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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대진국(大震國)-1

서기 699년 황제에 즉위한 대조영은 국호를 대신국(大辰國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하였는데
훗날 중국측에서 “밝해”로 불러 본국명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역사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서기 668년, 즉 가우리가 망해 가는 시점의 복잡했던 주변 상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무렵, 신국(辰國 : 옛 신쥬신) 출신의 장군 대중상(大仲象)은 서아리수[西鴨綠水]를 지키고 있었다. 남생군(男生軍)이 당병(唐兵)을 이끌고 도성 펴라를 치기 위해서는 그 곳을 반드시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생은 자신이 세워 놓은 방위망을 피하여 지름길로 펴라 공략에 성공하였고, 펴라의 방위를 맡았던 여러 방위 군단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였다.

뒤늦게 도성의 위기를 보고받은 대중상(大仲象)은 8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달려갔으나, 도성은 이미 유린되었고, 왕족들은 벌써 장안으로 끌려간 후였다.

도성(都城) 펴라[平壤]는 당병(唐兵) 30만 명이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여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대중상의 8천 명으로는 중과부적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힘을 모으기로 하고, 우선 고향 땅으로 향하였다.

고향 땅으로 되돌아온 대중상(大仲象)은 동모산(東?山 : 지금의 敦化)에 성을 쌓고, 제단을 높이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고, 스스로 황제의 위에 올라 국명을 후가우리[後高句麗]라 하고, 연호를 중광(重光)이라 하여, 가우리의 정통성을 계승함을 천하에 선포하였다.

황제위에 오른 대중상은 만천하의 군병을 새로 모집하고 훈련시켜, 당적(唐敵)들을 우리 강토로부터 내쫓을 것을 맹세했다.

노제국 가우리가 멸망하자, 옛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다물 운동과, 이에 맞서 망해 버린 가우리의 왕을 다시 내세워 다물 운동의 불을 진압하려는 당 정부의 고등 술책이 뒤엉켜 대단히 복잡한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되어 갔다.

우선 당은 가우리의 옛 서울 펴라[平壤]를 근거지로 하여 펴라도독부[平壤都督府)를 두고, 설인귀(薛仁貴)를 총독으로 하여 통치하려 하였다.

한편, 당 정부는 가우리의 다물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보장왕을 다시 조선 왕(朝鮮王)으로 봉하여 보냈는데, 보장왕은 신성을 서울로 하였으므로 가우리를 통치하는 제2의 왕이었다.

그러나 대중상(大仲象)이 홀한성(忽汗城)을 서울로 하여 후가우리를 선포하고 황제위에 올랐으므로, 옛 가우리 땅에는 3인의 왕이 존재하는 셈이 되었다.
그런데 고안승(高安勝)이 실라의 지지를 받아 금마저(金馬渚) 땅에 또 하나의 후가우리 망명 정부를 세우고 보덕왕위에 올랐으니, 이로써 옛 가우리의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왕은 4명이나 되었다.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가우리 옛 왕조의 복권을 위하여 투쟁하던 가우리의 용사들은 장안으로 끌려갔던 보장왕이 돌연 귀국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보장왕 앞에 항복을 하고, 반당(反唐) 투쟁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바보 같은 우왕(愚王) 보장왕은 당 정부의 유치한 잔꾀를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가우리의 충정어린 애국 투사들을 설득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보장왕의 이용 가치가 점차 소멸되자, 당 정부는 보장왕을 다시 장안으로 소환하였다. 그 후 또다시 가우리의 다물 운동이 전개되자, 크게 당황한 당 정부는 보장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충성국 왕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보원은 결국 반당군(反唐軍)에 합류하였고, 서기 699년, 당이 파견한 태자 보덕 역시 당의 괴뢰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부흥군(復興軍)에 합류하고 말았다.

따라서, 북쪽에는 보원군(寶元軍)이 있고, 동쪽에는 대중상군(大仲象軍)이 있으며, 중부에는 보덕군(報德軍), 남부에는 안승군(安勝軍)이 있어, 당군은 더 이상 동진하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가우리의 다물군들은 저마다 가우리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국인(國人)들은 분열되어 힘을 하나로 모은 당군들에게 각개 격파당해 서서히 소멸되고 말았다.

다만 대중상 하나만이 끝까지 살아 남았는데, 그것은 구려(句麗)계와 부여(扶餘)계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영도자들을 따라 분산하였음에 비하여, 대중상의 후가우리는 모두가 신쥬신[辰朝鮮]계의 단일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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