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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비운(悲運)의 소서노(召西奴)-1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서기전 36년, 어느덧 가우리를 세운 지 24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몽 성제(朱蒙聖帝)는 서울을 남쪽 경영에 불편한 고도(古都) 백악산 아사달로부터 눌현(訥見:지금의 長春)으로 옮기고, 신궁(神宮)을 지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 제도를 과감히 만들어 썼으니, 그것은 유사(有史) 이래로 지켜 오던 신수두에 의한 단군 정치 제도를 군왕 권력 집중제도(君王權力集中制度)로 바꾼 것이었다.

즉, 수두의 삼신(三神)을 모시는 대제사장 단군이 국가 원수직을 겸임하여 군장 회의를 통해 국가의 중요사를 결정하던 종교 중심의 수두 신봉 연합국 공화제에서 군주 중심의 절대 군주제로 바꾼 것이다.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한님[天], 님[地], 선님[仙=檀君]의 삼신만 모셔 오던 수두에 쥬신 민족의 영웅 치우 천황(蚩尤天皇)을 전쟁의 신으로 모셔 신수두의 의미가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그 후, 수많은 조상신(祖上神)들도 모시게 되어 차츰 수두가 집 안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으며, 오늘날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형태로까지 변화되었다.

국민 교육이 강조됨에 따라 수두의 역할이 커지니, 각 수두 안에 경당을 설치하여 학생들을 교육시켰다. 이들을 국자랑(國子浪)이라 하였는데,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 등 오상(五常)의 도(道)와 독서, 활쏘기, 말타기, 예절, 가악(歌樂), 문예 등을 가르쳤다. 국자랑은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니므로 천지 화랑(天指花郞)이라 하였다. 후에 실라도 이를 본받아 화랑 제도를 만들어 삼국 통일의 뿌리가 되었다.

주몽 성제(朱蒙聖帝)는 신수두의 제(祭)를 단순한 종교 행사로부터 국민들을 단결시키고 교육시키며, 또 국방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이용하여 매 3월과 10월에 신수두 대제를 열고 각종 시험을 실시하였다. 이 때, 장원한 사람을 선배라 불러 나라에서 녹을 주었다. 선배의 상도(上道)를 신크마리라 하였는데, 이들은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으며, 검은 띠를 허리에 둘러 보통 사람들과 구별하였다.

선배들은 일단 국가에 위기가 발생하면 마리(頭大兄)와 상수(上手) 신크마리를 중심으로 뭉쳐 만약 승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으로써 그 치욕을 씻으니, 그들이 가는 곳에 패배란 있을 수가 없었으며, 이것이 가우리를 북방의 패자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배 제도는 가우리의 독특한 제도로서 사회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재주만 있으면 합격되었다. 따라서 가우리의 우수한 인재들이 이 선배들 중에서 무수히 발탁되었다.

서기전 36년 3월 15일, 오늘은 가우리 주몽 성제(朱蒙聖帝)가 수도를 눌현으로 옮긴 후 첫 번째 맞는 신수두 대제(大祭)의 날이다. 전국의 수많은 영웅들이 모여들어 경연을 벌이는데, 열두 살 난 온조왕자(溫祖王子)도 출전하였다. 졸본 땅 비류국 송양왕의 딸 소서노(召西奴)왕비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지금의 남편인 주몽과의 사이에 온조를 낳아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철없는 어린 왕자 온조는 신수두 대제에 신이 나서 출전하고 있으나, 원한을 삼키고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크치[仇台] 왕자와 어머니 소서노는 왕비궁(王妃宮) 깊숙이 마련된 제단 앞에 무릎 꿇고 부분노(扶芬奴)에게 죽은 송양왕의 명복과 함께 조상신들이 계속 그들의 안녕을 지켜 주도록 빌고 있었다.

물론 주몽도 비류국을 정벌하면서 부분노를 시켜 수도 다물도(多勿都)를 초토화시키고, 장인 송양왕을 죽인 일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왕비 궁내에 설치되어 있는 송양왕의 제단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오전에 아버지에 대한 제사를 마친 뒤, 소서노 왕비와 크치[仇台]왕자는 후원으로 나와 서로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 때 그들 앞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 도착하였으니….

“왕비 마마! 저는 협보 장군님의 사신이옵니다. 아시다시피 협보님은 삼도(三島:倭)에서 다파라국(多婆羅國)을 세워 왕이 되셨습니다.
이번 주몽 성제께 조공을 오는 길에 왕비마마께 따로 선물을 하나 가져왔나이다.”

“선물이란 바로 이 놈이옵니다. 삼도 땅의 왜노(倭奴)입니다. 보시다시피 난쟁이 같은 놈이지만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영리하여 아주 쓸모 있는 자입니다.
협보왕께서 왕비님께 전하고 싶은 삼도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이 놈에게 교육시켜 놓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물어 보십시오.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삼도는 땅이 비옥하고 넓은데, 아직도 그 대부분의 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주 야귀들은 별로 많은 수효가 아니어서 적은 병사들만 가지고도 쉽게 정복할 수가 있다고 전하라 하옵니다. 혹시 협보왕께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이 왜노(倭奴)에게 일러 보내시옵소서.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옵니다.”

“크치 왕자! 협보의 말뜻을 알겠느냐? 그는 우리가 처한 기막힌 형편을 아주 잘 꿰뚫어 보고 있어.”

“결국 주몽 성제로부터 배신당한 사람끼리의 이심전심이겠지요.”

“협보의 생각으로는 우리 모자(母子)도 그의 신세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우리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삼도로 와서 새 나라를 세워 살면 좋지 않겠느냐9는 초청장이 아니겠는가? 차츰 시간을 내어 저 왜노에게 삼도의 사정을 물어 새로운 계획을 세워 보도록 하자.”

“저는 벌써 10년 이상 협보왕을 곁에서 모셔 오던 자입니다. 협보왕의 명령으로 크치 왕자님을 모시러 왔으므로 이 목숨 다 바쳐 왕자님과 여왕 마마를 지킬 것이옵니다.”

때마침 신수두 대제에 나아가 경합을 벌이던 온조(溫祖)가 우승하여 선배의 감격적인 벼슬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귀가하였다.

“보십시오. 어머님, 형님! 이 검은 비단 띠[?帛]!
난 드디어 가우리의 선배의 영광을 얻어냈습니다.
심사원들은 내가 왕자인 것도 몰라 봤는 걸요.”

어린 왕자 온조(溫祖)는 그의 아버지 주몽을 닮아 체격이 장대하고 활쏘기, 말타기에 남다른 솜씨를 보여 왕자의 신분을 감추고서도 능히 장원하여 선배가 되었던 것이다.

*고주무[주몽]는 단군이 아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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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환 218.154.62.156 2007-10-14

    화백이 그리신 건데 그럼...

  • 김다향 220.91.58.211 2007-01-08

    와~~ 역사도 바로 알고 그림도 보고..
    정말 그림 잘 그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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