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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고구려 자멸(高句麗自滅)-2

밝해 건국이전의 시대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연개소문 사후부터 고구려 멸망까지의 내용을 뒤늦게 앞부분에 끼워넣습니다.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내용은 "연개소문" 가우리와 중국의 북방패권전-3을 참고하십시오.)

남생이 그의 병사들과 함께 남건의 철통 같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 가자, 남건은 크게 당황하였다. 남생군을 식량이 궁핍한 국내성에 몰아넣고 포위망을 폈으므로, 잘 하면 남생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남생이 그를 가두어 놓았던 우리를 넘어 안시성으로 달아 났으니, 야생마를 들판으로 내몬 결과가 아닌가! 만약 남생이 궁지에 몰린 나머지, 변방의 야만인(돌궐족)들을 끌어들이면 큰일이 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남생을 안시성 안에 가두어 놓아 그가 변방족들과 연결 할 수 없도록 해야만 했다. 남건군의 참모장으로 참전한 선도해와 옥세강은 급하게 군을 몰아 안시성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은 당 태종도 격파할 수 없었던 가우리의 철옹성 중의 철옹성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을 이끌어 온 남생은 견고한 안시성에 의지하여 남건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었다.

비록 성 밖의 남건군이 지금은 관군의 깃발을 들고 대치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남생의 지휘를 받던 그의 부하들이었기에 그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생이었다.

남생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친동생 남건과 남산이 관군을 이끌고 자신을 토벌하러 오다니…. 이건 도대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은혜를 많이 입은 선도해와 옥세강 등도 모두 반군 측에 서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저들에게 잡혀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 방법을 쓰든지 나에게 반역하는 자들에게 톡톡히 매운 맛을 보여 주리라.’하고 남생은 엉뚱한 결심을 하고 만다.

이미 안시성까지 쫓겨온 몸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궁지에 몰린 남생은 당나라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벌서 수십년 동안 서로 싸워 온 사이인데, 이제 와서 남생이 원한다고 고분고분 병사를 빌려 줄 리가 있겠는가?
이리하여 남생은 그의 아들 헌성(獻誠)을 인질로 하여 당장 장안으로 보냈다.

그 동안 열두 차례의 대전에서 연속 참패를 당하여 가우리에 대한 공포증에 걸린 당왕 앞에 가우리의 신크말치인 남생이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인질로 보내며 당병의 파병을 요청해 왔으니, 이 같은 행운이 두 번 다시 올 수 있겠는가? 그렇게도 강력했던 가우리가 드디어 스스로 무너져 가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남생은 동생 남건을 진압한 후, 스스로 당나라의 신하국이 되겠다고 약속하였다.

남생에게 약속을 거듭 다짐받은 당 고종은 그 즉시 30만 대군을 남생에게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남생의 요구에 따라 당나라 군병 30만이 즉각 안시성으로 파병되었다. 서기 667년 9월의 일이었다.

“가우리의 위대한 신크말이! 당(唐)의 소장(小將) 이세적(李世勣)이옵니다. 우리는 남생 신크말치의 요청에 따라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고 당병 30만과 함께 신크말치의 휘하로 전임되었나이다. 고종황제께옵서는 신크말치님을 요동 도독(遼東都督)겸 펴라도안무대사[平壤道按撫大使]로 봉하셨나이다. 이것은 황제의 사령장이옵니다.”

“신크말이 휘하에 들어가는 당군의 조직을 보고하겠사옵니다. 우선 이 늙은 소장 이세적이 대총관(大摠官)을 맡고, 부총관에 백안륙(白安陸), 학처준(?處俊), 방동선(龐同善), 설필하력(契苾何力) 등으로, 전투 보병과 기병을 포함하여 30만 병이옵니다.”

“노장군께서 먼 길에 수고 많으셨소이다.
이 곳은 가우리 땅이고, 또 가우리 방위망은 바로 내 손으로 만들어 놓았으므로, 내가 전군을 지휘하여 곧장 펴라성으로 쳐들어 갈 것입니다. 노장군께서는 당병을 이끌고 나의 작전 지시를 세세히 따라 줘야 합니다. 만약 내 말을 어기면, 절대로 펴라성까지 도달할 수 없을 것이오.”

남생, 그에게 내려진 당나라의 벼슬은 요동 도독(遼東都督)겸 펴라도 안무대사[平壤道 按撫大使]이니, 요동 도독이란 당나라를 위하여 요수(遼水)동방의 총독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펴라도 안무대사란 펴라 지방의 이적(夷敵)들의 난을 당나라를 위하여 진압해야 하는 당나라 관군 사령관의 위치이다.

남생은 당군을 빌려 자기 나라의 정적(政敵)들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당나라를 위하여 가우리를 멸망시켜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당장 이세적 이하 30만의 대군이 남생의 지휘를 받게 되었고, 남생은 자신이 세워 놓았던 경비망을 자기 손으로 뚫기 위한 작전 지시를 세세히 내려 전군을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 했다.

“지금까지 당군은 바로 이 지점을 통과하려 했기 때문에 항상 가우리군의 역격을 받아 궤멸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번은 나의 지휘 아래 고성을 크게 우회하여 바로 이 지점에서 도강한 다음, 곧바로 이 성을 포위 공격할 것이다.”

남생이 가우리군이 아닌 당군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생을 가우리의 신크말치로 모시고 있던 가우리의 일선 수비 성주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과연 가우리를 위하여 남생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신크말치의 명령에 복종하고, 성문을 열어 항복을 할 것인가?

마침 요동의 대부분의 성주들은 남건의 반정군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남생의 심복들로 교체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이 남생에게 대항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입장이었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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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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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호 222.100.251.108 2009-04-07

    안녕하셔요? 민족의 자존심 자긍심을 일궈내시는 데 전력하시는 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 인사 아룁니다. 그리고 이곳 글들을 허락없이 저의 카페로 퍼 갑니다. 물론 출처는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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