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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6장 단군의 천하통일

알타이 부여족의 강력한 도전을 물리치고 국을 배달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키워낸 단군의 위업

황자(皇子)들 간의 내란(內亂)

이리하여 두 황자는 그들의 가솔병(家率兵)을 모조리 소집하고, 또 지금까지 그들을 지지했던 귀족 대칸[大汗]들의 보유병력을 총 동원하여 거대한 반단군(反檀君) 연합군을 형성한 후 말로만 듣던 단군의 원정군에 맞서 출병하였다.

사실 두 황자들은 감족 출신 계모인 웅녀황비의 소생인 이복동생 단군을 처음부터 껄끄러운 경쟁자로 보았다. 따라서 일찍부터 그를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려는 공작을 은밀히 진행했었다. 그러나 웅녀황비가 이를 미리 감지하고 어린 단군을 외조부의 나라로 망명시켜버리는 바람에 어린 단군을 제거할 기회를 놓쳐버렸던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어릴적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며 단군은 이미 감족의 임검이 되었고 이제 와서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것이다. 어차피 한번은 숙명적으로 넘어야할 최대의 장벽이므로 이제 그들의 역량하에 있는 모든 것을 투입하여 단판 승부로 운명을 결정지으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반단군세력이 주축을 이룬 황자 형제의 연합군은 천도(天都)의 남쪽 백리지점에서 미리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던 단군의 어림군(御臨軍)과 조우(遭遇)하게 된다.

이 싸움은 양군 병력이 그 수효 면에서 엇비슷하여 장기전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싸움은 황자 연합군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두 황자들은 군을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각각 지휘하였는데 전공(戰功)을 선취(先取)하여 유리한 입지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경쟁적으로 정예 기병군단을 선봉에 투입하고 단군의 어림군을 얕보기라도 하는 듯 초전부터 맹렬한 기세를 올리며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단군의 감군[熊軍]은 이미 부여족과 십년전쟁을 거치면서 강병(强兵)이 되어 있었다. 과거 쥬신족이 알던 감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자군의 선봉은 정예 기병군단이었다. 이들은 단군의 선봉이 보병대임을 보고 마치 쥐를 본 고양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단군의 선봉군 대열이 갑자기 흐트러지며 마치 대문이라도 여는 듯 양옆으로 갈라졌고, 그 가운데로 기마살상(騎馬殺傷) 전문부대인 장창대(長槍隊)가 튀어나와 영문도 모르고 달려드는 기병들의 말을 공격하였다.

돌연 20척(尺)도 넘는 장창에 찔려 아픔의 고통으로 마구 날뛰는 말들의 비명소리, 말에서 떨어져 제가 탔던 말에 짓밟히는 기병(奇兵)들의 괴성, 그리고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어 무조건 선대의 뒤를 따라 주검의 수렁으로 뛰어드는 후속 기병들의 아우성 등 황자군의 선봉 기병군단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속에서 허우적대며 무너져 갔다.

황자연합군의 최선봉에 섰던 정예 기병군단이 단 한번의 전투에서 어이없이 전멸 당하자 중군을 지휘하던 두 황자와 그의 뒤를 따르던 본군의 병사들은 감족연합군의 가공할 전투력에 크게 놀라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기가 꺾이고 전투의지가 사라지자 병사들은 걷잡을 새도 없이 전열(戰列)을 이탈하며 제각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한 두 황자는 그들이 힘으로는 아우 단군을 당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 남은 길은 항복하거나 아니면 우선 목숨을 구하고 훗날을 기약해 보는 양자택일 뿐이었다. 이때 두 황자는 아우에게 항복하기 보다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결정하고 도주하는 병사들 속에 섞여 그 몸을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황자들 간의 오랜 반목은 단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승자 단군은 도주하기를 거부하고 현장에 그대로 남아 항복하는 신시의 병사들을 모두 거두어 자신의 어림군에 합류시켰다. 피로 물들였던 전장을 깨끗이 수습한 단군은 비로소 대연합군단을 천천히 움직여 천도(天都) 신시 아사달(神市 阿斯達)로 향하였다. 천도에 도착하니 도성의 성문은 단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칸[大汗]들에 의하여 크게 열려있고, 성내에는 모든 백성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새시대 새주인의 입성(入城)을 열렬히 환영하며 맞아들였다.

두 형님 황자들의 위협을 피하여 감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단군은 무려 24년의 세월을 이기고 이제 떳떳한 천황성(天皇城)의 주인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어머니 웅녀황비의 간절한 소망을 받들게 된 것이다.

단군을 영접한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은 커붉단 한웅이 노환으로 급히 살펴야 할 정무가 산적하게 밀려 있으므로 부황을 상황으로 모시고 단군을 배달한국의 제19세 한웅위에 추대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당사자인 단군은, 무려 18대 한웅[桓雄]님들을 거치면서 1565년간 천하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세력을 떨치던 배달국[倍達桓國]의 황통을 과감히 버리기로 결심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배달한국의 신시 정부가 천산(天山) 쥬신족[朝鮮族]을 지배계급으로 정하고 그 외의 민족들을 모두 노예계급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도록 하는 것을 불문율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군자신이 이끌던 원토족 족[熊族]연합과 새로 합류해온 알타이 부여족(훅泰•Altaii-夫餘族) 그리고 이제 새로 인수받게 된 배달 쥬신족[倍達朝鮮族]을 모두 통합하는 진정한 천하통일을 꿈꾸는 단군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으며 단군은 다같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통합국가 대쥬신제국[大朝鮮帝國]의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은 이처럼 혁신적인 새나라 건설계힉을 공포하고 이에 뜻을 같이하는 중신들과 함께 이미 맥을 다한 신시 아사달을 떠나 남쪽 단군의 고향땅 백두산하의 임검성(壬儉城)으로 떠났다. 이때의 정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사서(史書)중에 단군세기(檀君世紀)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10월 상달(上月)이라 함은 정월달이라는 뜻이다. 당시의 유목민들은 목성(木星)이 1회 공전하는 12년에 근거한 12개월 역(曆)을 사용하였는데 지금의 10월 3일을 동지(冬至)날로 정하고 동지제를 지내면서 동짓날을 음력 정월 초하루로 삼았다.

“개천1565년, 상달(上月-10月) 3일에 이르러 신인(神人) 임검(壬儉)이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檀木)의 터에 자리를 잡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의 단군임검(檀君壬儉)은 오가(五加)의 장관들과 더불어 단군의 지배 영역에 속한 크고 작은 부족들을 총 망라하여 그들 각각의 부족들을 대표하는 부족장 800여명을 이끌고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의 하늘못(天池)가에 올랐다.

이 대천제(大天祭)는 신탁(神託)을 받은 단군 스스로가 제주(祭主)가 돠어 새나라의 건국을 하늘에 고(告)하고, 이제 하나의 민족으로 결집을 맹세하며 단군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는 모든 족파의 안녕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민족적 행사였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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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ngchl 180.69.134.149 2013-02-23

    훌륭한 발견입니다. 다만 쥬신제국 개천, 단군 역대기, 후단군쥬신 역대기, 단군쥬신 후기 등도 수록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

  • 박현정 218.152.145.52 2007-03-31

    헤헷, 조사보고서에 참고자료로 좋은내용이네요~~^^

  • 윤복현 124.28.6.174 2007-01-03

    쥬신족(한웅-한웅족)과 부여족(호랑이족)을 통합한 만주와 한반도의 원토족인
    감족(곰족)의 부왕이자,커불단 한웅의 셋째 아들 단군의 한민족통합을 함축한 이야기가
    단군신화의 실체이군요...단군의 리더쉽에서 민족통일의 해법도 찾을수 있다고 봅니다.

  • 윤복현 124.28.6.174 2007-01-03

    김산호님 감사드립니다..풀리지 않던 단군신화의 실체가 많이 풀렸습니다..

  • 다물넷 124.80.69.130 2006-12-11

    전시회 끝내고, 부여사 책편집 완료한 후에 이순신을 작업할까 합니다. 내년 초반쯤이 되지않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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