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대씨 가우리 입국(大句麗 立國)-3

서기 699년 황제에 즉위한 대조영은 국호를 대신국(大辰國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하였는데
훗날 중국측에서 “밝해”로 불러 본국명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쥬신의 전 물가 제부[靺鞨諸部]의 수령들을 이끌고 태백산의 하늘 못[天池]에 올라 대가우리의 황제임을 하늘에 고하여 승인을 받게 된 대조영.
그는 이제 당당한 황제로서 수령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 못을 떠난 대조영은 수령들을 이끌고 예정된 수령 회의를 위하여 아름다운 골안담수[忽汗湖 : 지금의 鏡泊湖]로 향하였다.

“이제 우리 쥬신족들이 모두 한 뜻으로 단결을 맹세하였으니, 서족(西族 ? 漢族)들을 한시바삐 몰아내고 옛 단군 쥬신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합시다. 이번 회의에서 이 대조영을 지원해 주신 흑수부의 예속리기 대수령께 특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젠 이 예속리기도 황제의 신하일 뿐입니다. 부여족에게 내쫓겨 다닌 지 어느새 천년이 흘렀습니다. 우리 쥬신족의 천 년 한을 풀어 이제 이 땅의 주인이 되게 하셨으므로, 이 늙은 몸이 감사의 뜻으로 대조영 고황제를 죽을 때까지 모시겠나이다.”

폭이 100m가 넘는 골안담수의 대폭포는 지금도 경박호 10대 절경중의 으뜸으로 꼽는 곳이다. 대조영은 이 폭포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대수령 회의를 열었다. 대조영은 이제부터 쥬신족 대수령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역사적인 작업에 돌입해야 했다.

쥬신의 제부 수령들은 모두 부여족을 배재하고 순수한 쥬신족 만으로 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알고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한 나라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900년간 가우리를 이끌어 왔던, 옛 왕족인 고씨들과 그 정부에서 일해 왔던 많은 부여인들의 국가 운영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들을 배제하고 작은 집단 밖에 통치해 본 경험이 없는 쥬신의 물가 제부 추장들에게 국가 운영을 맡길 수는 없었다.

지금은 부여족, 쥬신족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쪽 지방을 점령하여 차츰 영구 정착을 꿈꾸는 서족의 군졸과 그 백성들을 하루빨리 몰아내고 다시 가우리의 강토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목이 좁은 물가 제부의 수령들은 새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부여인들의 축출을 고황제에게 강력히 요구하였다.

대조영의 간곡한 설득 작업은 정력적으로 계속되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처음엔 완강하던 제부의 여러 수령들도 점차 고황제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흑수부의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완강해져 가기만 하였으니….

“예속리기 칸, 그래 끝끝내 부여인들과 한 정부에서 일하기를 거부하겠다는 것이오? 정녕 그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소이까?”

“죄송하옵니다. 고황제께 올린 충성의 맹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소이다. 그러나 우리 흑수부는 지난 천 년간 부여인들에게 천대받은 기억을 쉽게 잊을 수 없나이다.
더욱이 우리 조상들의 혼령이 나의 행동을 꾸짖을 것이외다. 고황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천 년 이라는 세월은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러웠소이다.”

“이번에도 민족의 통일 국가를 이룰 수 없게 되는 가…. 내 마음 정말로 슬프오이다.”

“황제 폐하! 후일에라도 사정이 변하여 우리 쥬신족만의 정부를 구성하신다면 저희 흑수부도 기꺼이 협력하겠나이다.”

골안담수의 대수령 회의는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대조영 고황제의 끈질긴 설득에 감동한 물가 제부의 수령들은 모두 합심하여 새 나라 건설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다만 흑수부의 완강한 고집만은 꺾을 수 없었다.
흑수부는 끝내 부여족[高句麗]들과는 동석하지 않겠다며 북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실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러면 대조영이 그토록 애타게 끌어들이려 노력한 흑수부의 통치 영역은 얼마나 될까?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에는 ‘흑수부[黑水靺鞨]의 강역은 남북 2천리, 동서 1천리로서,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고, 서쪽으로는 실위(室韋)까지’라 하였다.

또 신당서의 북적전(北狄傳)에는 ‘실위의 언어는 물가족과 같다’고 하였고, 동이전(東夷傳)에는 ‘달마루, 달후 역시 실위의 별종으로 북부여의 후예’라고 밝혀 이들이 비록 다른 이름으로 중국 사서(史書)에 오르긴 하였으나 다 같은 부여의 후손으로 우리 배달겨레의 중요한 성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흑수부는 이탈하였으나 다른 6부의 물가 제부와 아직도 강력한 저력의 부여계가 대동단결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새 나라는 처음부터 강력한 국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한편, 대조영의 움직임을 불안한 눈길로 주시하던 서국(西國)은 아직도 고가우리의 막강한 잔존 세력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쥬신계의 대동단결로 새 나라 가우리가 다시 일어나 서국의 장래가 크게 흔들리게 되니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상하지 못했던 한 줄기의 서광이 비치니, 북국[흑수부]이 새 가우리의 대씨 조정에 협력을 거부하고 따로 독립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간교한 서국의 위정자들은 옛날 그리도 강력했던 고씨가우리가 내분으로 자멸한 점에 착안하여 이번에도 흑수부를 서국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간책을 쓰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서국의 대사들이 파견되었는데, 멀고도 험난한 길을 찾아온 이들의 선물은 바로 흑수부의 대수령 예속리기 칸에게 내린 발리자사(勃利刺史)라는 벼슬이었다.

만 리 거리의 서국 벼슬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처럼 허세를 좋아하고 현실에 둔한 감각을 가진 서국인들은 종종 이 따위 짓거리를 즐겼던 것이다.
이들의 추한 행동에 분개한 대수령은 서국의 잔꾀에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그 서국 대사 일행을 그 자리에서 내쫓고 말았다.

그러나 이 파렴치한 서국의 대사 일행은 귀국 후 흑수부 회유에 실패한 데 대해 문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흑수부와 서국 간의 동맹에 성공하였다고 거짓 보고를 하고 말았다. 어차피 서국과 흑수부의 멀고 먼 거리 때문에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에 서국 정부는 크게 기뻐하며 이들 특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큰 상을 내렸다.

대조영의 오동성 정부는 마침내 새 나라 가우리 조정을 정하여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나라 이름은 가우리[高麗], 왕조는 대(大)씨가 이끄는 세습제로 한다.
전 왕조(前王朝 )의 귀족인 고(高)씨 성을 우대하고, 장(張), 양(楊), 오(烏), 이(李), 두(竇)씨 성들은 모두 귀족이다.
품계는 9품에 정(正)과 종(從)을 합하여 18품으로 하고, 정책 결정 기구인 정당성(政黨省)과 중대성(中臺省) · 선조성(宣詔省) 등 3성을 두었으며, 선조성 장관은 좌상(左相), 중대성 장관은 우상(右相)으로 하였다.
귀족들에게도 작위가 있으니 개국공(開國公), 후작(后爵)l, 백작(伯爵), 자작(子爵), 남작(男爵) 등으로 나누었다.

대조영은 새 나라 가우리 건국의 참여도에 따라 각각 조정의 벼슬을 제수하였고, 이제 당당히 그 위상에 걸맞는 정부를 갖게 되었다.

→흑수부는 크게 남과 북으로 나뉘는데, 모두 16부가 있다. 끝까지 부여족들과의 화해를 거부하고 새 나라 건설 대열에서 이탈한, 북부에 속한 8부의 위치를, 중국의 기록에 따라 복원해 보았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
댓글남기기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댓글 내용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