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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비운(悲運)의 소서노(召西奴)-3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지독한 배신감에 허탈한 마음을 안고 소서노 일행은 그녀의 고향인 비류 땅 다물도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래도 마지막 선물로서 크치에게 지방장관에 해당하는 줄라라살[北部道使]쯤의 벼슬은 주어 보낼 줄 알았으나, 주몽왕은 이미 국민 교육의 장소로 지위가 퇴락해 버린 다물도 신수두의 단군에 임명함으로써 크치에게 병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봉쇄해 버린 것이다.

수 주일의 여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고향 비류 땅엔 벌서 소문을 전해들은 비류국의 백성들이 그들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 같은 부여족이면서도 가우리에게 국왕인 송양왕(松讓王)까지 살해당하면서 망국민(亡國民)의 신세로 서럽게 살아가던 비류 땅의 백성들에게 옛 왕권의 상속자인 크치[仇台]왕자의 귀향은 하나의 구심점이 되었다.

주몽(朱蒙) 성제도 그들을 떠나보낸 후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젠 가우리의 세력이 너무 커 아무리 비류왕자가 영웅이라 한들, 망국(亡國) 비류의 힘으로 더 이상 위험은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 대신 현지의 줄라라살을 통해 소서노와 크치의 행동을 면밀히 주의 감시하여 보고토록 하였다.

소서노가 떠난 후, 주몽은 곧 가시라의 예씨 부인을 데려와 원후(元后)로 봉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서기전 19년 이른 봄, 어느덧 42세의 크치는 그가 단군으로 있는 다물도 신수두의 경당을 통하여 비밀리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이미 강력한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망해 버린 비류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였다.

이 때, 주몽 성제는 늙고 병들어 상왕(上王)으로 물러나고, 누리 태자가 나라의 정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크치의 행동을 감시하던 누리는 크치의 세력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눌현의 힘으로 줄라라살을 파견하여 크치의 군사 훈련을 제지하려 하였다.

“크치 왕자님! 줄라라살이 또 나타났습니다. 저 눌현의 간첩 놈이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크치 왕자! 또 군사 훈련인가?”

“라살! 신수두의 교육 문제는 이 크치 단군의 권한이다.! 이 곳은 신성한 수두의 영역이니, 즉각 이곳을 떠나 주기 바란다.”

“여기 누리 태자의 명령서가 있다. 다물도 수두의 군사 훈련을 중지하라!”

정의감과 충성심에 피가 끓는 젊은 국자랑(國子浪)이 자기들의 단군이 일개 라살에게 모욕을 당하자,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달려들어 이 무례한 라살의 목을 쳐서 죽여 버렸다. 실로 순간적으로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돌연히 발생한 이 사건으로 국자랑과 라살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흥분한 국자랑들은 라살의 호위병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로써 눌현의 문책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크치 대자님!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나이다.”

“어차피 한 번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이 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소서노 왕녀와 온조 왕자는 이 엄청난 현장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니, 형님! 이 일을 어찌 하시려고….”

“크치! 일이 좀 성급했다. 아직 우리 힘으로는 가우리의 강대한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어. 조금만 더 참을 것이지, 이 일을 어찌 수습하나….”

“염려 마십시오, 어머님.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제 나이 벌써 마흔 네 살입니다. 주몽왕은 스물두 살에 이미 가우리를 세웠습니다.
어머님, 저는 국자랑[國子浪軍]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납니다. 남쪽 패대(浿帶)의 땅은 기름지고 살기가 좋다는데, 때마침 그 곳의 낙랑(樂浪)도 국력이 쇠약해져 있다고 합니다. 패대의 땅에 새 나라를 세워 비류국 백성들을 편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크치 형님! 이 온조도 형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어차피 눌현으로 가도 누리 태자나 예씨왕후 그 누구도 나를 반겨 줄 리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형님을 따라가 새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이 되겠습니다.”

“온조 말이 옳다! 우리 모두 다같이 가자. 그 길만이 살길이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비류 백성들도 모두 데려 갑시다. 곧 가우리 군이 도착할 것이고 그리되면 그들이 복수를 한답시고 우리 죄 없는 비류 백성들을 모두 학살할 것입니다.
또 설사 살아 남는다 해도 가우리의 노예로 변할 것인즉 차라리 모든 백성을 데리고 패대의 땅으로 가서 새로 힘을 키우느니만 못합니다.”

“자, 비류의 백성들이여, 그리고 다물도의 백성들이여! 지금부터 남쪽의 따뜻한 땅을 찾아 떠난다. 일차 목적지는 패대(浿帶)의 땅이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바다 건너 신천지인 삼도(三島)까지 갈지도 모른다. 이곳에 남고 싶은 자는 남아도 좋다. 그러나 가우리의 공격이 예상되므로 각자 살길을 찾아 분산하라!”

“우리 비류 백성들은 모두 크치왕을 따라 가겠소. 우리의 왕, 크치왕 만세!”

크치는 자신이 있었다. 그에겐 이미 잘 훈련된 국자랑군(國子浪軍)이 있고, 또 그에게 충성하는 백성들도 있었다. 만에 하나 패대의 땅에 정착할 수 없다면, 협보의 선물인 왜노를 앞세우고 삼도로 가면 된다.
삼도는 땅이 넓고 거의 무인도라 했고, 또 어머닌 소서노 여왕에겐 왕실의 금은보화가 있으니 새 나라 건설에 필요한 자금도 튼튼하였다.

이리하여 소서노 여왕과 비류 천황[크치왕]의 파란만장한 대장정의 역사적인 막이 열리게 된다.

크치가 인솔하는 비류국과 다물도의 대이민 집단은 거의 석 달을 넘게 행진하고서야 겨우 대수(帶水)를 건너 꿈구던 패대(浿帶)의 땅에 도착하니 바로 대방 고지[帶方의 옛 땅]였다. 이 때, 크치의 앞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낙랑 왕이 특별히 파견한 사자로서 오래 전부터 크치 일행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지! 나는 낙랑 왕(樂浪王)의 특사로다. 이 곳부터는 낙랑의 영지(領地)이다. 그대들은 다물도(多勿都)의 소서노 여왕 집단인가?”

“그렇소, 나는 크치왕이오. 소서노 여왕도 함께 모시고 왔소. 패대의 땅이 비어 있다고 해서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왔소이다. 우리에게 살 수 있는 땅을 좀 허락해 주시오.”
“우리는 낙랑을 상국으로 하여 한구(漢寇)의 침략을 막아 드릴 것이오.”

“하하하, 염려 마시오. 사실은 가우리의 주몽 성제께서 사신을 보내시어 그대들 소서노 여왕 일행에게 이 곳 땅을 할애해 주도록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낙랑 왕께서 저를 이 곳으로 보내어 그대들을 영접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곳은 한구(漢寇)와 흉노(匈奴)의 침략이 잦아서 그 피해가 막심한 곳이니 조심해서 땅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오.”

간신히 땅을 얻은 크치는 옛 님성을 보수하여 수도(首都)로 삼고, 한구(漢寇)의 침략으로 초토화된 이 지역을 다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의 뒤를 따라 옛 비류국 백성과 다물도 백성들이 속속 모여들어 순식간에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자, 크치는 독립을 선포하고 국명(國名)을 백제(百濟)라 하였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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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웅 183.97.126.251 2014-08-13

    저기는 외밝지!
    대방고지가 바로 저기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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