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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6장 단군의 천하통일

알타이 부여족의 강력한 도전을 물리치고 국을 배달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키워낸 단군의 위업

단군의 천하통일(檀君의 天下統一)-2

이때 부왕 단군은 다음과 같은 답서를 부여군장에게 보낸다.

“만약 너희들이 머물 곳을 구한다면 부여족이 살 수 있을 만큼의 땅을 할애하여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땅은 예로부터 감족들을 위하여 하늘이 내려준 성역(聖域)이므로 너희들이 먼저 남의 것을 무단으로 빼앗겠다는 마음을 씻고 감족연합의 왕에게 복종과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너희들의 뜻이 진실되고 신속(臣屬)하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감국[熊國]의 백성(百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그 행동에 진실성이 없다면 곧 군(軍)을 일으켜 징벌할 것임을 명심하라.”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감족의 운명이 되었다. 어쩌면 감족만으로는 서방에서 진출해 온 부여족들의 엄청난 기마군단을 막아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신시(神市)의 부왕(父王) 커붉단 한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노쇠(老衰)한 기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고 어머니 웅녀황비는 한웅의 병간호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두 황자 형님들의 황태자 쟁탈전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제후국에 닥친 국난을 돌볼 여지가 없어 보였다.

마침내 단군은 중앙정부를 전시(戰時) 비상체제로 신속히 개편하고 감족연합의 대부족장회의를 소집하여 전쟁준비의 시급함을 알렸다. 이에 대족장회의는 만장일치로 부여의 침공군에 맞선 전쟁행위를 승인하고 그 총사령관에 왕권을 위임받은 단군을 선출하여 감족의 운명을 단군의 지도력에 맡기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 감족연합은 즉각 실시된 국가적 총동원령에 따라 각 부족들이 갹출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장병 징집과 군수품 공출 등이 실행되었고, 그 결과로 단군자신도 스스로 놀랄 정도로 민족적인 결속이 빠른 시간내에 이루어져 갔다.

그 동안의 감족은 각 부족들간에 서로 제 부족들의 이익만 먼저 챙기려는 집단적 이기주의 풍조 때문에 서로간의 신뢰가 실종되고, 단결의 의지가 없어, 외세의 침공을 맞을 때마다 미리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버리는 불명예가 반복되어 왔었다. 그런 감족연합이 지금 단군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만나 기적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단군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감족연합의 결속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고, 감족에게 타성적으로 만연해 있던 노예근성을 축출해 냈으며, 감족을 다시 씩씩한 상무정신으로 무장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감족[熊族]과 부여족(虎族)간의 전쟁이 부여족의 침공을 시작으로 그 막을 열었다. 그동안 단군이 은밀히 파견한 별동부대들은 적정을 탐지하는 임무에 더하여 몇 명의 부여군을 생포하는 성과를 올렸다. 더구나 단군은 간단한 포로 심문을 통하여 벌써 적의 예상 침입로를 간파하는 행운을 얻었다. 전쟁에 있어서 초전의 승리는 양군에 끼치는 엄청난 사기 문제로 연결되어 전쟁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게 만들기도 한다. 단군은 초전에 적군의 사기를 무참하게 꺾어놓을 작전을 세우고, 수하 장수들에게 적의 선봉을 철저하게 섬멸할 수 있도록 치밀한 작전명령을 내렸다.

적의 진격 예상로를 선점한 후 지형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병력을 미리 매복시켜, 부여군이 나타나면 이들을 순식간에 포위하여 적장이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함정에 빠진 선봉군을 강공으로 섬멸시킨다는 전략이었다.

결전의 그 날이 다가오자 감군의 첩자들은 적의 선봉부대가 약 2천명의 기병(騎兵)들로 조직되어 있다는 첩보를 알려왔고, 단군은 이에 맞서 3천명의 보기군(步騎軍)을 투입하여 전투의 승리를 담보하려고 하였다.

모든 것은 단군의 예상대로 움직였고 검은색 장기(將旗)를 높이든 부여군은 단군이 쳐놓은 함정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왔다. 이로서 승리는 확보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드디어 단군은 총공격의 신호를 올렸고, 이에 따라 매복하고 있던 감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부여군을 섬멸하기 위하여 뛰어 나갔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감군의 매복 기습에 부여군의 대장은 잠시 놀란 듯 주춤하더니 곧 장기를 흔들어 행군대오(行軍隊伍)를 전투대오(戰鬪隊伍)로 만들고 감군[熊軍]의 공격을 맞받아치니 양군은 순식간에 서로 어지러이 얽히며 난전(亂廛)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일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고, 병력도 적병보다 무려 일천명 이상을 더 투입하여 일거에 섬멸하려던 작전이 생각보다 어렵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절에 걸친 전투로 양측은 막대한 희생을 발생시켰지만 싸움의 승패는 가늠할 수 없었다. 드디어 땅거미가 내려 앉을 무렵 초조한 단군은 후방에 있던 예비병력을 추가로 전장에 불러들였고 이를 본 부여군이 서서히 말머리를 돌리면서 피비릿내로 얼룩진 제1전이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전투를 이기지 못한 단군은 첫날의 이상한 전투를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적병은 완전한 기병군단인데 반하여 감군은 보병과 기병의 혼합군으로써, 적병의 기병들이 마음대로 기동하는데 비해 감군의 기병들은 아군 보병들과 섞여 움직이느라 기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로서 단군은 보병의 전투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적의 기병을 제압할 수 있는 기병 척살용 장창(長槍)으로 무장한 보병부대를 조직하게 된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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