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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단군조선을 출간하며...

최근에는 ‘민족(民族)’이란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세계화(世界化)’를 들고 나와 ‘지구촌(地球村)’을 떠들며, 우리의 전통이나 역사는 아예 무시하면서 외국의 종교와 문화만을 취하고 따르려는 버릇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실증사관을 강조하며 명백히 잘못 출발한 식민사관(植民史觀)에 깊이 오염되어 한국의 고대사를 모조리 신화(神話)로 몰아 부정하고, 우리의 시조(始祖)를 부정하며 우리 역사의 출발시기를 가능한 한 낮추어 잡아 폄하해야만 지식층에 이르는 줄 안다는 것이다.

정신세계에서 한번 얻은 선입견(先入見)은 그 강도(强度)가 육체적인 것에 비하여 훨씬 오래간다. 선입견이 지배하는 학자나 종교인은 지조가 있다는 평을 들을지는 몰라도, 이 선입견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지식의 결과로 새롭게 발견되는 역사의 단서를 무조건 무시하게 하는 옹고집의 병폐를 낳기도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한때는 우리 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을 부끄럽게 여길만큼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 조국의 국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소위 선진국의 대명사인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생활 40년 만에 깨달은 것은, 내가 비록 평생을 미국에서 산다 해도 미국은 여전히 남의 나라요 남의 문명일 뿐이고, 나의 검은 눈이 결코 파랗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소중한 내 민족의 국적을 버리고 족보도 없는 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 속에 나를 매장시킨 것일까.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21세기의 신한국을 완성함에 있어서, 첫째는 구 일본에 충성하던 친일파의 잔적들을 숙청하여 민족의 정기를 회복시키는 일이고, 둘째는 민족정신을 병들게 하는 친일(親日) 식민사관(植民史觀) 학자들과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찌들어 스스로 열등의식에 빠진 사대사관 유학자(事大史觀 儒學者)들을 한국 사학계에서 영원히 축출하는 일이다. 이들은 현재(現在)에도 저들끼리 서로 협력 단결하여 한번 점령한 학교의 교단을 철저히 수호하고, 그들의 못된 정신을 실증사학이라는 교묘한 위장술로 내세워 민족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사를 논함에 있어서 중국을 중심으로 모든 역학관계를 설명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중국 중심의 사관을 견지하는 한 우리는 중국의 변방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역사는 중국사 속에 흡수되어 소멸될 수밖에 없다.

소위 실증사학자를 자칭하는 이들은 겉으로는 문헌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우리의 문헌은 버리고 중국의 문헌은 취하여 되도록이면 고조선의 출발시점을 낮추어 잡고, 우리의 강역 또한 한반도 서북지역과 현재의 요동지역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중국과 일본이 파놓은 함정에 깊숙이 걸려들어 오늘날 우리 선조들의 고향땅인 만주대륙을 중국에 스스로 갖다 바치는 꼴이 되고 있다.
본서가 주장하고 있는 민족사관(民族史觀)이란 어떠한 특정 정치체계를 선호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를 같은 혈연의식(血緣意識)을 공유한 민족(民族)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곧 역사의 주체가 중국 중심이 아니고, 내가 중심이 되어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찾을 수 있는 사관(史觀)인 것이다.

독자들은 사관(史觀)에 따라 같은 사건을 보는 견해의 차이가, 마치 역사라는 사건을 다루는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처럼 서로 간에 얼마나 크게 벌어질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며, 이로써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사건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역사서들을 세분하여 보면 대강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사관(史觀)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① 유가사서(儒家史書) :
대표적인 사서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들 수 있는데 이 책은 철저한 중국 중심[中華中心]으로 일관하면서 존화사대(尊華事大)에 기초한 기록으로 중국을 받들고 가능한 한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② 불가사서(佛家史書) :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는데 불교중심(佛敎中心)으로 불교 포교(布敎)에 목적을 둔다.

③ 선가사서(仙家史書) :
한단고기[桓檀古記]를 중심으로 수십 종류의 사서(史書)들이 있는데 역사(歷史)를 우리 민족중심(民族中心)의 관점으로 본 진정한 우리의 역사서들이다.

④ 실증사서(實證史書) :
현재 한국의 강단을 지배하는 사관으로 소위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잔재(殘在)이다. 이들은 서교(西敎)의 유일신(唯一神) 신봉자들이 단군(檀君)의 역사를 신화(神話)로 몰아가자 이들 종교 세력과 야합(野合)하여 선가사서(仙家史書)들을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면 위의 기록에 보이는 ‘선가사서(仙家史書)’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세조(世祖), 예종(睿宗), 성종(成宗) 등 여러 조선(후조선)의 왕들이 어명으로 8도 관찰사들에게 압수해 들이라고 명령한 도서 목록들을 살펴보면.....*
단군기(檀君記), 선사(先史),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삼성밀기(三聖密記), 표훈천사(表訓天詞), 도증기(道證記), 지공기(誌公記), 대변설(大辨說), 조대기(朝代記), 주남일토기(周南逸土記), 동천록(動天錄) 등 100여종에 달한다.

그중 저작자가 뚜렷이 밝혀진 것들만 하여도,
삼성기상 (三聖紀上) : 안함로(安含老)
삼성기하 (三聖紀下) : 원동중(元董仲)
단군세기 (檀君世紀) : 행촌(杏村) 이암(李핷)
북부여기 (北夫餘記) : 범장(范樟)-(上,下卷)
태백일사 (太伯逸史) : 일십당주인(一十堂主人) 이맥(李陌)
규원사화 (揆園史話) : 북애노인(北崖老人)
단기고사 (檀奇古史) : 대야발(大野勃)-일명 檀箕古史
진역유기 (震域遺記) : 이명(李茗)
부도지 (符都誌) : 도원(桃園) 박제상(朴堤上) 등이 있다.

이상의 도서 목록들만 간단히 살펴보아도 우리에게 결코 역사의 기록이 없었거나 부족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만 따르던 못난 존화사상(尊華思想)의 유학자(儒學者)들과 한국의 영구 점령을 목표로 악의적으로 꾸며진 식민사관(植民史觀)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넋 빠진 강단사학자(講壇史學者)들의 한심한 저항의 단서가 있을 뿐이다.

유태민족이 2천년 유랑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토라’와 ‘탈무드’라는 훌륭한 국민정신의 교범을 중심으로 민족의 단일성과 응집력을 견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기록들을 모두 버려둔 채 그저 무기력하게 강단사학자들의 장단에 맞서 저항하지 못한다면 우리민족의 장래는 또다시 망국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두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는가.

오늘날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작전명으로 우리 선조들의 성지(聖地)인 만주대륙을 불시에 침략해온 중국의 야만성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제 민족의 족보와 역사를 애써 무시하고 부정해왔던 잘못을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한국 역사에 대한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너무나 당황하고 흥분된 나머지 혹시 이 사건이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닐까하며 설마 중국이 그토록 터무니없는 일을 황당하게 꾸밀 리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저 일시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1986년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에 따라 ‘중국 장학연구중심(中國 藏學硏究中心)’의 산하 연구원 130여명을 동원하여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분으로 왜곡 흡수하는 서남공정(西南工程)을 시작하여 티베트(西藏)의 역사를 지워버리는데 성공하고 있다.

티베트는 7세기부터 역사의 전면에 나서며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당(唐)나라 시절에는 당의 수도였던 장안(長安)까지 그 세력을 넓혀 중원의 패자로 군림했던 막강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서남공정을 막지 못한 티베트의 후손들은 그들의 영광스러웠던 선조들의 역사를 잊고 중국의 변방 정부사 정도로 인식하며 중국의 역사 속으로 흡수당하고 말았다. 역사를 잃어버린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초라한 이름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그나마도 티베트의 영구적 점령을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밀려오는 중국의 정책적인 이민자들에게 노른자위 옥토를 거의 다 빼앗기고 차츰 그들의 조상 땅에서 조차도 더욱 더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1950년 마오쩌둥(毛澤東)의 무력 침공으로 달라이라마는 국외로 망명하고 무방비로 중국에 정복당한 티베트는 1986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서남공정에 의하여 완전히 중국의 일부로 흡수됨으로서 그들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던 것이다.

서남공정의 완벽한 성공에 자신을 얻은 중국은 이번에는 그들을 오랫동안 위협해왔던 북방 국경 밖 외몽골의 점령상황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작전에 돌입하고, 1994년에 “외몽골 독립의 내막”이라는 조작된 서적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이에 놀란 몽골정부가 중국에 강력히 항의하며 외교문제로 비화시키자 중국은 “서적출판은 학술활동일 뿐이고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일을 서둘러 진화하는 듯 했다. 그러나 중국의 기만적인 행동은 그 이듬해인 1995년에 “몽골의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는 엉터리 역사책 “몽골국통사” 3권을 출판하여 보급했고 이후 인류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징기스칸마저 중국 소수민족의 한사람으로 둔갑시키는 가증스러운 추태를 부렸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몽골정부의 항의를 마치 늑대에 물려 죽어가는 무력한 양의 절규 정도로 무시하며,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전광석화 같이 작전을 완료해 버렸다. 이제는 영광스러웠던 몽골의 역사마저도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정리되었고, 세계적인 대영웅 징기스칸은 몽골로부터 중국인으로 강제 귀화당하는 비극으로 겪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불가능하게만 보았던 위그루와 티베트 그리고 북방의 강자이던 외몽골의 역사마저 집어삼키자 이제 만주대륙 문제만 남게 되었다. 이는 현재 점령중인 영토를 영원히 중국의 것으로 고착시키고, 아울러 만주대륙에 존재했던 우리 대한민족의 역사를 빼앗아 중국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기록하여 둔 그들 자신의 역사서를 통하여 수나라를 멸망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고구려의 막강세력에 숨죽여야 했던 지난날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만주의 힘에 굴복하여 260년간의 긴 세월을 노예생활(청나라 시대)로 연명해온 참담한 역사의 교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동안 역사의 왜곡 공작을 진행해 온 중국은 외몽골 작전을 완료하자마자 즉각 칼끝을 동북으로 돌려 그들의 숙원사업인 만주역사의 개조에 본격적으로 집중한다. 만주에 대한 역사 침탈은 그간 지지부진해 온 점이 있었는데, 1996년에 이르러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승인과 비준 아래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의 출정 깃발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 황당한 역사 재창조(再創造) 작업은 국무원 산하의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관하였는데, 그 목적은 학술활동으로 표면을 위장한 채 실제로는 통일한국(統一韓國) 이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경충돌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사전전략으로 미리부터 한국과 만주의 역사적인 연결고리를 철저히 끊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마치 돌발 상황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공작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문화혁명(文化革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중국의 4인방 사건과 이들의 선동에 의해 행동했던 정신 박약한 어린 홍위병들의 광란적 난동을 겨우 수습하고 당시에 핍박당했다가 겨우 복권된 공산당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강력한 중국건설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갈가리 찢어진 중국의 민심을 수습하고 전 국민을 하나로 결집(結集)시키는 방안을 찾아 고민하던 중 다민족 대국주의로 방향을 잡는다. 이를 위하여 “중국의 분열은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현재의 중국 세력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민족의 영토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역사까지도 중국의 것으로 편입시켜 모든 민족을 하나의 중화정신(中華情神)으로 단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981년 ‘중국 민족사 학술 좌담회’라는 어용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탄지샹(潭其헦-上海復旦大學)으로 하여금 “역사적으로 중국의 판도 안에 있던 모든 국가나 민족은 중국에 귀속된다.”라는 궤변을 토하게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간계(奸計)였음은 당시 중국의 실정이 당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더구나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을 단지 학술좌담회라는 형식으로 발표할 수 있는 가능성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서 알 수 있다.

어쨌든 탄지샹은 중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55개 소수민족의 중국화 정책”의 이론적 뒷받침을 조작해 내었고 이를 다시 ‘쑨신지(孫進己-沈陽東亞硏究中心)’와 ‘겅테화(耿鐵華-通化師範大學)’가 동조하고 나섬으로서 공작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쑨신지’의 주장을 보면 “고구려는 예맥족(濊貊族)이고 백제와 신라는 한족(韓族)으로 서로 다른 종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서울의 강남족은 강북 서울족과 다른 종족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소위 학자의 탈을 쓴 사람들이 고구려의 추무대왕(고주몽)과 그의 아들인 비류대왕과 온조왕의 관계를 몰랐다는 것인가?

이번에는 ‘겅테화’의 주장을 보자. 그는 “고구려가 후기에 평양으로 서울을 옮기면서 한반도의 역사와 밀접해졌지만 고구려의 문화는 동북의 용(龍)문화에 속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통화사범대’의 ‘고구려 연구소’ 부소장인 그가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몰라서 이같이 유치한 주장을 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생계를 위하여 몸담고 있는 공작소(직장)가 국가적 유관부서의 행동지침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가엾은 현실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화살의 초점을 이들 무력한 학자들로부터 이들을 앞세워 치밀한 역사왜곡의 공작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정책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런 무모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중국이 절대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없는 4개의 이민족 국가인 달라이라마의 ‘티베트국’, 징기스칸의 ‘몽골국’, 서역 회교국가인 신강의 ‘위구르국’, 신라(新羅) 황실의 후손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대청제국(大淸帝國)’ 등이 있고 또 이들의 후계 국가가 현재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이민족 국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실질적으로 중국을 위협하고 지배해왔던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이들 변방세력을 모조리 중국의 역사 속에 포함시켜 거대한 중화세력을 형성, 천하를 도모한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고 이들의 역사왜곡 공작을 분산하여 진행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탄지샹’과 ‘쑨신지’ 그리고 ‘겅테화’ 등이 진행하던 만주대륙의 역사왜곡 공작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이미 신강 위구르 공략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마다정(馬大正-中國社會科學院 邊疆史地硏究中心)’을 동북공정의 책임자(1995년)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동북공정(東北工程) 전문가위원회 주임에 오른 마다정은 리성(李聲)을 부주임으로 임명하고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東北民族疆域硏究中心)의 류허우성(劉厚生), 리더산(李德山), 쑨치린(孫啓林), 양자오취안(楊昭全-吉林省社會科學院) 등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후진타오의 적극적 지원 아래 최종목표인 고조선사의 중국화에 앞서 먼저 고구려사를 왜곡하여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엄청난 공작에 돌입한 것이다.

본 저자가 불필요할 정도로 실명을 들면서 동북공정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깊은 잠 속에서 중국의 엄청난 역사왜곡 공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한국민을 깨우기 위함이다.

동북공정 공작은 1990년 자금성의 모든 만주(滿洲)글 간판을 한문(漢文)자로 바꾸는 작업으로부터 벌써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고, 이점은 본 필자가 그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거듭 주장하며 한국인들의 경각심에 호소하여 왔던 일임을 여러분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이와 같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은 한때 그들의 종주세력이면서 세계 최대의 다민족 연합국가였던 소비에트(舊蘇聯)가 13개의 민족중심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한 후 한 순간에 힘을 잃고 몰락하는 과정을 보고 이에 큰 충격을 받아, 현재 중국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강제 점령당하고 있는 만주제국(滿洲帝國, MANCHU-LIA)을 비롯하여 내몽골국(內蒙古國), 신강 위구르국(新疆UYGUR國), 티베트국(TIBET), 타이완국(臺灣國) 등의 독립운동을 영구히 저지할 목적으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선린 이웃을 가장한 중국은 한반도의 남북 대결구도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북측에는 혈맹으로 처신하고 남측에는 북측의 무모한 도발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임을 자처하며 남북한의 손발을 묶어놓고 등 뒤에서는 우리의 찬란했던 조상들의 역사를 막무가내로 집어삼키는 몰염치한 역사 침략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적 실체를 바로 보기 바란다.

고구려보다도 아득히 먼 시절부터 만주대륙에서 찬란한 문명의 대제국을 일으켰던 단군조선의 실체를 신화(神話)가 아닌 역사로 정독(精讀)하여 주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친일사관론자들의 함정에 빠져 오염되었던 선입견을 깨끗이 잊고 다시 한번 공부하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읽으면 반드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사실 역사책에는 숨가쁜 극적요소가 없어 자칫 읽기가 지루하여 완독하기가 쉽지 않음을 본인이 먼저 알고 있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자는 지난 수년 동안 주야도 없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당시의 실제 상황을 재현하여 화폭에 담아내는데 온갖 정열을 다 쏟아 부었다. 그 결과 김산호의 대한민족통사 제1권인 ‘치우천황’에 이어 제2권으로 귀중한 우리 한민족의 유일한 시조로 인정받고 있는 단군성조(檀君聖祖)의 일생과 그의 역사적인 업적들 그리고 47대에 이르는 단군들의 영정을 함께 묶어 ‘단군조선(檀君朝鮮)’이란 제호로 이제 감동적인 출간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많은 양의 유화그림들이 당시의 실제 상황들을 재구성하여 그려져 있으므로 역사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반드시 정독으로 완독하여 단군성조의 거룩한 업적을 기억 속에 새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개천 5,901년 갑신년 9월
Sanho Kim (Signature)
卍夢 金珊瑚 拜上

PS:
2004년 10월 27일 유네스코 사무총장보 무니르 부쉬나키와 국제기념물유적회의(ICOMOS) 회장 마이클 펫펫 그리고 국제 문화재 전문가 27명은 ‘고구려 고분 보존과 관리’ 심포지엄에서 고구려 고분은 한국민족(Korean People)의 유산이라고 확인하고, 그 유물의 보호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이 권고안 채택에는 UNESCO와 ICOMOS 관계자를 비롯해 중국 문화유산연구소의 리홍쑹, 돈황 아카데미 부소장 리쭈이쑹, 일본 쇼와여대의 가쓰히꼬 마스다 교수 그리고 한국 울산대의 전호태 교수 등 20명이 참가하였다.

요서율(妖書律)
조선 초기, 단군 및 그 이전의 우리 역사와 사상이 기록된 많은 책을 감히 중국보다 앞섰다느니 요사스런 책이라느니 하며 거둬서 불태운 금서조치를 요서율이라고도 부른다.
- 태종 11년(1411), 세조 3년(1547), 성종.연산군 시대 등(조선 초기에는 세종 때만 없음)
- 금서목록 : 「고조선 비사」, 「대변설」(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역사서), 「조대기」(고조선 역대 단군들의 역사), 「지공기」(고조선의 정신문화원장 격인 신지들이 남긴 기록), 「표훈천사」(고조선의 사상 이념적인 역사를 기록한 책), 「삼성밀기」(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담은 문헌), 「도징기」, 「통천록」(전통적 심신수련볍과 그 역사를 서술한 서적), 안함로, 원동중 「삼성기」 등.
- 그외 불교, 도교, 양명학까지 탄압, 관련 서적 수색, 분서했다고 함.
이는 19종 대부분이 단군 및 그 이전부터의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뿌리깊은 사상에 대한 기록이므로, 역성혁명을 한 조선에서 중국에 잘 보이려고 즉 중국에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고 취한 조치로 보인다.

쑨신지(孫進己)

겅테화(耿鐵華)

마다정(馬大正)
중국의 동북공정 공작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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