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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고구려 자멸(高句麗自滅)-1

밝해 건국이전의 시대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연개소문 사후부터 고구려 멸망까지의 내용을 뒤늦게 앞부분에 끼워넣습니다.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내용은 "연개소문" 가우리와 중국의 북방패권전-3을 참고하십시오.)

그 동안 655년의 제9차 대전, 659년의 10차 대전 그리고 660년부터 662년에 걸친 2년간의 사력전(死力戰)까지 대승으로 이끈 남생은 이제 더 이상 당노(唐奴) 따위를 겁낼 이유가 없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두 제국에 걸쳐 무려 12차의 대전을 통하여 적어도 230만 명 이상의 화족들의 생명이 가우리 땅에 쓰레기처럼 뒹굴었다.

“가우리 땅에 발을 들여 놓으면 결코 살아 올 수가 없다.” 이 말은 전설이 아니고 현실로 나타났다. 화족(華族)들의 가우리에 대한 공포심은 처절할 정도로 심각하여, 가우리 출정이라는 말만 들어도 병사의 태반이 도망쳐 버려 가우리에 대한 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길고도 지루했던 화족(華族)과 동이족(東夷族)의 대결인 이로써 영원히 종지부를 찍는 듯하였다.

대당전(對唐戰)을 무려 세 차례나 승리로 이끈 가우리의 남생(男生) 크말치[大莫離支]. 이제 누가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할 것인가?

계속된 승리의 영광에 도취된 남생은 서기 666년, 아버지 연개소문의 뒤를 따라 스스로 신크말치[太大莫離支]의 지위에 올랐다.

신크말치[太大莫離支], 글자 그대로 가우리의 모든 정권과 병권을 한 손에 완전히 장악한 지위이다.
신크말치에 오른 남생은 즉각 정부의 조직을 개편하고, 대대적인 인사 이동을 실시하였다.

그 동안 정치에 관여하려는 상징적인 열제(烈帝)인 보장왕(寶藏王)의 권력을 더욱 축소시켜 천황(天皇)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아버지 시절부터 봉사해 왔던 정부 각 기관의 중추 세력들인 늙은 충신들을 거의 다 그의 젊은 심복들로 바꾸어 젊고 힘찬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독단적인 행동은 결국 그를 도와 세 차례의 대당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노충신들의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노신들의 원망과 배신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남생은 자신감에 도취되어 소수의 근위병만 데리고 또다시 있을 지도 모르는 당노(唐奴)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전선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펴라성을 출발하였다. 신크말치가 도성(都城) 펴라를 비우자, 그 동안 이글거리고 있던 분노와 원망의 불꽃들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불만 세력을 선동한 자는 뜻밖에도 남생의 동생 남건(南建)이었다. 그 동안 형을 도와 열심히 활약했던 남건은 이번의 인사 이동을 통하여 지방 장관으로 좌천되었던 것이다. 야심만만한 남건의 성격을 위험하게 생각한 남생의 배려였지만, 형에 대한 섭섭함은 어느 새 원망으로 변했고, 원망은 분노로 변하여 남생의 독주에 불만을 갖던 세력들을 모아 작당을 하니, 그 중에서도 열제의 지위에서 천황(天皇)의 지위로 떨어진 보장왕의 불만이 가장 컸다. 불만 세력들은 쉽게 작당하여 신크말치에 대한 혁명을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나라는 남생의 나라야. 우리는 모두 허수아비일 뿐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남생의 신크말치 임명을 막았어야 했사옵니다. 일단 신크말치가 된 그의 세력을 누가 감히 꺾을 수 있겠사옵니까?”

“신크말치의 독재를 꼭 막아야 하옵니다.
만약 저를 크말치로 임명해 주시면, 제가 관군을 이끌고 나가서 남생을 잡아 오겠나이다.
그는 내 형이지만, 가우리를 위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남생에 대한 남건의 공격 발언은 뜻밖에 많은 지지를 얻어 크말치[大莫離支]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연개소문 신크말치 때부터 대당전(對唐戰)에 많은 공을 세웠던 중신들은 남생의 독주에 크게 반발하였고, 더욱이 최근 인사 이동에서 좌천의 쓴맛을 보게 된 남생의 삼촌인 연정토와 연개소문 시절 그의 참모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선도해, 그리고 수곡성주(水谷城主) 옥세강(玉世江), 남산(男産) 등이 모두 남건의 편을 들어 반정(反正)에 참가하였다.

의기양양해진 남건 크말치는 관군을 이끌고 남생이 있는 국내성(國內城)으로 진격해 갔다.

남건이 관군을 이끌고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남생은 즉각 국내성을 요새화하고 자구책을 강구하니, 개천달(開泉達) 장군과 안시성주(安市城主) 양장하(梁長夏) 등이 남생 편을 들고 일어나서 가우리는 바야흐로 내전 상태에 돌입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관군의 깃발을 높이 세운 남건군이 수적으로 열세한 남생군을 압박해 갔고, 더 이상 수비가 불가능해진 남생은 국내성을 버리고, 양장하가 있는 안시성으로 탈출해 갔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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