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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5장 부왕단군(副王檀君)

외조부(外祖父) 의 족 나라에서 나이 14세에 부왕(副王) 이 되어
배달국을 이을 때까지 전쟁터에서 18년을 보낸 영웅 단군

부왕단군(副王檀君) 3

바로 이때 젊은 부왕 단군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비서갑(非西岬-烏蘇里江)1)의 흥개호(興凱湖) 관리를 맡고 있는 하백(河伯)2)의 딸이었다.

본서는 이번에도 웅녀황비(雄女皇妃)의 경우처럼 그녀의 본명을 기록한 사료를 찾을 수가 없어, 우선 하백녀(河伯女)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리의 고서(古書)들은 그녀가 비서갑 출신이라는 뜻으로 비서갑 황후(非西岬皇后)로 호칭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의 본명은 아니다. 어쨌든 당돌하고 꿈도 많은 이 처녀는 일찍부터 부왕 단군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시집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때마침 부왕 단군이 흑수부로부터 귀경길에 이 고장을 지난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야영(野營)할 것으로 보이는 비서갑의 강변에 미리 나아가 대담하게도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비서갑의 하백녀와 부왕 단군의 로맨스를 기록한 사서는 없다. 다만 북만주 완달산(完達山) 내에 있는 보청현(맥淸縣) 소목하(小木何)와 영안(寧安), 영춘진(迎春鎭)의 향토사학자들로부터 수집한 많은 구전(口傳)들 중에 하백녀와 단군의 이야기가 보이는데 이 마저도 고구려 건국의 영웅 고추무의 탄생비화와 얽혀있어 감별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의 역사에 나타난 남녀의 로맨스는 웅녀황비(雄女皇妃)나 유화부인(柳花婦人) 그리고 소서노(召西努)여왕, 평강공주(平岡公主)의 예에서도 보듯이 언제나 여성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이성관계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타는 한국 남성들에 비하여, 원하는 남자를 기어코 손에 넣고야 마는 한국 여성들의 적극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때 젊은 청년 단군은 병사들의 야영지를 찾아 나섰다가 비서갑의 맑은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하백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단군은 갑자기 젊은 기운이 발동하며 마치 마법에 끌리기라도 한 듯 그녀에게 접근해 갔다. 이렇게 하여 청년 단군은 하백녀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어 빠져나올 수 없었고, 한민족 최초의 국모(國母)는 자연스럽게 하백녀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후부터 하백녀의 이름을 비서갑황후(非西岬皇后)로 부르기로 한다. 왜냐하면 고구려본기 제6권(高句麗本紀 六)과 가섭원 부여기(迦葉原夫餘紀)등이 전하는 고추무(고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도 서압록의 하백녀로 비서갑의 하백녀(河伯女)와 이름을 서로 혼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바 있지만 하백(河伯)이란 강을 관리하는 벼슬로서 엄격히 말하자면 하백녀가 아니고 하백의 딸이라고 해야 옳은 호칭이 될 것이다.

하백(河伯)이라는 벼슬의 명칭은 우리의 옛 사서(古史書)에 자주 등장하는 미스터리(Mystery)이다. 지금까지의 사가(史家)들은 하백이 언제나 물과 관련지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물의 신(水神)’으로 해석했고 그의 모습은 용과 관련지어 묘사하곤 했다. 따라서 본 필자도 처음에는 여러 참고문헌의 기록대로 하백을 ‘호수의 신’ 혹은 ‘하천의 신’ 정도로 해석 하였었다.

그러나 우리 고대사에 나타나는 옛 지명들과 이들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들을 현장 검증해 가는 과정에서 강물줄기들 간의 상관관계가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악산(嶽山)과 골(汨) 등 깊은 계곡이 많은 만주의 동방지역은 중앙정부와의 교통에 있어서 단순히 우마(牛馬)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지형적인 특수상황을 놓고 볼 때, 수로(水路)를 이용한 물류의 운송은 국가운영에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중점 관리 대상이었다. 따라서 큰 강줄기나 호수에서 또 다른 강으로, 그리고 다시 작은 하천줄기까지의 연결 수로와 육로(陸路)로의 연결망은 국가적인 기간(基幹, Nucleus infra)시설로 수로관리자의 직급 역시 상당수준의 고급인력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백은 나라의 동맥을 관리하는 귀족으로 작지 않은 세력을 가지고 지방 호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급 관리자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비서갑(非西岬) 지방의 하천을 관리하던 장관 하백(河伯)의 따님 하백녀(河伯女)가 대쥬신제국[大朝鮮帝國]의 시조 단군성조(檀君聖祖)의 황후(皇后)가 되는 과정을 소목하(小木河)의 전설을 통해 알아보았다. 이 전설이 학술적으로 뒷받침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나 그래도 그대로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귀중한 자료로 보고 여기에 인용하기로 한 것이다.

좌측에 소개된 여인은 김산호가 그린 비서갑 황후의 모습이다. 민족통사를 그리고 있는 본서에 대쥬신제국 최초의 국모이신 비서갑 황후의 존영을 빠뜨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국모의 모습이 나타난 역사적 사료를 찾아보았으나 그 모든 노력은 헛되이 실패했고 이제야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여 표현해 보았다.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살펴보면 우선 황후의 모습을 전통적인 한국여인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기품이 우러나오도록 하였다. 복식은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긴 도포형을 입는데 반하여 우리 민족은 바지 또는 치마가 각각 떨어지게 만들어 입는 특징에 따랐다. 이 경우 저고리의 옷깃이나 소매 끝에 본바탕과 대칭되는 색깔의 전(띠)을 두르는 것이 특색이긴 하지만 이를 피하고 고운 비단천의 황실복식으로 하였는데 이 시대의 비단천의 발전 수준에 관해서는 본서 제7장에 세밀한 설명이 있을 것이니 이를 참고하기 바란다.

1) 비서갑(非西岬) : 서만주의 우수리강(Ussuri-烏蘇里江)

2)하백(河伯) : 호수나 하천의 관리자.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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