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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4장 시조단군의 유년시절

민족의 시조 단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

단군의 유년(幼年)시절

우리의 옛사람들은 한민족의 시조를 단군으로 보고 그를 경배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단군의 아버지인 한웅의 나라를 몰랐을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배달민족(倍達民族)이라고 부르면서 배달국[倍達桓國]의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 보아도 단군 이전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한웅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인색했을까? 그 이유는 천해로부터 이 땅으로 들어와 이 땅의 주인인 족(원토족)을 정복하고 지배해 온 커밝한 한웅의 천산 쥬신족을 이민족으로 보고 있었던데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커붉단 한웅 치세에 이르러 알타이 부여족의 강력한 침략을 맞게 되자 쥬신족과 감족들로 하여금 민족공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갖게 했고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가 연합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감족의 왕녀와 쥬신족의 한웅이 결합했고 그 결과 감족과 쥬신족 모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군이라는 새 인물이 탄생된 것이다. 이로부터 쥬신족은 정복지배자라는 우월한 신분적 차별을 버리고 감족들과 한민족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민족적인 정서로 볼 때 진정한 한민족의 탄생 분기점인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보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단군(檀君)이 ‘밝은 땅의 임금’의 뜻 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러면 그가 단군의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 사용했던 이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본 필자는 지난 십수년간 천지사방을 다 뒤져 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단군의 본명을 찾는데 실패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추측컨대 옛 사람들이 단군 같은 위대한 성인의 함자를 무엄하게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단군이라는 왕호를 본명처럼 사용했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본서도 단군의 유년시절 이름을 감히 고유명사 단군으로 쓰기로 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바랄뿐이다.

단군이 커붉단 한웅의 제3황자임은 이미 밝힌바 있다. 그러나 감족과 쥬신족 화합의 화신인 단군은 탄생과 더불어 태자의 지위를 얻는다.

아기 단군이 무사히 첫돌을 맞았을 때 아버지인 한웅천황과 어머니 웅녀황비는 아기단군을 데리고 백두성산의 하늘못(天池)에 올라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하늘의 백성인 하늘민족(민족-天孫族)을 이끌어줄 단군을 내려주심에 감사함을 고(告)하였다.

이때 하늘은 쌍무지개를 하늘못에 곱게 띄워 단군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한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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