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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백제(百濟) 일어섬

"부여사"와 "부여 백제"의 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내용 중 일부를
대쥬신제국사(1993년 동아출판사刊)에서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회화작품과 역사적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부여사, 부여 백제(발간예정)와는 다른 대화체 형태이고
방대한 기간(한민족의 시원~조선)을 다룬 관계로 대략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 올려지는 이미지 자료는 곧 발간될 부여사와 부여 백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백제 정부는 옛 쥬신의 단군 제도를 본받아 크치왕 스스로 대단군(大檀君)이 되어 신의 아들(天子)이라 하였다. 그리고 왕명(王名)을 크치[仇台]에서 비류(沸流)로 바꾸어 그 백성을 대변하니, 온 백성들이 새 왕 비류 천황(沸流天皇)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비류천황은 그의 국자랑군을 신군(神軍)이라 불렀으며, 각 지방을 독립 자치 정부로 하여 그 왕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소위 담로왕(?魯王)제도를 채택하였다. 결국 모든 행정적인 책임은 각 담로왕이 질 수밖에 없고, 천황은 국가의 중대사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정권 싸움에서 벗어나게 되어 천황의 지위를 자손만대까지 전승시킬 생각이었다.

담로왕(?魯王)이나 엄치[臣智라고 쓰고 엄치로 발음함], 그리고 담로후[?魯侯]는 다같이 천황(天皇)의 자제 종친(子弟宗親) 중에서 임명되어 그 발령받은 지역의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는 위치로서, 각자의 독립된 군대를 가지고 있다가 국가 비상시엔 천황의 동원령에 즉각 연합군을 편성하여 대처하였다. 백제(百濟)의 입국 사실을 곧 가우리[高句麗]와 전한(前漢) 그리고 낙랑(樂浪) 등에 통보하니, 가우리는 소서노를 어라하[王]에 봉하였다.

서기전 18년, 비류 천황은 백제를 강국의 위치로 성장시키고 이젠 당당한 독립국으로서 낙랑과 정식 수교를 맺어 비류의 천황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백제의 건국 소문을 듣고 가우리의 강압 정치에 반발한 수많은 유민들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밀어닥친 많은 백성들 때문에 패대의 땅만으로는 이들을 유치할 수 없어 더 넓은 땅이 필요하였다. 이제 낙랑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비류는 군을 일으켜 낙랑의 변경 지대를 공취하고, 마수성(馬首城)과 병산책(甁山柵)을 쌓았다. 낙랑은 이에 크게 분개하여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비류 천황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때마침 옛 쥬신[朝鮮]의 잔류민들을 모아 용병들을 징집하니, 이들을 읍루(?婁:옛 쥬신국)의 용병들이라 부르며, 그들로 하여금 부여족인 백제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낙랑과 읍루[三國史記에는 靺鞨이라 기록되어 있음]의 혼성군이 서기전 9년, 북쪽 국경인 곤미천(昆彌川)과 청목산(靑木山)으로 쳐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이 기습전에 백제 신군은 개국 이래 첫 패전을 경험하였다.

서기전 8년, 청목산 전투에서 승리한 낙랑군은 또다시 읍루군을 앞세우고 빼앗긴 병산책을 탈환하기 위하여 쳐들어오니, 온조(溫祖)가 지휘한 백제군은 열심히 싸웠으나 결국 패하여 병산책을 내어주고 말았다. 허약해 보이던 낙랑이 아직도 무서운 저력을 발휘한 것이다.

일단 병산책을 탈환함으로써 체면을 세운 낙랑은 백제로부터 다시 조공을 받는 조건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그 후 한동안 소강상태가 지속되어 서로의 영토를 그런 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서기전 9년과 8년, 두 차례의 전투에서 연패한 비류 천황은 북방 대륙의 기병전과는 달리 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투를 경험하게 되었다.
쥬신시대로부터 유명했던 고도(古都) 님성이 멀리 보이는 아리골 산정에 위례성(慰禮城)을 쌓고, 서기전 7년에 천황궁(天皇宮)을 지어 이사하였다. 님성은 넓긴 했지만, 평지와 해변에 위치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엔 약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 아리골의 위례성은 험한 절벽을 교묘히 이용하여 난공불락의 성으로 보였다. 이 때의 축성 경험으로 장차의 모든 백제 성들은 높은 산성(山城)으로 만들어진다. 드디어 새 성이 완성되어 온 백성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뻐해야 할 비류천황과 노국모 소서노 여왕은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며 수심에 잠겨 있었다.

“어머님! 역시 이 곳에 홀로 계셨군요. 어머님 걱정을 알 만합니다.”

“천황! 우리는 역시 자리를 잘못 잡았어. 남쪽은 큰 바다, 북쪽은 가우리, 동쪽은 낙랑, 서쪽은 한구와 흉노, 어느 한 쪽도 뚫고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옳습니다. 우리 국자랑군이 신군이라 자랑하였지만, 지난 2년 동안 읍루와 낙랑의 연합군에 연패하여 병산책을 도로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저쪽 아리골 포구를 보십시오. 저 곳에는 큰 바다 건너 마한(馬韓), 삼도[倭] 그리고 남중국 등지로 장사 다니는 무역선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저는 요즈음 삼도 땅이 좋다고 하던 협보 장군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 곳에서 이렇게 견딜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신천지를 찾아 떠나 보십시다.”

“어머님은 연로하시니 이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저는 온조와 일단의 백성들을 데리고 삼도나 마한으로 들어가 새 나라를 세우고 어머님을 모셔 가겠습니다.”

“요즈음 눈여겨보니 많은 사람을 운반하는 데에는 말보다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길은 배를 만들어 타고 가겠습니다.”

아리골엔 즉각 조선소가 세워졌고 30여 척의 큰배가 만들어졌다.

서기전 7년, 비류천황은 백성들을 나누어 현지(外百濟)에 남아 있게 하고 그를 따라가기를 희망하는 백성들과 신하들만 데리고 떠나니,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수효가 백가(百家)를 넘었다. 이로부터 백제는 항상 두 곳 이상에 존재하게 되어, 그 천황이 있는 곳을 백제(百濟, 本百濟)라 하고, 대방 옛터[帶方故地]의 백제를 외백제(外百濟)라 하였다. 외백제는 소서노 어라하(王)가 두 명의 담로왕을 각각 분립시켜 통치하게 하였다.

황해를 내해(內海)로 삼아 살아가는 능숙한 무역 상인의 안내로 불과 며칠만에 비류 천황 일행이 메주골[彌鄒忽]에 도착하니, 이 곳이 바로 목지국(目支國)이다. 메주골의 목지국 왕은 천황 일행의 엄청난 상륙 광경을 보고, 즉시 이들이 보통 세력이 아님을 깨달아 포구(浦口)까지 영접을 나갔다.

서기전 7년, 비류 천황과 그의 백가 신하들이 상륙한 메주골[彌鄒忽]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만 밀두리(密頭里)이다.

“저는 이 곳 목지국 왕입니다. 귀인들께선 어디서 오시는 누구시옵니까?”

“나는 백제의 천황 비류다. 그대 목지국 왕은 크게 염려하지 말라. 나는 이 곳을 백제의 영지로 삼을 생각이지만, 그대를 목지의 담로왕으로 삼을 것이다. 이 곳 어디에 왕도(王都)를 세우면 좋겠는가?”

“이 곳의 동북쪽이 넓게 비어 있나이다. 원래는 마한 왕(馬韓王)의 땅이었는데, 실라인들이 세운 새라불[徐羅伐]과 아리수 전투에서 져 남쪽 곰나루[熊津]로 도망갔으므로 천황께선 별 수고 없이 큰 땅을 장악하실 수 있나이다. 제가 직접 안내해 올리겠사옵니다.”

비류 천황(沸流天皇)은 목지국 왕을 앞세우고 온조와 십신(十臣)을 대동하여 그의 수도(首都)가 위치할 땅을 찾아 답사에 나셨다. 비류 천황 일행이 찾아간 곳은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으로서, 지금의 용인(龍仁)이다.

비류천황과 온조는 부아악 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목지국 왕의 말처럼 주위의 땅이 넓고 기름졌다. 온조는 대단히 만족하여 형인 비류 천황에게 그 땅을 자신에게 할애하여 주기를 간청하였다.

“야! 참 훌륭한 대지로다. 북쪽은 아리수(漢江)가 있고, 남쪽은 옥택(沃澤)을 안았으며, 동쪽은 높은 산을 끼고 서쪽은 대해(大海)로 둘러 싸여 천험지리(天險地利)가 이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겠다.”

“이 곳에 한번 나라를 세워 볼 만하다.”

“형님! 저에게 이 땅을 주십시오. 형님의 백제국의 동생나라 십제(十濟)를 세우겠나이다.”

“온조! 우리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가우리에 맞설 수 있는 큰 나라를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네 힘도 필요하다. 나는 계속 큰배를 이용하여 마한(馬韓)을 정복하고 바다 건너 삼도(倭)에까지 진출하여 대해양제국(大海洋帝國)을 건설하려 한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 형제가 각각 다른 나라를 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형님! 제가 원하는 것은 형님의 백성 10분의 1과 오간(烏干)과 마려(馬黎)를 포함한 10신(臣) 뿐입니다. 형님의 백제는 벌써 두 명의 담로왕을 두지 않았사옵니까? 결국 제가 요구하는 이 곳 땅도 백제의 제후국이 될 것이며, 저도 담로왕의 한사람으로 취급해 달라는 말입니다.”

“일단 형님께서 허락하여 주시면 어머님의 허락은 제가 받아 내겠사옵니다 꼭 제 나라를 하나 갖도록 하여 주십시오.”

“좋다! 그러나 만약 나중에 어머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십제국은 해산되고, 너희는 다시 백제로 돌아와야 한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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