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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온조(溫祖) 십제국 건국(十濟國建國)-1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서기전 7년, 드디어 비류천황의 승낙을 받아 낸 온조는 백제의 10신과 백성을 나누어서 십제국을 건설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십제라는 국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의 동생 나라로 처음부터 그 관계를 분명히 하였다. 또한 그를 버린 아버지의 고씨(高氏) 성(姓)을 버리고 부여의 정통성을 잇는 의미로 해씨(解氏)성을 취하였다.

십제국(十濟國)의 시조 온조왕은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지금 용인 負兒山)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안성천(安城川) 상류에 자리를 잡고, 외백제(外百濟)의 수도 이름을 본떠 하남 오리골[河南 慰禮城]이라 하니, 지금의 천원군(天原郡)이 그 곳이다.

온조왕의 십제국은 가우리의 통치 제도를 본떠 5방 군현(五方郡縣)의 중앙 집권 제도로 형님나라인 비류천황의 백제국과는 처음부터 다른 정치 제도를 썼다.

비류 천황의 백제(百濟)는 옛 쥬신제국[朝鮮帝國]의 담로제(?魯制)로 단군의 자제 종친(子弟宗親)을 왕으로 임명하는 지방자치제도였다.

한편, 메주골로 되돌아온 비류 천황은 즉각 그들을 싣고 왔던 대선단을 외백제(外百濟)로 되돌려 보내 그의 백제가 목지국(目支國)의 영토를 장악하고, 마한 정복의 발판을 마련했음을 소서노 여왕에게 보고하고, 추가로 더 많은 백성과 병사 그리고 군장비를 수송해 오도록 하였다.

기쁜 소식에 접한 소서노 여왕은 그 동안 외백제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곧 제2차 소송선단을 직접 지휘하여 메주골로 들어오니, 서기전 6년 2월 초였다.

그러나 메주골에 도착한 소서노 여왕에겐 예상치 못한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온조(溫祖)가 협력을 거부하고 십제국을 세워 따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메주골에 도착한 소서노 여왕은 대단히 실망하여 비류를 크게 책망하였다.

“어찌하여 온조를 따로 떼어 독립시켰단 말이오? 별로 많지도 않은 신하와 백성들을 쪼개어 그나마 힘을 분산시키고서 어찌 대국 건설을 꿈꿀 수 있겠소?”

“이건 틀림없이 역신(逆臣) 오간(烏干)과 마려(馬黎) 등의 꾐에 온조가 어리석게 속아 넘어간 것이오.”

“어머님! 저도 온조의 독립을 막았사옵니다. 그러나 오간과 마려의 무리들의 부추김을 받아 온조가 끝끝내 고집을 세우므로, 할 수 없이 어머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승낙하였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불러들이겠사옵니다.”

“온조는 이제 천황이 부른다고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특히 오간, 마려의 무리들이 걸림돌이 될 것이오. 먼저 오간과 마려 무리를 제거한 후에 온조를 불러들입시다. 역시 이 일은 내가 직접 해야 할 것 같소. 며칠 간 쉰 다음, 오호 장군(五虎將軍)을 데리고 오리골로 가서 오간의 무리들을 소탕하고 온조를 데리고 올 것이니, 그리 알고 준비나 해 두시오.”

실망과 분노에 찬 소서노 어라하는 오간, 마려의 무리를 제거하고, 갈라선 형제를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하여 비류의 오호 장군을 앞세우고 그 자신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십제(十濟)의 하남 오리골을 향하여 떠났다.

비류 천황의 오호 장군들이 십제의 국경을 넘어 하남 오리골로 진격해 가자 이미 국경 수비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오간과 마려는 대단히 놀라서 성병들을 모아 방어를 굳게 하고 닥쳐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호 장군들이 자신들의 목을 가지러 오는 줄 알았다.

“마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오호 장군들이 온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목숨일세. 소식에는 외백제의 소서노 여왕께서 메주골에 도착하신 모양인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호 장군은 여왕의 명으로 우리를 잡으러 오는 것이 틀림없어.”

“우리가 온조왕을 부추겨 십제국을 세웠고 생각하고, 모든 죄를 우리에게 뒤집어 씌워 죽일 거야.”

“왕에게 보고하여 사태를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그건 안돼! 온조왕이 어머님인 소서노 여왕이나 형님인 비류 천황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우리를 보호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이대로 처형당하고 말겠지.”

“이왕에 죽을 바엔 한번 싸워나 보세. 일단 성문을 열어 오호 장군들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병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성문을 재빨리 닫고, 매복병을 시켜 일시에 활을 쏘아 죽여 버려야 해. 일단 일을 저질러 버리면 온조왕은 천황의 명을 어긴 죄로 우리와 같은 운명이 되겠지. 그 길이 유일한 희망이야.”

“역시 자네는 머리가 좋군. 좋아! 한번 해 보세. 온조왕을 끌고 들어가는 길이 유일한 살 길이야. 나도 동감이야.”

오간과 마려의 흉계도 모르는 채 오호 장군들과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갑옷으로 무장한 소서노 여왕 일행은 활짝 열린 성문을 바라보고, 안심하고 입성하였다.

“하남 위례성의 문이 활짝 열려 있군.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렇지. 온조가 이 에미가 온 것을 눈치챈 모양이군.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였다. 마려와 오간만 잡아 오면 온조는 스스로 와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소서노와 오호 장군들은 안심하고 하남 위례성으로 입성하였다.

“성문을 닫아라!”
“무슨 짓들이얏? 아, 속았구나!”

오간과 마려의 명령에 따라 미리 잠복했던 궁사들의 일제 사격에 오호장군과 늙은 소서노 여왕은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순식간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대제국 가우리(高句麗)와 백제(百濟) 두 나라 건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여걸 소서노의 최후로서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종말이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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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물넷 124.80.69.130 2006-11-29

    추무태왕하면 소서노를 빼놓을수없고, 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누리의 등장으로 왕위승계에서 밀려난 소서노의 아들 크치와 온조의 그후 행보까지는 밝혀두는 것이 좋을듯해 올립니다. 앞으로 추무태왕편은 온조의 십제국건국과 관련된 단 1편만 남아있네요

  • 임명환 218.154.62.156 2006-11-28

    고가우리건국 이야기가 어쩌다 십제건국까지 와버린 거죠? 가우리 건국 후, 벌써42년이나 지났습니다. 어디까지 갈 거죠? 아직도 완결이 안 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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