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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대쥬신제국사 제4권을 시작하며-작가의 변(辯)

서기 699년 황제에 즉위한 대조영은 국호를 대신국(大辰國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하였는데
훗날 중국측에서 “밝해”로 불러 본국명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신당서(新唐書)의 발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대사리(大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은 말갈(靺鞨)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가우리의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요하(遼河)를 건너 태백산(太白山 ? 백두산)의 동북쪽을 확보하였다. 이어 오루하(吳婁河)를 막아 성벽을 쌓으니 저절로 견고해졌다.…지역은 영주(營州)에서 2000리 되는 곳이다….”

위의 기록에 따라 현장에 도착하여 보니 성은 온데간데없고, 그 곳은 이미 농토로 변해 있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중 한 중국인 학자를 만나 뜻밖에도 1938년에 제작된 성지(城地) 평면도를 얻어 볼 수 있었다.

그 그림은 발해구경성지조서(渤海舊京城地調査 : 발해의 옛 서울에 대한 조사)의 기록이어서 재빨리 옮겨 그렸는데, 대체로 우측 지도와 같다.
옛 도시의 형태를 쉽게 복원하여 그릴 수 있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1938년경까지만 해도 이 유적지는 잘 보존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기록에 의하면 오동성(敖東城 : 지금은 敦化) 주변의 길이는 1120m로 성의 네 구석에 망루 자취가 있고, 성 밖에는 목단강(牧丹江) 물줄기를 끌어들인 해자(垓字)의 자취가 있다.

서기 597년, 중국을 통일한 수 문제(隋文帝)가 천하의 주인 자리를 놓고 가우리[高句麗]에 도전장을 보내 왔다. 이에 분개한 가우리가 강이식(姜以植) 장군을 대장으로 하여 수나라의 북천성(北天城)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시작된 북방의 패권전이 대소 14차에 걸쳐 파상적으로 전개되었음은 이미 전편을 통하여 살펴본 바 있다.

그동안 이 전쟁의 영향으로 수나라가 멸망의 비운을 맞았고, 당나라의 태종(太宗) 역시 가우리 원정군을 진두지휘하다가 눈에 독화살을 맞아 결국 죽음에 이르는 등 전쟁은 화족의 침입을 포위 섬멸하는 가우리의 우세 속에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도 대영웅 연개소문의 뒤를 이은 남생(男生)과 남건(男建) 형제의 이성을 잃은 내분으로 인하여 900년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고씨가우리[高氏句麗]는 끝내 자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승리를 자축하는 당노(唐奴)들의 축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진충(李盡忠)이 이끄는 불쥬신[卞朝鮮]계의 거란족[契丹族]과 걸걸중상의 신쥬신[辰朝鮮]계 그리고 물가쥬신[勿吉 · 靺鞨]족들이 대동단결하여 당노들을 몰아내었다. 무기력한 중국 장수들을 믿을 수 없게 된 당주(唐主) 무측천(武則天) 여왕은 돌궐(突厥)의 묵철 칸[??可汗]과 흥정하여 큰 대가를 치르고 돌궐의 용병을 파견하였으나, 가우리 정부하에서 장군으로 활약했던 물가쥬신족 대조영에게 천문령(天門嶺)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결국 당노들은 어부지리로 얻었던 가우리의 옛 영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대조영은 골안성[忽汗城]에 자리를 잡고 신나라[大震國]를 세워 황제위에 올랐으니, 지금의 만주 길림성 돈화현(吉林省 敦化縣)의 남쪽 오동성이 바로 그곳이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 동안 사가(史家)들이 무심코 지나쳐 왔던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5~6세기의 중국 당은 선비, 흉노, 저, 갈, 강 등 5개의 이민족들이 16개의 나라를 세워 분할 통치하던 소위 5호 16국 시대였다.
그 중 옛 불쥬신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화북(華北)을 통일하고 북위(北魏) 정권을 일으켰는데, 이들이 차츰 한족(漢族)의 풍습을 답습해 가자 선비의 전통을 지키려는 군사들이 북방 요새 6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 6진 중의 하나인 무천진(武川鎭)의 군벌들이 결국 북위를 멸망시키고 서위(西魏)와 북주(北周)의 정권을 독점하였다. 그 군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楊堅 : 수 문제)과 당나라의 건국 영웅 이연(李淵 : 당 고조)의 할아버지 이호(李暠)였다.
이씨 집안의 원래 성씨는 대야(大野)였다. 북위 효문제 때 이씨(李氏)로 고쳤다가 무천진의 수령 우문태(宇文泰)로부터 다시 대야씨를 하사받았다.

따라서 중국인이 자랑하는 수 · 당 제국의 황제들도 결국은 선비족들이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소위 그들이 말하는 오랑캐의 지배를 계속적으로 받아 왔고, 진정한 의미에서 한족들의 자주 통일 정권은 이 때까지도 없었다.

수 양제나 당 태종이 제 궁궐에 있지 않고 말을 타고 백만 대병을 진두지휘하며 가우리와 천하를 놓고 다툰 것도 다 기마 민족의 습관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당 태종이 중국식 호칭인 천자(天子) 보다도 기마 민족의 호칭인 천가한(天可汗 : 칸)으로 불리길 좋아했음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넋 빠진 사대주의자들은 이처럼 허약한 한족(漢族)들을 하늘로 모셔왔고, 또 철없는 백성들에게도 그들의 추태를 따르도록 강요해 왔던 것이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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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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