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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그 당시의 주변정세-위만쥬신[衛滿朝鮮]과 삼한(三韓)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노관이 왕으로 있던 연나라는 예로부터 동이의 영토였으므로 주민의 대부분이 동이 사람들이어서 한족인 노관왕은 현지 동이인들을 달랠 목적으로 쥬신 교포 위만(衛滿)을 발탁하여 중신(重臣)으로 썼다. 그러나 노관이 반적으로 몰려 흉노로 탈출하는 상황에서 위만은 그를 따라 흉노의 신하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기전 194년, 중원의 패자(覇者) 한(漢) 고조 유방이 죽자, 유방의 친구로 그의 임명을 받아 연나라 왕위에 있던 노관(盧?)이 한의 신정부로부터 역적으로 몰려 북방의 흉노(匈奴) 제국으로 도망치게 된, 노관의 신하(臣下)였던 위만(衛滿)도 그의 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흉노의 대선우(大單于) 모돌[冒頓]에게 망명한 노관은 장차 한나라와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 모돌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아 동호로왕(東胡盧王)에 봉해졌다. 한편, 위만(衛滿)은 약간의 부하들을 이끌고 동족(同族)이 살고 있는 동쪽의 개아지쥬신[奇子朝鮮]으로 갔다.

당시 개아지쥬신은 서울을 펴라에 두고 제42대 마한 단군(馬韓檀君)이 다스리고 있었고, 태자 기준왕(奇準王)이 님성[壬儉城]을 지키고 있었다.

“님성이다.”

“그대 위만은 우리 쥬신 사람으로 연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동호(東胡)의 옷을 입고 나를 찾아 왔으니 무슨 일인가? 만약 정치 협상이라면 펴라의 단군 기자님을 찾아가야 할 텐데….”

“모시고 있던 연왕이 흉노의 동호로왕이 되었으나, 이 위만은 흉노의 신하가 되기 싫어 기준왕을 찾아 왔나이다. 제발 거두어 주시옵소서.
앞으로 쥬신에 충성을 하겠나이다. 믿어 주시옵소서.”

“좋다! 그대들을 받아 주마. 그러나 벼슬을 내릴 수는 없으니 너무 섭섭히 생각지 말라. 그 대신 그대와 그대의 종자들에게 연(燕)과 쥬신[朝鮮] 간의 공지(空地) 100리 땅을 줄 터이니 그 곳에서 조용히 살도록 하라.”

“고맙습니다. 준왕(準王)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사옵니다. 또 목숨을 걸고 쥬신의 변방을 지켜 중화인들이 공지를 통과할 수 없도록 하겠나이다.”

당시 연과 개아지쥬신의 국경에는 양국의 국경 협정에 의하여 100리의 공지를 두어 양쪽 백성들이 서로 살 수 없는 완충 지역으로 하였는데, 그 땅을 기준왕(奇準王)이 위만에게 허락하여 살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만은 원래 야심이 많은 자여서 님성에 있는 동안 개아지 쥬신의 방어가 허술한 약점을 발견해 냈다.

“하늘에 위만에게 주신 절호의 기회로다. 이번에 나도 한번 나라를 뒤엎고 왕노릇을 해 보리라!”

위만은 그의 백성들을 공지(空地)에 남겨 놓고 단기로 흉노에 있는 노관에게 달려갔다.

“공은 동족(同族)이 사는 개아지쥬신으로 찾아가 살겠다며 떠나더니, 왜 되돌아왔소? 벌써 이 노관이 그리웠던 게지, 하하하!”

“대왕! 이 몸이 개아지쥬신을 찾아갈 때에는 적어도 작은 나라의 왕위(王位) 하나쯤 줄 걸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님성의 태자 준왕을 만나 보니, 그는 조연경(朝燕境)의 공지를 주며 살라 하더이다. 그게 어디 자기들만의 땅입니까?”

“그래서 나라를 안 주면 뺏기라도 할 생각으로 관찰해 보니, 지금 쥬신족은 힘을 잃고, 부여족 해(解)씨들이 세력을 장악해 구쥬신계의 불만이 대단히 많사옵니다.”

“더구나 대장군 탁(卓)을 위시하여 오가의 욕살들이 마한[말쥬신]의 남쪽으로 쫓김을 당해 그 곳에서 목지국(目支國)을 세웠다 하여, 옛 주신 사람들이 탁장군의 뒤를 따라 줄줄이 떠나가므로 지금 님성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질서도 엉망이로소이다.”

“만약 대왕께서 저에게 약간의 흉노병(匈奴兵)을 빌려 주시면 님성을 단번에 함락시켜 모돌 선우[冒頓單宇]의 제후국으로 남겠사옵니다. 그리 되면 동호왕(東胡王)이 되신 대왕께서도 모돌 선우께 면목이 서지 않겠사옵니까?”

“개아지조[奇子朝]내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흥!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준 행운이로다. 좋다! 내가 흉노의 정예병을 내어 줄 것이니 석 달 내로 성을 떨어뜨리고 되돌려 줄 수 있겠나?”

이리하여 흉노의 정예군을 얻은 위만은 자신의 졸개들과 합쳐 연합군을 편성하고 번개처럼 진격하여 님성의 기준왕(奇準王)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다. 위만군의 강공에 쥬신 3경(三京)의 하나이던 고도(古都) 님성의 수비병들은 겁먹고 정신없이 흩어져 버렸다.

얼떨결에 님성을 잃은 기준왕은 급히 좌우 신하들과 궁인들을 싣고 바다로 탈출하였다. 단군 성조이래 천년의 고도(古都)를 잃고 자신의 경솔을 뉘우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중화족에 빌붙어 벼슬하던 위만 따위의 인물됨을 한눈에 못 알아보고 속아 넘어가 결국 겨레의 성지를 잃었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선제들을 뵐 면목이 없구나! 더구나 펴라에 계신 마한 단군님을 무슨 낯으로 뵐 수 있을까?”

“아, 안돼!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게 훨씬 낫겠지?”

“왕이시여, 반도의 남쪽에 탁 장군이 목지국(目支國)을 세웠다 하고, 또 그 곳에는 많은 우리 백성들이 이미 자리 잡고 살고 있다 하오니, 일단 그리고 가서 다시 기회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옵니다.”

싫든 좋든 그들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할 수 없이 기준왕 일행은 불타는 님성을 뒤로 한 채 항해를 계속하였다. 이번에는 자신들이 쫓아 보낸 백성들을 찾아 목지국으로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위만은 순식간에 쥬신 삼경(三京)의 하나이던 님성을 탈취하고, 쫓겨난 기준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쟁취한, 이 때부터 위만 왕조(衛滿王朝)를 구별하여 위만쥬신이라 부른다.

한편, 님성을 탈출한 기준왕 일행은 이미 수백 년 간 무역으로 익숙한 뱃사공의 안내를 받으며 황해를 남하해 갔다.
그리하여 처음의 목적지였던 목지국(目支國)을 버리고, 그 대신 강화를 돌아 한강을 따라 올라와서 현재 서울 강남구 잠실[옛 이름 한터[韓地]]에 상륙하여 가락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부왕(父王)인 마한 단군(馬韓檀君)의 이름을 따라 나라 이름을 마한(馬韓)이라 하였다. 이를 한터마한[韓地馬韓]이라 한다.

돌연 기준왕이 출현하여 한터마한이 세워지자, 아산만 미추홀에 먼저부터 내려와 있던 목지국(目支國)의 옛 신하들은 깜짝 놀라 스스로 찾아와 마한의 제후국으로 자처하니, 마한은 한강 유역, 경기 일대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좋은 땅이다! 이 곳에 마한(馬韓)을 세우리라.”

한편 님성을 확보한 위만은 그 기세를 몰아 개아지쥬신의 서울 펴라[平壤]를 향하여 맹렬한 진격을 계속하였다. 님성과 펴라 사이의 수십 성들이 허무하게 깨어져 유린되고, 드디어 위만과 그의 흉노군이 패수(浿水 : 지금의 遼河)까지 도달하였다. 이들을 막아 낼 자신이 없는 마한 단군(馬韓檀君)은 황급히 도망하여 달[今彌達 : 남펴라(지금의 평양)]로 도망가고, 요동 반도에 넓게 퍼진 개아지쥬신의 전 영토를 무방비 상태로 남겨 놓았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 역사적인 큰 사건들이 속속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에 전달되니, 경악한 해모수 천왕랑은 연타발(延?勃) 장군을 급히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위만과 그의 흉노군의 맹렬한 진격을 패수 강변에서 간신히 막아내고, 광풍 앞의 촛불 같던 개아지쥬신의 요동 반도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서기전 195년,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천왕랑이 죽고, 제2대 대단군으로 모수리(慕漱離)가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대는 즉시 현부군(玄部軍) 2만 명을 데리고 가서 연타발 장군을 도와 반적 위만이 서압록을 넘을 수 없도록 하고, 펴라성을 강하게 개축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라.”

모수리 대단군은 그 동안 이미 국권을 상실한 불쥬신의 변왕[卞汗]과 신쥬신의 진왕[辰汗] 두 왕에게 마한의 남쪽 영지를 각각 주어 제후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니, 변왕과 진왕은 각각 그들의 측근들을 인솔하고 새 임지로 떠났다.
대단군은 쥬신계 지도부를 모두 축출하여 나라의 주요 직책을 부여계가 완전히 장악하게 하였다.

모수리 대단군은 자제종친을 중신(重臣)으로 등용하여 옛 삼왕 즉 진왕[辰汗], 변왕[卞汗], 마왕[馬汗]과 귀족들을 대거 축출하여 마한의 남쪽 지역으로 발령을 내렸다.
옛 쥬신의 일부 유민(流民)들과 그 지도부 집단은 남쪽으로의 이동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북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흑룡강변에 자리를 잡고 쥬신의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이를 원래의 쥬신[朝鮮]과 구별하여 이두문 표기로 숙진(肅愼)이라 쓰지만, 그 발음은 다같이 쥬신이다.

개아지 쥬신의 마직 단군(檀君) 마한(馬韓)은 연(燕)에서 온 동포 위만(衛滿)의 공격을 받아 남펴라[지금의 평양]로 서울을 옮겼다. 이로써 개아지쥬신은 시조(始祖) 서여 단군(西余檀君)으로부터 시작하여 42대 역년(歷年) 1097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마한(馬韓) 단군이 남펴라로 남천(南遷)함으로써 펴라를 중심으로 하는 구개아지 쥬신의 영토가 주인을 잃게 되었다. 중앙 정부는 즉시 그 곳에 낭부(浪部)를 설치하여 욕살에 최씨(崔氏)를 임명하였다.

“마한(馬韓)은 도망을 갔지만, 펴라 지방은 우리의 중요한 요충지이니 잘 맡아 주시오.”

“대단군 님?의 뜻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다행히도 명장 연타발(延?勃) 장군의 활약으로 위만군을 서압록[遼河]에서 막아 내었고, 마한 왕(馬韓王)이 도망가며 뒤에 남겨 놓은 개아지쥬신의 옛 땅에 아직도 살아남은 25열국들은 이제 중앙 정부로부터 새로이 부임하는 낭부(浪部 혹은 良部)의 욕살 최씨(崔氏)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 때, 아사달의 중앙 정부는 단군쥬신(檀君朝鮮)으로부터 단군대부여(檀君大夫餘)로 바뀌었지만, 그 정치 제도는 옛 쥬신 제도를 모방하여 지방 정부를 9부(部)로 나누었는데, 낭부(良部)는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이번 낭부의 왕이 된 최가(崔家)로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와 더불어 이 낙랑국(樂浪國)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는 힘을 다하도록 하라. 더 이상 한구를 한 놈도 이 땅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새로 낭부의 낙랑왕(樂浪王)으로 임명된 최씨는 즉시 옛 개아지쥬신의 열국들을 통합하여 그의 제후국으로 받아들이니, 그 수가 무려 25국에 달하였다.
(낙랑국의 25제후국들은 다음에 열거한 바와 같으나, 그 반수 이상의 지명이 지금의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부득이 지도를 생략할 수밖에 없음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邯 염함, 列口 열구, 東? , 含資 함자, 長岑 장잠, 不而 불이, ?? 점제, 屯有 둔유, 蠶台 잠대, 遂成 수성, 昭明 소명, 華麗 화려, 增地 승지, 鏤方 누방, 前莫 전막, 帶方 대방, 提奚 제해, 夫租 부조, 駟望 사망, 渾彌 혼미, 邪頭味 사두미, 海冥 해명, 呑列 탄열     *이상 25제후국

*낙랑(樂浪) : 나라(國)의 이두식 표기로서 넓은 땅을 의미한다. 즉 펴라[平壤]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낙랑의 공식 명칭은 낭부이다.

*朝鮮 쥬신 : 위만 쥬신을 인정해 주고 조공을 받치도록 승인했음을 뜻함.

*浿水 패수 : 지금의 난하 지방의 100리 공지. 패수의 이름은 여러 곳에 있음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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