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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남생반역군의 평양공략진공로-2

밝해 건국이전의 시대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연개소문 사후부터 고구려 멸망까지의 내용을 뒤늦게 앞부분에 끼워넣습니다.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내용은 "연개소문" 가우리와 중국의 북방패권전-3을 참고하십시오.)

신성(信誠)은 오사(烏沙)와 요묘(饒苗) 등을 비밀리에 남생에게 파견하여 7일간의 시간을 허락해 주도록 요청하였고, 남생은 벌써 신성이 자신의 듯을 읽어 냈음을 기쁘게 생각하여 당장 이세적(李世勣)을 타일러 7일간의 휴전에 동의하였다.

얼마 후, 돌연 성 안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불길로 번져 휩싸여 올랐다. 신성의 뜻에 따라 수백 년간 가우리가 소장해 온 나라의 비서들과 부물들이 불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우리의 강토를 그린 단 한 권의 지리서가 당군의 손에 넘어가도 당나라는 10명의 남생(男生) 같은 반역자를 얻은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 모든 귀중한 자료들을 철저히 불태운 것이다.

성을 포위한 당군들은 돌연한 성내의 변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크게 당황하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작전권이 애당초의 약속에 따라 남생에게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고 장엄한 가우리의 도성 펴라성은 마치 지옥 불에라도 떨어진 듯 엄청난 화염에 휩싸여 갔다. 성난 불길은 때마침 불어오는 대륙풍의 도움을 받아 미친 듯이 타올랐다.
90년간 동아의 종주국으로 천하에 군림했던 가우리, 이 지상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가우리, 중화족 수백만 병을 우습게 다루던 가우리, 지금 이 가우리의 자존심이 불타고 있다.
화려했던 궁전이 불타고 있다.
수천 년 동이 역사의 기록을 간직한 국서고가 불타고 있다.
자랑과 영광의 가우리 역사가 불타고 있다.
민족의 영혼 단기고사(檀記古史)도 불에 타고 있고,
가우리사[高句麗史]도 불타고 있다.
가우리의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이로써 동방의 큰 주인은 스스로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한 줌의 재로 변하여 자멸해 버리고 말았다.
한 제국의 종말로서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비통한 감회에 젖은 남생은 너무나도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을 한없이 뉘우치며 울었다.
아아! 어리석고 유치했던 형제간의 세력 다툼은 끝내 적병들을 이 땅으로 끌어들였고, 상상조차 못했던 엉뚱한 비극을 빚어내고 말았다.
아아! 얼마나 많은 가우리의 영웅들이 피 흘리며 지켜온 이 나라가 단 한 사람의 반역 행위로 인하여 어이없이 멸망의 불구덩이 속에 운명의 곡을 울부짖고 있는가?
처음에는 환호하던 적병들조차 이 노제국(老帝國)의 처절한 최후를 엄숙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다.
펴라성[平壤城]의 불꽃은 7일 동안 쉬지 않고 타올라 마침내 온 성을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하게 하였다.

약속된 7일이 되자 신성(信誠)은 보장왕(寶藏王)과 98명의 신하를 대동하고 불타는 왕성의 문을 열고 나와 남생과 이세적에게 항복하였다.

잿더미로 변한 펴라성에 입성한 남생은 약속대로 그 자신이 펴라도 안무대사[平壤道按撫大使]가 되어 가우리의 주권을 당에 넘겨주었다. 남생은 보장왕과 대신들을 데리고 당경(唐京) 장안으로 가서 당 왕에게 항복하니, 당 왕은 남생에게 딸과 집을 주어 장안에 살게 하였다. 결국 펴라로 되돌아와 그 자신의 가우리를 세워 보려 했던 그의 꿈은 일거에 소멸되고, 당의 포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역자의 말로였다.

당 왕은 남생을 대신하여 설인귀(薛仁貴)를 검교안동도호(檢校安東都護)로 삼아 펴라의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서기전 206년, 동명왕(東明王) 고진(高辰)으로 시작된 가우리는 고주무 시절에 대제국으로 발전하여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하다가, 서기 668년, 남생에 의하여 자멸하여 당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874년간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우리가 그리 쉽게 숨을 거두지는 않았다.

서기 670년 4월, 보장왕의 외손 안승(安勝)은 드디어 칼을 들고 일어섰다.
안승(安勝)이 일어나자, 수많은 의병들이 벌떼같이 궐기하여 옛 왕조 가우리를 다시 다물하기 위하여 삽시간에 안승에게 모여들었다. 새로운 의병들의 혈기에 고무된 안승은 검모잠(劍牟岑)을 대장으로 삼고, 야심만만하게 안시성(安市城)을 되찾기 위하여 당군과 결전을 벌였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 승부를 조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화를 자초해, 초전에 참패당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으며, 검모잠 대장도 이 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안승은 후일을 기약하고 다시 힘을 기르기 위하여 일단 가우리를 떠나 남쪽 땅으로 옮겨 갔다. 그 때, 무려 4천 호가 넘는 가우리 사람들이 안승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안승과 그의 망명집단이 모여들자, 실라는 이들을 내세워 당군을 몰아 내려는 정책을 쓰기로 하고, 안승이 금마저(金馬渚 :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에 새 왕국을 세우도록 지원하였다. 그 후, 금마저의 이름을 보덕성(報德城)으로 고치고, 안승을 보덕왕(報德王)에 임명하여 새 나라의 국명을 가우리국[高句麗國]이라 하였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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