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제4장 탁록대첩-탁록대전①

오랜 배달한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탁록대전은
천재적인 전략가 치우천황의 용병술이 빛나는 대결전이었다.

초전(初戰)의 대승리

천황군과 일전불사를 각오한 헌원은 역목(力牧)과 신황(神皇)을 각각 좌대감(左大監), 우대감(右大監)으로 하고, 운사(雲師)를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은 탁록1)에서 중군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사부(雲師部)가 천황의 총동원령에 불복하여 군을 이끌고 헌원편에 합류하여 천황의 원정군에 맞섰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운사부는 처음부터 천해(天海)의 한국[桓國]을 떠나 커밝한 한웅의 동정(東征)에 참여한 후 신시 배달한국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일등공신 가문이었다.
개천(開天) 이래 우사부(雨師部), 풍백부(風伯部)와 함께 조정을 이끌면서 신시 배달한국의 중요한 한축을 이루어왔던 운사부가 소전가(小典家)가 이룩한 양강지간(兩江之間, 黃河↔長江)의 신정복지(新征服地)를 자신들의 자치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세력가문들 간의 싸움에 참전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천황의 호령에 숨도 한번 크게 쉴 수 없었던 헌원이었으나, 종주국의 운사부가 천황을 배반하고 그들의 기병들을 이끌고 헌원측에 합류하고, 토인 지역내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연합군을 편성하고 나니, 아무리 치우천황이 신장(神將)이라 하여도 한번쯤 자웅(雌雄)을 겨뤄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넘치게 되었다.
헌원은 대군을 인솔하여 탁록지역을 선점한 후, 전투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계곡과 고지에 미리 군사를 배치하여 닥쳐올 천황군과의 결전을 대기하고 있었다.

한편 일선 정탐병들로부터 헌원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있던 치우천황은 항장 소호를 선봉장으로 삼고 헌원군의 선점지역을 피하여 탁록의 북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헌원군의 작전을 미리 알고 있던 항장 소호가 길잡이로 활약한 덕분이었다.

이리하여 고대 동양사를 흔들었던 가장 큰 전쟁 탁록대회전이 막을 열게 되었다.

* 그리스와 트로이간에 약 3000년 전에 있었던 10여년 간의 트로이 전쟁은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신화로 취급되었었다. 그러나 독일의 고고학자인 슐리만이 1870년 유적을 발굴해 냄으로서 역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탁록대첩(?鹿大捷)으로 대표되는 치우천황의 4700년 전 이 전쟁 역시 논란이 많았으나, 치우천황의 사당과 능이 2001년 발견됨으로써 역사로 증명되었다.

헌원은 공상성을 우회하여 탁록벌을 선점하고, 치우군이 진격해올 남방 통로의 요충지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헌원의 작전을 이미 간파하기라도 한 듯 치우천황군은 정반대쪽인 북쪽 계곡을 지나 헌원군의 배후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헌원은 황급히 군진을 역으로 돌려 후미에 있던 예비군을 선봉으로 삼고 지휘부를 이동시켜 천황군의 선봉과 마주섰다.

마침 헌원군의 후미에는 공상 성주 유망이 ‘성을 잃은 성주’로 낙인이 찍혀 끌려오듯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유망의 눈앞에 놀랍게도 자기의 신하였던 소호가 치우측의 선봉장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자 치솟는 분노를 참치 못한 유망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한 무리의 병사들을 몰고 소호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렇게 하여 양측은 대장군의 전투개시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즉흥적인 교전에 들어갔는데 항장 소호가 차마 자신의 주군(主君)이었던 유망을 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천황이 앞으로 달려나가 단칼에 유망의 목을 베어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이때의 사건을 보고 옛 기록은 전하기를, “천황이 공상(空桑)을 함락시키고(攻城作戰), 도주하는 공상 성주(空桑城主) 유망(楡罔)을 판천(板泉 : 今上谷)에서 잡아 공상협약(空桑協約)을 어긴 죄를 물어 사형시켰다.”라고 썼다.

1) 탁록
중국의 하북성(河北省) 탁록현(?鹿峴)의 동남쪽, 베이징(北京)의 서북쪽에 있다.
지금의 산서(山西) 대동부(大同府)다. 비교적 건조한 지역으로 일년 중 흐린 날씨가 많고 계절풍의 영향으로 바람과 먼지가 많다. 옛날에는 목축에 적합한 지역으로 기마민족이 선호하는 환경이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치우가 3일 동안 큰 비바람과 안개를 일으키니 헌원군들이 크게 당혹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황의 일격에 유망의 목이 떨어지자 간담이 서늘해진 헌원의 병사들을 공포에 떨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천황군측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일순간 전열이 흐트러지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런 이상한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사령관 헌원이 그의 주력군을 몰고 남쪽 전선으로부터 일선에 도착하였다. 천황군이 물러섰던 것은 멀리서 진격해오는 헌원의 군세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일선에 모습을 나타낸 헌원은 잠시 진세를 살피더니 곧 천황군의 병력이 예상보다 적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헌원은 자신의 엄청난 병력을 보고 천황군이 물러섰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헌원은 즉시 총공격을 명령했다. 헌원의 대군이 전속력으로 진공하자 천황군은 말머리를 돌려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헌원의 대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쫓고 쫓기는 싸움이 반나절을 넘기면서 전의를 상실한 듯 천황군은 탁록의 깊은 계곡으로 몸을 숨겼다. 승리를 예감한 헌원은 전군을 몰아 협곡 깊숙이 천황군을 뒤쫓아 들어갔다.

▲ 탁록대첩(?鹿大捷)
오른쪽의 탁록대첩도는 신시(神市) 배달한국[倍達桓國]의 제14대 한웅[桓雄]이신 치우천황(蚩尤天皇)의 서정군(西征軍)과 헌원(軒轅) 황제(黃帝)가 이끄는 중화 연합군과의 대결전을 그린 역사 전쟁기록화(戰爭記錄畵)이다. 오랜 배달한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 전쟁은 현 중국의 탁록(?鹿)에서 벌어졌는데, 때마침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에 유황연기를 피워 날리는 전술을 교묘히 펼치면서 중국의 연합군을 철저히 패퇴시킨 치우천황의 영웅적인 승리를 대표하는 전투이다.
2003 Oil on canvas, (515 x 157Cm)

얼마를 쫓았을까? 도망치기만 하던 천황군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헌원군을 막아서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소리가 울리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짙은 안개가 계곡을 가득 메우며 헌원군 쪽으로 불어닥쳤다. 때마침 북쪽의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누런 안개와 뒤섞이며 헌원군을 강습하자 헌원군은 일시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다투다가 넘어지고 밟고 밟히는 아수라장이었다. 그동안 치우천황이 모래를 먹고 안개를 일으키며 천둥벼락을 내려칠 수 있다는 소문이 모두 사실이었다. 공포가 극에 달한 헌원군은 더 이상 군대가 아니었다. 일시에 아비규환에 빠진 헌원의 병사들은 서로 앞다투어 협곡의 입구를 향하여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이 협곡의 참극 속에 헌원군은 병력의 반수를 잃고 말았다.

전쟁의 승패란 그 병사들의 수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치우천황은 거짓으로 패주(敗走)하며 기고만장한 헌원의 대병력을 탁록의 골짜기로 유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오는 계절풍(季節風) 황사(黃砂)를 이용하여 미리 준비했던 유황(硫黃)을 피우니 골짜기는 연기로 가득차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데다가 갑자기 울려퍼지는 북소리의 진동은 적병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탁록 일전에서 치우천황은 초전에 엄청난 대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치우비(蚩尤飛) 장군 전사(戰死)

천하의 지존이신 치우천황의 천병을 뒤쫓으며 하늘을 찌를 듯 사기충천했던 헌원의 무리들은 이제 더 이상 전사(戰士)로 불릴 수 없을 정도의 초라한 몰골이었다. 그들은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흉려(凶黎)의 계곡을 벗어나기 위하여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윽고, 멀리 흉려계곡(凶黎溪谷)의 입구가 보였다. 헌원과 그의 장군들은 비로소 ‘이제는 살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순간 천둥을 울리듯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병사들이 헌원의 앞길을 막아섰다. 치우비(蚩尤飛)가 이끄는 천황군의 별동부대(別動部隊)였다. 이들의 임무는 패주하는 적병들의 측면을 공격하고 요란한 북소리와 징소리로 심리적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켜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전투의지마저 빼앗고 좌절이 극에 도달했을 때 계곡의 입구를 이중으로 봉쇄하고 있던 풍백(風伯) 장군의 매복군이 잔당을 처치하는 것이 천황의 의도였다.

이미 천황의 엄중한 작전지시를 받고 매복해 있던 치우비의 눈앞에 반란군의 수괴인 헌원과 그의 장수들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젊음의 피가 용솟음치던 치우비는 그만 천황의 명령을 잊고 눈앞의 적장(敵將)을 잡아 큰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치우비는 소수의 별동부대만을 이끌고 무모하게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헌원과 그의 장수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천황의 매복군을 발견하고 기절초풍하며 겁을 먹었지만, 곧 소수의 별동대임을 알아채고 무모하게 달려드는 치우비를 역포위 하였다.

비록 치우천황의 맹렬한 추격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헌원군의 장군들이었다. 치우비가 자신들을 바보 취급하고 단기(單騎)로 덤벼들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한 헌원의 장수들은 분풀이를 하려는 듯 치우비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결국 치우비는 혼자 힘으로 헌원과 그의 장군들을 맞아 싸우다 여러 개의 창끝과 칼날 아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는 젊은 치우비의 경솔하고 무모한 행동에 대한 대가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치우비의 별동부대와 충돌한 헌원군은 치우비의 목을 높이 들고 이것이 치우천황의 목이라고 외쳤다. 비록 치우의 신장이라고 할지라도 활을 맞으면 죽고 칼로 목을 치면 베어질 수 있다고 외치니 헌원의 패잔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잃었던 용기를 다시 되찾았다. 헌원은 방향을 잃은 병사들을 다시 수습하여 전투 대오를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를 추격하던 치우천황의 천군들이 요란한 북소리와 징소리로 천지를 진동시키며 바로 헌원군의 후미를 주살해오기 시작했다. 헌원은 따르는 장수들을 격려하며 치우비의 목을 놓지 않고 “천황군도 인간이니 결사적으로 싸워 혈로를 뚫어라!”라고 명령했다. 바로 이때 흉려계곡의 입구를 봉쇄하고 있던 풍백군이 하늘의 수리가 전해준 천황의 명령을 받고 계곡 안으로 진입하여 헌원군의 정면에 나타났다.
뒤늦게 소년 장수 치우비가 별동대를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치우천황은 노여움으로 몸을 떨었다. 이윽고, 치우천황은 지휘검을 높이 빼어들고 헌원을 따르는 반역 잔병들을 모조리 척살할 것을 명령했다.

한편 헌원도 이미 ‘독안에 든 쥐’의 형국으로 더 이상 어떤 작전도 펼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길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는 것뿐이었다. 이리하여 처참한 흉려계곡의 유혈참극이 막을 올렸다. 이때의 전장은 사실상 이미 전멸상태에 이른 헌원군을 좁은 협곡에 몰아넣고 뒷쪽의 천황군 본진과 앞쪽의 풍백군단이 협공작전을 펴며 주살해 들어가는 대학살극에 가까운 것이다.

어느새 흉려계곡을 피로 물들인 대참살극이 시작된 지 반나절이 흘렀다. 헌원을 따라 중화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로 뭉쳤던 헌원의 병사들은 거의 다 흉려의 귀신으로 변해갔다. 이제 헌원과 그를 호위하고 있던 소수의 장수들만 이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판단된 헌원은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하늘의 도움을 빌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하늘이 돕기라도 한 듯 전면을 봉쇄하고 있던 풍백군의 후미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더니 한 무리의 병사들이 풍백군진을 뚫고 들어왔다. 헌원이 놀라 바라보니 그의 딸 ‘발(魃, ba)’이었다. 발은 헌원의 막내딸로, 그 생김이 너무 못나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아버지를 따르며 장수로 자랐다. 이날도 아버지를 따라 참전하고 있었으나 헌원의 명으로 예비군을 지휘하며 양수에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쉽게 천황군의 뒤를 쫓아갔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척후병을 파견하여 사정을 알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총명한 발은 급히 결사대를 조직하여 천황군의 군복으로 변장시킨 다음, 마치 천황군의 별동대처럼 행동하며 신속하게 흉려계곡의 입구로 접근하였다. 그리고 기습적인 공격으로 풍백군단의 후미를 공격하여 혼란을 일으킨 후 사경(死境)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여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발의 도움으로 헌원과 그의 측근 장수들은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대부분의 병사들의 시체는 여기저기 흩어져 산처럼 쌓였고 피는 강을 이루었다. 결국 헌원의 군사들은 흉려계곡의 귀신이 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헌원과 치우천황의 제일전(第一戰)은 천황의 엄청난 완승으로 막을 내렸는데, 역사는 이를 가르켜 ‘치우천황의 탁록대첩(?鹿大捷)’이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서 치우비가 죽은 것을 놓고 중국인들은 황제가 흉려계곡에서 치우를 죽였다고 왜곡하여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관자(管子, 管仲)는 탁록대첩을 “천하의 임검이 칼을 들고 노하자 쓰러진 시체가 들에 가득하다.”라고 기록하여 그나마 진실의 전하고 있다.

젊은 장수 치우비(蚩尤飛)의 무모한 희생을 교훈으로 삼은 천황은 이후 황군의 군기[軍紀]를 더욱 엄격하게 하였다. 군령(軍令))을 위반하는 자는 비록 그가 큰 공을 세웠다 해도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오히려 군율을 어긴 죄를 엄중하게 물어 처벌하였다.
초전에 벌어진 치우비의 희생은 오히려 교훈이 되어 천황의 작전명령 한마디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천황군으로 하여금 천하제일의 정예군대로 거듭나게 하였다.

발(魃, ba)
중국의 역사화보에 나타난 여신(女神) ‘발’의 모습이다. 중국의 기록에는 ‘발(魃, ba)’을 천녀(天女)라고 쓰고 있다. 황제가 위기에 처하여 하늘의 도움을 애걸하자 하늘에서 천녀가 내려와 황제를 구해냈다는데 그 천녀의 이름이 발(魃)이라는 것이다. 결국 제 힘으로 치우천황을 이길 수 없어서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는 간접 기록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옛 기록들은 하나같이 “치우가 능히 큰 안개를 만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치우에 대한 옛 사람들의 존경심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치우(蚩尤)란 속어로 번개와 비를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물론 사람이 요술처럼 안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많은 기록들이 한결같이 같은 내용을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치우가 마치 요술처럼 보이는 모종의 방법으로 적병들로 하여금 진짜 안개를 만들어냈다고 믿게 하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치우가 유황, 염초 따위로 연기를 일으키고 바람의 방향을 잘 이용했다면 이상의 기록들과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람(御覽)』 제15권에는, “헌원이 아홉번의 큰 싸움에서 아홉번을 다 졌는데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니 하늘에서 현녀(玄女)를 보내고 병신(兵信)과 신부(神符)를 주어 치우씨를 제복(制伏)케 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중국인들이 황제편에 서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기록하려 노력하였으나 황제의 연합군이 치우천황의 원정군에게 일방적으로 패전했다는 사실만은 감출 수가 없을 만큼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사마천이 그가 저술한 『사기』에서 “치우와 황제가 다 같은 동이족이었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패전지장 치우가 가우리[九黎]족이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황제 역시 그가 소전(小典)가의 후손으로 동이족이어서 결국 한족과 동이족의 싸움이 아니라 같은 동이족끼리의 영토분쟁일 뿐이고 중화의 토인들은 이용만 당하였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별로 이상할 게 없지만 그래도 중국인인 사마천이 어쩔 수 없이 진실을 고백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 특유의 역사왜곡 방법에 ‘춘추필법’이 있는데 한 예를 소개한다.
『일주서(逸周書)』의 「사기편(史記篇)」에 이르기를 “치우는 유망의 뒤를 이어 염제가 되었으니 역시 판천씨이다(蚩尤逐愉罔而自立 號炎帝 亦日阪泉氏).”라고 썼고, 또 『로사(路史)』의 「치우전(蚩尤傳)」에는 “판천씨 치우는 강씨 성으로 염제의 후예로 염제라고 부르기도 했다(阪泉氏 蚩尤 姜氏 炎帝之의裔也…號炎帝).”고 했다. 한편, 사마천은 “황제가 탁록전쟁 중 치우를 죽였다.”고 했는데, 위의 기록을 분석하여 보면 이미 죽었어야 할 치우가 염제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식 역사 조작의 한 단면으로 황제가 치우를 이긴 것으로 기록하기 위하여 서로 모순되는 일도 그들의 역사서에 마구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