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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1장 단군역사개관(檀君歷史槪觀)-고대사개관(古代史槪觀)

우리 한민족의 생존적, 역사적 벨트(belt)는 바이칼 호수로부터 몽골초원
그리고 만주대룍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까지 연결된다.

비파형 동검

비파형 단검의 분포범위는 보면 오늘날의 난하 중류, 대능하, 노합하 상류 일대 등에 집중되어 있다. 조양현 십이대영자, 건평현 대랍한구 등지에서는 이미 중기 비파형 단검이 다량 출토되었고, 객좌현 남동구 고산자 등지에서는 1981년까지 모두 150여 자루의 후기형 단검들이 나왔다. 단군조선의 중요한 문화흔적인 이 비파형 단검들은 이후에도 출토의 범위를 광활한 대지의 사방곳곳으로 넓혀가고 있으며, 그 제작연대도 계속 오르고 있어 우리가 한때 불가사의하게만 보아왔던 단군의 역사적 실체에 점점 더 접근해 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시의 청동기 제품에 대하여 조잡한 원시적 산물로 보는 선입견이 있다. 마침 북한의 ‘조선전사’ 제 2권에 정가와자 6512호 무덤에서 발굴된 비파형 단검과 청동 화살촉들을 분석한 결과를 기술해 놓았는데, 그 결과를 보면 비파형 단검(琵琶形短劍)의 경우 합금비율이 동-72.43%, 아연-6.84%, 주석-13.52%였고 화살촉은 각기 동-66.39%, 아연-11.62%, 주석-9.93%였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경도와 탄성을 다같이 중시하는 단검의 경우 주석의 비율을 높게 하고, 대량 소모품인 화살촉은 주석의 비율을 낮게 하여 구하기 힘든 주석을 아껴 썼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에도 벌써 각 제품의 용도에 알맞게 합금을 하는 수준의 금속제련 기술이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청동기라고 우습게보던 제품들이 동(구리)에 주석과 아연을 주요 원소로 선택하여 3원소 합금을 이루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아연은 무른 성질이 있어 제품의 주조성을 높이기 위하여 첨가하는 것인데, 이처럼 금속합금에 있어서 아연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오랜 경험과 축적된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우리나라의 청동기는 아연을 넣은 청동이며 후기에 오면 아연과 납을 모두 넣은 청동기도 등장하게 된다. 중국의 경우는 납-청동이며 아연-청동은 우리 고유의 문화로 서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즉 3원소 합금계를 능숙하게 다루었던 우리 선조들의 청동야금술은 당시의 다른 문명권에 비하여 월등히 선진적이었던 것이다.

아연의 경우는 420℃가 녹는점이고 950℃에서 증발을 하는데 구리의 녹는 온도가 1083℃로 구리와 합금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금속이다. 주석과 구리의 합금인 청동이 경도가 높은 대신 탄성이 거의 없어 강한 충격에 깨져버리거나 주조나 단조가 잘 되지 않아 실용성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법에는 납을 첨가하는 것과 아연을 첨가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중 납을 첨가하는 경우는 아연에 비해 탄성과 경도가 모두 나쁜 대신 제조가 쉽게 된다.
참고로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는 중동 지방의 유물중 B.C 31세기의 이란제 동제품은 동과 비소의 합금이며 주석청동 기술은 B.C 24세기에 비로서 개발되었고, 시리아의 동제품도 동, 비소, 니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아연-청동 문화는 알타이어계의 문화권과 관계되며 천산에서 천해,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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