 헌원에게 전황을 보고하였는데, ‘치우군은 신병(神兵)들이라 가히 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자 격노한 헌원이 단칼에 소호를 죽이려 들었으나 주위에 있던 풍후(風后)의 만류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서들이 이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좀더 극적으로 과장하고 있는 것들만 제외하면 그 내용들이 서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유망의 항복을 끝으로 공상성1)을 빼앗는데 성공한 천황은 그곳에 원정군의 총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천황은 신속하게 공상의 혼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우선 항복해오는 적병들을 거두어 별동대를 조직하여 휘하에 거두고 정탐과 수색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한편, 도망간 소호의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하여 강력한 추격군을 편성하였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구하여 달아났던 소호(少顥)는 추격군을 피해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었으나 결국 기민한 천황군의 수색대에 걸려 다시 공상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이때 천황은 성루에 올라 유망(楡罔)의 죄를 묻고 있었는데, 도망갔던 소호가 성안으로 끌려오는 것을 발견한 유망이 갑자기 분기를 참지 못하며 소호의 비겁했던 행동을 심하게 꾸짖었다. 이를 본 천황은 곧 한 장의 친서를 써서 유망에게 주면서 그의 주군인 헌원에게 돌아가 천황의 칙서를 전하라고 명했다.

칙서(勅書)의 내용은 “헌원이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항복해 온다면 지난날의 죄과를 용서해주겠다.”는 투항 권고였다. 이 명을 받든 유망이 성을 벗어나 헌원의 진영(陣營)을 찾아 떠나가자 천황은 잡혀온 소호를 불러들였다. 무능한 유망에게 자비를 베풀어 살려 보내는 모습을 본 패장(敗將) 소호는 급격한 심중의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소호는 천황 앞에 꿇어앉아 천황의 절대명령(絶對命令)에 불복했던 자신의 잘못을 빌고 천황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할 것을 스스로 맹서했다. 천황은 이로써 헌원군의 모든 정보를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항장(降將)을 얻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진의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아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천황은 용력(勇力)뿐만 아니라 정보전과 심리전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항장(降將 : 항복한 장수) 소호를 보내어 탁록을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패전하고 도망치던 소호를 추격하여 잡았음은 물론 오히려 그의 항복을 받고 탁록에 관한 모든 정보를 캐내고 분석한 후, 현지의 사정에 밝은 그를 선봉장으로 내세워 탁록 공격에 이용하기도 한 것이다.
한편, 제국군(帝國軍)의 상륙 소식을 접한 헌원은 닥쳐올 사태에 대비할 목적으로 세력내의 지방군들을 소집하고 멀리 우호적인 집단들의 합류를 부탁하는 등 외교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사실 헌원은 적제 신농군을 격파하면서 이미 치우천황으로부터 모종의 문책이 뒤따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벼운 문책의 선을 넘어 제국의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치우천황이 천도를 떠나 친정(親征)으로 자신을 응징하리라고는 미처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급히 병력을 모으던 헌원은 치우천황의 친정군(親征軍)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어 빠른 속도로 공상성을 공격한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 시간적으로 공상성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헌원은 동조하는 지방군들에게 멀리 우회하여 탁록(?鹿)벌로 집결하도록 명령하고 그 자신도 탁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탁록으로 가던중 치우천황의 칙서를 들고 뒤쫓아온 공상 성주 유망과 만나게 된다. 유망의 자세한 보고와 천황의 칙서를 읽어본 헌원은 천황과는 이미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천황의 의지가 너무나도 단호했던 것이다.

이제 사태를 되돌리기엔 모든 상황이 너무 얽혀버려 헌원에게는 전쟁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헌원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치뤄야 할 전쟁이라면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또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그동안 배달한국의 식민지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토인(土人, 原住民)들을 결집해 그들의 독립전쟁으로 전쟁의 성격을 바꾸고 이를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삼는다면 승전의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달한국에 비하여 토인들이 수효면에서는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헌원은 자신의 병력과 유망의 패잔병들 그리고 각지에서 보내온 지원병들을 모두 합쳐 연합군을 편성하고 그 스스로 총사령관에 올라 배달한국의 지방장관이 아닌 토족의 수장으로서 배달한국에 맞서게 되었다.

1) 공상성(空桑城)
공상성은 오늘날의 산동성 태산(泰山)의 남쪽에 있다. 『산해경』에 “공상지산(空桑之山)은 초목이 자라지 않고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눈이 있다.”라고 하여 오늘날의 날씨와 달랐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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