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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대진국(大震國)-2

서기 699년 황제에 즉위한 대조영은 국호를 대신국(大辰國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하였는데
훗날 중국측에서 “밝해”로 불러 본국명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서기 696년 1월, 후가우리[後高句麗]의 수도인 홀한성(忽汗城)의 궁전에서는 그 동안 병을 얻어 기력이 쇠잔한 황제 대중상이 태자 대조영(大祚榮)을 앉혀 놓고, 앞으로 황제위에 올라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보장왕이 펴라성을 내어 주기 전에 가우리의 귀중한 국서들을 불태워 버렸으므로, 그 중에 반드시 보호, 보관해야 할 나라의 역사서들마저 손실되어 역사서를 다시 찾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우리 배달[밝달] 민족의 성조이신 밝달님[檀君]께선 그 옛날 치우 천황이 지배하셨던 모든 강역을 다시 통일하려 애쓰셨다. 결국 우리 동이 민족의 영토가 너무 광활하여 큰 배달님님께서 바로 우리들의 신쥬신[辰朝鮮]을 직접 다스리시고, 말쥬신으로 하여금 남부 지역을 그리고 서방의 불쥬신[卞朝鮮]으로 하여금 중화족(中華族)을 다스리도록 하였던 것이다. 사실 태초부터 중화족은 우리 동이(東夷)배달민족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하여 눈물겨운 투쟁을 해 왔다.”

“결국 중화족은 개미같이 많은 사람들을 갖고서도 우리 동이족의 기병전을 당해내지 못했군요.”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농민이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련스럽게 아무 쓸모없는 만리장성도 쌓아 보았고, 또 그들의 힘이 강성해졌을 때에는 무려 20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우리를 침략도 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영명하신 선조들께서는 이 땅에 발을 들여 놓은 중화족을 결코 살려서 돌려 보내지 않으셨다.

우리 배달 민족이 힘을 합쳤을 때에는 중화족은 이 땅에 발도 못 들여 놓았고, 오히려 우리의 발 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 서로 질투하고 싸우면, 반드시 적들의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 신쥬신계의 사람들은 구려계의 고(高)씨들이 나라를 통치할 때, 반발하지 않고 그들에게 협력하여 가우리를
천하 제일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하지 않았는가?

만약 신크말치 남생이 당노(唐奴)들을 끌어들여 제 나라의 사직을 끊지만 않았다면, 이 천하의 그 누가 감히 가우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너는 앞으로 역적 남생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서 새로운 이 나라를 강력하게 끌고 가야 한다.

이 나라는 태초에 우리 신쥬신[辰朝鮮]의 단군 성조께서 다스렸고, 그 다음은 부여의 해씨들이, 그 다음은 가우리의 고(高)씨들이 다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고씨들의 세상이 끝났고, 고국 강토는 당노들에게 짓밟히고 있으므로, 우리 대(大)씨들이 일어나 주인 잃고 방황하는 우리 민족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속해 있는 옛 신쥬신의 각 족파를 모두 단합시켜 하나로 힘을 모아 당노들을 몰아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다함으로써, 힘을 잃은 구려족이나 부여족 그리고 불쥬신계인 거란족이 우리의 뒤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족파끼리 다투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백성들은 어느 족파에 소속되었든지 다 동등하게 취급하여야 한다.”

“아버님의 교훈 가슴 깊이 새겨 받들겠나이다.
제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당노들은 지금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공포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의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당의 미개발 지구로 강제 이민을 시키고 있다고 하옵니다.
백성 없이 나라가 없듯이 백성의 수효는 곧 그 나라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옵니까?

결국 우리 배달의 백성들을 자기들의 당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우리 배달족의 힘의 약화를 노리고, 동시에 자국의 국력 배양을 위하는 것인즉, 무슨 희생을 치르든지 강제 이주만은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당노들 중에서도 영주 도독 조문홰라는 자가 유별나게 악질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 자는 영주 내의 우리 백성들을 무차별로 잡아 집단으로 가두어 놓았다가, 다음 수송선이 도착하면 한꺼번에 수천 명씩 마치 짐짝 실어 나르듯 백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그 지방 백성들의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 하옵니다.

듣기로는 이 엄청난 이민 작전으로 얼마 후면 영주 일대의 우리 백성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고, 땅이 공지가 되면 이번에는 당노(唐奴)들이 제 놈들의 백성들을 데려다 살게 할 것이므로, 영원히 제 놈들의 땅이라고 주장할 것이옵니다. 일이 상당히 심각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으므로 한시라도 지체하며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사옵니다.

만약 황제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내일이라도 병을 이끌고 달려가서 조문홰를 찢어 죽이고, 강제 이민의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의 백성들을 살려 내고 싶사옵니다.
황제께선 이번 출정을 허락하여 주소서.”

“네 말이 구구절절 옳다.
과연 너는 앞으로 훌륭한 제황(帝皇)감이로다.
좋다! 즉시 떠나거라! 이번 출정에는 걸사비우(乞四比羽) 장군과 함께 가라!

그리고 내가 옛 불쥬신[卞朝鮮]계의 거란(契丹) 왕 중에 이진충(李盡忠) 장군과는 옛날부터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내가 소개장을 써줄 테니, 그것을 이진충 장군에게 전달하고, 그들과 힘을 합하여 같이 행동하라. 이처럼 우리 민족은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각 족파들이 힘을 합하여 외적들과 싸웠느니라. 만약 남쪽의 실라 소인배들이 당노와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면, 그들도 이런 전투에 참여할 수 있으련만….
생각만 하여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도다.”

서기 696년 3월, 대중상 황제의 출정 명령을 받은 가우리의 태자 대조영은 걸사비우(乞四比羽)를 부장(副將)으로 삼아, 당노(唐奴)들에게 강제로 구류당하며 이민선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호기 찬 출발을 하였다.

대조영(大祚榮)은 영주 공격에 앞서, 아버지인 대중상 황제의 소개장을 들고 거란(契丹)의 송막도독으로 있는 이진충(李盡忠)을 만나러 갔다.

불쥬신의 후예로 민족의 비극에 울분하고 있던 이진충은 대조영의 뜻하지 않은 출현을 크게 환영하며 맞아들여 난국의 타개책을 의논하였다.

대조영 태자와 거란의 이진충은 완전히 의기가 투합하여 이 땅의 당노들을 몰아내기로 합의하고, 서로의 작전권과 작전 지역을 나누어 정하니, 이진충의 거란군이 서부군(西部軍)이 되고, 대조영군이 동부군(東部軍)이 되었다.

서기 696년 5월, 이진충(李盡忠)은 거란(契丹)의 독립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제단을 쌓아 하늘에 고하여 천자(天子)의 의식을 치르고 나서 스스로 커칸[可汗 : 가한]에 오르니, 모든 불쥬신계의 거란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심지어는 거란 땅에 들어와 살고 있던 해족들도 다 동참하였다.

이리하여 대조영의 동부군과 이진충의 서부 군단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영주 도독부(榮州都督府)를 급습, 기고만장하던 당적(唐敵)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그 두목 조문홰를 잡아 갈가리 찢어 죽여 그동안 강제로 당지(唐地)로 끌려간 백성들의 한을 풀었다.

성내에는 당선(唐船)을 타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던 쥬신[朝鮮]의 백성들이 무려 5만 명 이상이 되었다. 그 동안 이미 당나라로 강제 이주당한 우리 백성들의 수는 10만 가호도 넘었다.

*이 때, 이주민들은 주로 항구가 가까운 산둥 지구로 옮겨졌는데, 이들 중 가우리의 유민인 이정기가 서기 765년, 산둥 반도에 독립 왕국을 세웠으니, 치주, 청주, 제주, 해주, 등주, 내주, 기주, 밀주, 덕주, 체주의 10개 주의 넓은 영토였다. 서기 781년, 이정기가 죽자, 그의 아들 이납이 왕위에 올라 국호를 제(濟)라 정하고, 서기 819년까지 번성하였다.

대조영과 이진충은 서로의 합의에 따라 즉각 당군에 대한 반격 작전을 시작하였다. 이진충은 잘 훈련된 거란의 기병들을 이끌고 대방 고지로부터 서부 전선을 책임지고 가우리의 옛 영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무서운 기세로 진격을 시작하니,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거란의 소수 민족인 해족들마저 적극적으로 대당전에 뛰어들어 이진충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엄청난 속도로 증강되어 갔다.

한편, 동부 전선의 탈환을 책임진 대조영의 동부군도 그동안 갈고 닦은 무예를 자랑하며 펴라 도독부[平壤都督府]를 향하여 거침없는 진격을 감행하였다.

조국을 되찾고 당적을 몰아낸다는 신념으로 처녀 출전한 대조영은 타고난 장군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아버지 대중상이 지키던 서압록을 통과하고, 질풍 같은 진격으로 펴라의 목을 조여 들어갔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이진충의 서부군은 5월 말에 이미 만주[베이징의 동북쪽에 있는 밀운]에 도달했고, 8월에는 황장곡에서 당의 대군을 맞아 일대 격전을 벌여 당군을 궤멸시키는데 성공하니, 장안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대조영의 동부군도 옛 외백제의 땅을 회복하고, 펴라 도독부마저 포위하니, 당군은 적진 깊숙이 고립된 형편이 되어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동 · 서부군의 놀라운 진격에 크게 당황한 당은 28명의 장군들을 일시에 출동시켜 유관[지금의 허베이성 정유]에 안무대사영[토멸군 사령부]을 설치하였다.

  • ※ 발해는 태양민족임을 뜻하는 “밝은 해”를 줄인 “밝해”의 소리말을 한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 ※ 대신국의 “신(辰)”자는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으로 발음하여 대진국으로 읽는데, 크다는 의미를 두 번 강조하는 “대신국”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신국의 국호는 이외에도 “세상의 중심 땅“을 의미하는 가우리[句麗]라는 국명을 계속 쓰기도 했는데 대쥬신제국사에는 대가우리(=대씨가우리 大氏高句麗)로 표현되어 있다.
  • ※ 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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