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비운(悲運)의 소서노(召西奴)-2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한편, 동부여(東夫餘)의 가시라에서는 주몽의 적자(嫡子)인 누리(累利)가 어머니 예씨 부인의 손에 자라나 이젠 22살의 당당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주몽과 가우리의 소식을 듣고 분석한 예씨 부인은 가우리 건국에 큰 밑받침이 되었던 소서노 왕녀와 그녀의 장성한 아들 크치를 생각하고, 누리를 평범하게 키워서는 크치나 온조를 상대로 왕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누리를 훌륭하게 키우는데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현명한 예씨 부인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과로 이제 누리는 가우리 제2대 왕위에 오를 만한 인재로 성장하였다.

이젠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예씨 부인은 누리를 불러 할머니인 유화 부인께 인사 드리고 가우리의 새 서울 눌현(訥見)으로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아버지, 주몽 성제(朱蒙聖帝)를 찾아 보냈다.

“자, 이제 그 칼을 뽑아라. 그리고 아버지를 찾거든 그 탯줄의 증표를 보여 드리거라. 네가 적자라는 증거로다.”

23년 전, 아버지 주몽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훗날 찾기 위한 증거물로 그의 칼을 부러뜨려 그 한쪽을 나무 기둥에 박아 놓았으니, 이제 22살의 청년으로 성장한 누리를 그 칼을 증표로 삼아 가우리의 열제위(烈帝位)에 있는 아버지 주몽을 찾아 눌현으로 떠났다.

물론 주몽 성제에겐 또 다른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큰아들인 크치는 소서노 왕녀가 데리고 온 아들이므로 별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고, 둘째인 온조(溫祖)왕자는 소서노 왕녀와의 태생이지만, 아직 어려서 태자의 자리를 비워 놓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누리(累利)는 즉각 주몽 성제의 궁전으로 안내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대전 저 높은 용상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감격적으로 상봉하게 되었다.

“네가 과연 누리란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남겨 놓고 온 증표가 있을 텐데?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느냐?”

“물론이옵니다. 아버님께서 가시라를 떠나시며 집 기둥에 꽂아 놓고 떠나신 이 반쪽의 칼을 뽑아 들고 왔사옵니다. 어머님 예씨 부인께서 매일같이 기름을 칠해 녹슬지 않게 지키셨으며, 제가 공부를 게을리 할 때마다 그 앞에서 채찍질로 반검(半劍)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하셨나이다.”

“내 아들 누리를 태자에 봉하노니, 제신들은 태자에 대한 예(禮)를 갖추어 대하라!”

22년간의 긴 세월 끝에 부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상봉을 한 것이다. 가우리 건국 이후 지금까지 비워 놓았던 태자(太子) 자리의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주몽 성제는 애오라지 적자(嫡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리를 즉시 태자로 천하에 선포하였다.

갑작스러운 누리의 출현은 지난 20년 간 모든 노력과 정성을 바쳐 주몽의 가우리 건국을 도왔던 소서노 왕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다. 이미 태자가 누리로 정해진 이상 소서노가 설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이날 밤, 왕비궁엔 비참한 밤공기만 낮게 깔리고 있었다.

“어머님, 우리는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모든 걸 주몽 성제께 바쳤지만 이제 단 한 마디의 의논도 없이 태자의 자리를 아무 공도 없는 누리에게 주었으니 우리의 앞날이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비류! 흥분하지 마라!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 우리는 위험한 함정으로 빠지고 만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그러니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이 곳을 떠나 고향 비류의 땅으로 돌아가십시다. 더 이상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누리를 태자로 봉한 걸 보면 곧 그의 에미 예씨 부인을 찾아 원후(元后)로 삼을 텐데, 그리 되면 나는 소후로 밀려나겠지?”

비운의 소서노 왕녀 모자는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모자는 날이 밝자, 벌써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자, 온조(溫祖) 그만 일어나거라. 우리는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아직 이른 새벽, 결심을 굳힌 소서노는 두 왕자를 데리고 대왕궁으로 하직 인사차 찾아갔다.
왕후와 두 왕자의 출현에 주몽 성제는 벌써 그들의 결심을 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이른 새벽부터….”

“대왕마마, 저희는 지금 비류 땅으로 돌아가려 하옵니다.l 이유는 대왕께서 벌써 짐작하고 계실 것인즉, 부디 저희 모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출궁(出宮)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어차피 한 나라에 두 주인은 없는 법이고, 어제 대왕께서 누리를 태자에 봉하였으므로 일부 신하들의 동요가 있을 것이니, 차라리 우리가 비류 땅으로 물러가서 대왕이 뜻하시는 바와, 특히 누리 태자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하옵니다.”

소서노의 이론은 분명했고, 결심은 단호하였다. 불필요한 왕권 경쟁은 결국 왕자들간에 피를 부를 것이니, 차라리 소서노와 비류, 온조 두 왕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을 듯 싶었다.

“좋다! 떠나거라! 크치[仇台]에겐 비류국의 다물도(多勿都) 신수두의 단군 임무를 줄 것이니, 가우리의 좋은 일꾼들을 양성하는데 힘쓰도록 하라. 소서노 당신께는 대단히 미안하오. 어린 온조를 잘 길러 누리 태자에게 있을 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
댓글남기기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댓글 내용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