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6장 단군의 천하통일

알타이 부여족의 강력한 도전을 물리치고 국을 배달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키워낸 단군의 위업

단군의 천하통일(檀君의 天下統一)-1

감족[熊族]의 결속을 하나로 다지기 위하여 반군의 주축격인 흑수부를 강력하게 응징하고, 귀로에는 비서갑의 아리따운 하백녀를 신부로 맞아 데리고 개선하는 부왕단군의 원정군 일행은 도성(都城) 백성들의 진심어린 환영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감족의 부왕 단군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더욱이 부왕단군의 외척부족(外戚部族)으로 신분이 급상승하게 된 비서갑부족이 단군의 강력한 동맹부(同盟部)로 떠오르며 맹종(盲從)을 선언하니 이제 단군은 그의 직속 어림군과 더불어 비서갑부를 그의 수족같이 믿고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감족내의 세력 균형에 엄청난 지각변동(地殼變動)을 예고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일부 부족들로 하여금 단군측에 합류하여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로서 14세의 어린 나이로 감국의 부왕자리에 오르면서 시작된 감족 제부(諸部)들 간의 세력다툼은 부왕단군의 완승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부왕 단군이 불과 4년간의 짧은 기간에 자신의 어림군을 일으켜 분국(分國)으로 치닫던 감족연합의 내란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제 부족장들을 일방적으로 복속시키자 그동안 그의 행보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외조부인 감국왕은 단군의 능력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왕권을 단군에게 이양한 후 자신은 상왕의 자리로 물러나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로서 부왕 단군은 어머니 웅녀황비의 뜻대로 외조부(外祖父) 감족왕[熊族王]을 안전하게 보호해 냈으며, 멸망의 길을 걷던 감족연합[熊族聯合]을 다시 일으켜 단군 일인의 명령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단결된 감족의 부족연합국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 때부터 단군은 늙은 상왕(上王) 외조부의 은퇴를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즈음, 단군의 님감성[壬儉城]으로 부여집단(夫餘集團)의 사신(使臣)들이 찾아와 단군에게 알현을 청해 왔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대로 멀리 서방(西方, 훅泰山)으로부터 진출해 온 알타이 부여족(夫餘族, 虎族)들로서 이미 수십년 전부터 그 모습을 나타내어 호시탐탐 감족의 영역을 침범하며 감족 존망에 절대적인 위협을 가하던 집단이었다. 물론 단군은 이들을 최대의 경계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지난 제1차의 대규모 침략때는 어머니 웅녀황비의 간청으로 커붉단 한웅님이 신시 배달군을 출동시켜 부여족을 축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부여족은 선발대의 뒤를 따라 도착한 부족들로 인하여 그 수효가 늘어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지난번보다는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군은 부여의 사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미리 분석해 보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감족의 영토를 탐내고 있던 그들이었고, 이를 미리 예지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던 단군이었다.

이들은 분명히 자유무역을 전제로 상당한 영토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새로이 님검의 권한을 위임 받은 단군의 자질을 분석하고 시험하려는 목적과 한발 더 나아가 단군이 이끄는 감족연합의 전투력 등을 정탐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이미 부여 사신들의 방문목적을 간파한 단군은 먼저 사신들을 성밖에 격리시켜 대접하게 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는 한편 성내에는 장막을 세우고 정예군을 동원하여 엄격한 군율로 다져진 모습을 과시하도록 하였다. 부여의 사신들에게 막강한 감군의 위용을 보여 침략의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였다.

그로부터 3일이 경과하자 의기양양하게 행차하여 왔던 부여의 사신들은 감국의 차가운 냉대에 차츰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여의 사신들이 초조하게 기다린지 4일째가 되자 비로소 단군의 알현을 허락한다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드디어 님감성[壬儉城]에 들어간 사신들은 도성(都城) 안에 도열한 감군의 엄청난 위용을 보고 크게 놀랐다.

부여의 사신들은 군사들의 무장 상태와 병장기들을 살펴보았다. 전투에 있어서는 자신만만 했던 부여의 사신들은 아직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던 감족들이 어느새 자신들의 최신 병장기들을 모방 제작하여 무장하고 있음을 보고 단군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윽고 사신들은 단군 앞으로 인도되었다. 보통의 경우 사신들은 왕궁에 들어 왕을 배알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안내된 곳은 궁전이 아닌 야전용 막사였다. 감족연합국의 님검[壬儉]이신 단군은 뜻밖에도 전투용 투구에 갑옷을 입고 병사용 군 막사에서 사신들을 맞았다. 일국의 왕이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닥쳐올 외적의 침략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면 이 나라는 더이상 소문으로 듣던 허약한 감국이 아니었다.

부여의 사신들은 젊은 단군의 치밀함에 감복하여 처음의 오만함이 사라지고 공손한 자세로 부여 군장의 국서를 바쳐 올렸다. 죽간에 기록된 국서(國書)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부여족들에게 대왕의 영지를 할애하여 같이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앞으로 부여족과 감족간의 무력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부여족은 농사를 경작할 줄 모르고 목축으로 생활을 영위하므로 넓은 초원을 요구하는바 이런 조건만 들어준다면 감족과 부여족은 한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부여군장의 국서는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협박장이었다. 단군은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염려하고 있었던 운명의 시간이 드디어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감족연합의 사활이 걸린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시점이 단군에게 너무나도 불리했다. 단군은 이제 겨우 감족의 통일을 이루기는 했으나 아직 감족전체의 운명을 걸만한 준비를 다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사신으로 위장한 적의 간첩들 앞에서 의연하고 자신감 넘치게 행동해야 했다. 가능하면 적의 사신들이 감군[熊軍]의 전투능력을 오판할 수 있도록 역정보를 주어 적을 혼란에 빠뜨려야 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자신의 정예병을 총동원하여 사신들에게 감족의 전투의지를 과시했던 것이다. 과연 부여의 사신들은 부여군장의 무뢰한 국서에 전혀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냉소적인 미소를 흘리는 단군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