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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3장 성모웅녀(聖母雄女)

쥬신제국[朝鮮帝國] 시조 단군님의 어머니는
웅녀(熊女-곰 암컷)가 아닌 웅녀(雄女-한웅의 여인)이다.

제후국(諸侯國)들 간의 격돌(衝突)

커불단한웅이 천황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에 돌연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예사롭지 않은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동안 신시(神市) 배달한국[倍達桓國]의 충실한 제후국(諸侯國)으로 백두산 일대에 넓게 자리잡은 감족[熊族]들의 나라가 근래에 들어 갑자기 나타난 서쪽 범족(虎族)들의 도전을 맞아 수년 동안 전쟁을 하며 국력이 많이 쇠약해져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의 만주대륙은 신시 배달한국이라는 절대적인 종주세력 밑에 지방 영주들이 자치통치하는 제후국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이때의 국가 형태를 현대적인 개념으로 보면, 하나의 강력한 종주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배달 연방제국’ 체제인데, 이러한 정치 형태는 고대에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이런 정치제도권 안에서 지방 제후국들 간의 충돌은 늘상 있어왔던 일이었고 그때마다 중앙정부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불이익을 당한 쪽의 반감을 불러와서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후국의 어느 한쪽이 다른 제후국을 멸망시키는 사건이 일어나면 이는 승전국의 세력이 그만큼 확장되어 종주권에 대한 잠재적인 도전세력이 될 수 있으므로 종주세력의 입장에서는 이를 묵과할 수 없게 된다.

그럼 이때 감족[熊族]의 영역을 침입하고 있는 범족(虎族)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옛 기록들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족의 이웃에 또 하나의 종족이 보이는데 고기(古記)는 이들을 범(虎)족이라고 쓰고 있다. 호(虎)는 호랑이를 뜻하므로 감족을 곰(웅•熊)족으로 쓰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과 분쟁상태에 있는 그들을 호(虎)족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三國志)’의 ‘위지(魏志)’에 “예(濊)족들은 범을 산신(山神)으로 모셔 제사 지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신화상에서 호족(虎族)으로 나타나는 집단이, 역사의 기록상으로는 ‘예족(濊族)’이라는 종족명칭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예족’에 관해서는 추후에 다시 밝히겠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면 ‘예족’은 바로 알타이 부여족을 지칭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만주대륙에 나타나 감족[熊族]의 영역을 침략하는 부여족(夫餘族)도 사실은 고향땅의 환란을 피하여 새롭게 정착할 피난처를 찾는 유랑민족이었다. 원래 이들 부여족의 고향땅은 알타이산맥을 등지고 서쪽으로 펼쳐진 대초원으로서 넓은 초원을 무대로 평화롭게 목축으로 살아가던 정통 기마민족이었다.

그런데 돌연 우랄산맥의 남부와 북부 이란고원의 선진적인 전투기술을 습득한 이민족들의 파상적인 침략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민족적인 파멸이라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게 되었다.
이처럼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 가운데 부여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족장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회의의 결과,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하는 야만적인 서부 유목민족들의 엄청난 공격에 맞서 부족의 안전을 지켜내기에 역부족이라는 결론에는 모든 족장들이 동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부여족 전체가 함께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각 부족별로 따로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당시의 부여족들에게는 전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줄 강력한 대칸(Great Kahn)이 없었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대족장회의가 하나로 합의된 결론을 내리는데 실패하자 참을성이 없는 부족장들은 대족장회의의 결론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개별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에 불안을 느낀 또 다른 부족들도 그들의 부족들을 이끌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고향땅을 떠나갔다. 이렇게 하여 한때 중앙아시아를 누볐던 부여족들은 천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물론 일부 감상적인 부족장들은 오랜 생활의 근거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을 거부하며 그들의 부족과 함께 남아 끝까지 고향땅을 지키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좀더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일부 부족장들은 그들의 부족들을 이끌고 태양이 솟는 동쪽의 만주대륙을 신천지로 바라보고 움직여 갔던 것이다.

이때 동쪽으로 향했던 부족들이 꿈의 동방대륙에 당도하고 보니 그곳엔 그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동해 온 천산 쥬신족들이 벌써 현지의 원토인족들을 정복하고 배달한국이라는 강력한 제국을 세워 통치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심이 강한 기질의 부여인들은 타 부족민을 우선 경계하는 본능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런 습성은 오랜 세월동안 유목민족으로서 무법이 난무하는 초원에서 살아남은 생존의 법칙이 그러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단 한번도 문명국의 제도권 안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부여인들로서는 우선 천황의 법에 복종을 맹세한 후, 천황의 자비에 의존하여 한정된 영지를 할양받고 정착을 허용받는 문명제국의 제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리하여, 소위 난폭한 범족(虎族)으로 기록된 부여의 선발대는 배달한국의 제후국들 중 가장 허약하면서 순박한 기질을 가진 감족[熊族]의 영토에 욕심을 내고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신시 아사달에서 지방 제후국들 간의 자리다툼을 조용히 주시만 하고 있던 커불단 한웅은 원토족 국가인 감족의 나라가 신생 범족들의 사나운 공격을 막지 못하고 토멸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보고를 받고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 싸움의 당사자들을 모두 성도(聖都)로 불러 올렸다.

전쟁의 양측 책임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잠시 휴전을 전제로 적당한 선에서 대화로 타협하여 평화적인 공존의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 한웅천황의 의도였다.
그러나 천황의 뜻을 왜곡하여 생각한 양측은 이번의 어전회의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받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 서로 상대측의 부도덕한 행위를 질타하였다. 제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해도 양측의 주장이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해 보였고 급기야는 인신공격까지 더해지며 협상의 분위기는 더욱 더 나빠지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이번의 휴전협상은 그 시작부터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수천년 동안 자리 잡고 살아오는 감족(토족-농경족)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무례하게 창칼로 위협하며 빼앗으려는 범족(부여족-기마족)들에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고, 혹시 천황의 중재 노력에 화답하는 의미로 일부 영지의 할애에 동의하여 준다하여도 목축을 주업으로 삼는 범족은 넓은 땅을 필요로 하여 양측의 요구를 서로 만족시키기는 처음부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로서 어렵게 마련한 천황의 중재는 보람도 없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 남은 길은 힘의 논리대로 해결되도록 묵인하거나 아니면 그동안 지켜오던 배달한국의 불문율(不文律)인 제후국들 간의 다툼에 불개입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천황이 직접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길 뿐이었다.
아사달의 평화협상이 결렬되자 범족들은 더욱더 격렬하게 감족들을 공격해 들어갔고,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감족들의 필사적인 방어는 그 맥을 다하며 풍전등화 같은 멸족의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천황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천의 강력한 기마군단(騎馬軍團)을 파견하여 이미 감족의 영토 깊숙이 들어가 있는 범족군의 후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천황군의 출현에 범족 군단의 장군들은 크게 당황하며 그동안 감족의 왕성을 철통같이 포위했던 주력군을 되돌려 천황군을 맞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감족군은 천황군이 감족을 구하기 위하여 범족군의 배후에 나타났음을 알고 사기가 충천하여 모두 성밖으로 나와 범족군을 앞뒤로 공격하니 범족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모두 국경 밖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럼 커붉단 한웅천황이 그동안의 전통을 깨고 제후들의 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의 이유로 볼 수 있는 것은 범족이라는 위협적인 이름(별칭)으로 우리 역사에 등장한 부여족들의 강력한 전투능력을 보고 이들을 언젠가는 배달제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세력이 될 것으로 판단했었을 가능성이다. 이것은 나라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집정관으로서 당연히 판단 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의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출정 이유가 보인다. 그것은 궁지에 몰린 감족의 왕이 은밀히 펼친 현대적 개념의 로비(Lobby) 활동에 있다.

감족왕[熊國王]은 감국의 지신(地神) 지위에 있던 외동딸 녀(무녀,巫女, 熊女) 공주를 아사달 천황성으로 보내 커붉단 한웅과 정략적(政略的)인 국혼(國婚)을 성사시키고 한웅(桓雄)의 부인 웅녀(雄女) 황후(皇后)의 영향으로 천병(天兵)을 출병시켜 범족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이쯤에서 본론을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단군신화라고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의 기이(紀異) 제2편 고조선(古朝鮮)편에 기술되어있는 단군의 탄생 비화를 원문대로 소개하기로 한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서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는데, 요(堯)나라와 같은 때였다.1)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께서 천하를 헤아리려는 뜻으로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아들의 뜻을 아신 아버지는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 살펴보고 한웅에게 천부인 3개를 주어 보내어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은 3천명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렸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며, 그를 환웅천황(桓雄天皇)이라고 부른다. 천황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와, 곡식(穀食)•수명(壽命)•생명(生命)•형사(刑事)•선(善)•악(惡) 등을 각기 주관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무릇 3백 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려 교화 시켰다.

이 무렵, 곰(熊) 한 마리와 범(虎)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고 있었는데 늘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환웅은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되 햇빛을 1백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족히 얻으리라.” 곰과 범은 이를 얻어서 먹었다.
곰은 그것을 지킨 지 삼칠일(21일)만에 여자의 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은 능히 지키지 못하여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는 고로, 매양 신단수 밑에서 잉태하기를 바라며 축원했다.
이에 환웅은 임시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를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이름 했다. 이때가 요임금이 왕위에 오른지 50년째 되는 해로 경인년(庚寅年) 이다.”

이 이야기는 민가에 전해오는 전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지만 그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여 보면 당시에 실제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유추해 내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민족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땅의 원토족과 제2기의 이민집단인 천산 쥬신족, 그리고 아직은 진출 초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3기 이민집단인 알타이 부여족이라는 3개의 민족집단이 초기 한민족 구성의 3대 핵심 민족집단임을 알았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무대는 아직 상고사의 여명기에 해당하여, 선주세력인 감족과 새로 진출해온 천산 쥬신족들간의 결합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단군신화의 비밀을 풀어 보기로 하자.
우선 단군신화는 이 땅의 가장 오래된 주인으로 선주 농경토족인 감족[熊族]을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지신족(地神族)의 의미로 이들을 녀[雄女]로 지칭하고 있다. 한편 이 땅으로 새로 진출해 온 천산 쥬신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족으로 부르고 있다.

그 동안 쥬신 천손족 18대 한웅들의 통치에 눌려 살며 반목을 거듭하던 원토족인 감족들은 배달한국 말기인 커붉단 한웅 치세에 이르러 새로운 침략세력인 알타이 부여족을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기로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는 땅을 지배하는 감족을 웅녀로 표현했고, 천산 쥬신족을 천손족(天孫族)으로 하여 하늘과 땅을 결혼시킴으로써 두 종족의 역사적인 결합 장면을 드라마틱 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의 “단군이 죽어야...”에 의하면 일본 홋카이도(北海島)의 아이누족2)은 20세기 초까지도 곰(熊)사냥에 슈루쿠(しゆるく)라고 하는 독약을 사용하였는데 이 독약의 원료가 바로 쑥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곰이 쑥을 먹고 죽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이 되었다는 일연(三國遺事)의 기록은 터무니 없이 잘못 꾸며진 이야기일 수 밖에 없고, 이따위 이야기를 정사라며 믿도록 교육시켜 온 강단사학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1) 고조선의 건국연대에 대하여는 앞서 36쪽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아이누말로 곰을 감뮈(kamuy)라고 한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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