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1장 단군역사개관(檀君歷史槪觀)-고대사개관(古代史槪觀)

우리 한민족의 생존적, 역사적 벨트(belt)는 바이칼 호수로부터 몽골초원
그리고 만주대륙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까지 연결된다.

지금까지 서양의 영향 하에 무심코 받아들였던 일반적인 상식이 사실은 서양의 종교관에 매달려 꾸며진 억지 학론이었음이 차츰 밝혀지고 있다.
서양의 정신적, 종교적인 세계는 기본적으로 유태교와 기독교인데 그들의 가장 오래된 경전(經典)인 구약성경에 의하면, 여호와(Jehovah)를 창조신으로 하여 아담과 이브가 태어난 것이 불과 6천년 전이어서 인류의 역사 역시 6천년을 상한선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의 고고학(考古學)은 인류의 출현을 250만년 전이라고 밝혔다.

만약 현대의 고고학의 정의를 믿는다면 그들 스스로 그들의 성서(聖書)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아울러 이단자(異端者)로 몰려 그들 사회에서 온갖 핍박을 각오해야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고고학에서 주장하는 250만년 전의 인류는 인간의 영혼이 없는 유인원(類人猿)으로 원숭이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정리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담과 이브의 탄생으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인류의 옛 조상들은 유인원의 진화론으로 교묘하게 정리하는 속임수를 학계의 정론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서양문화 신봉자들은 그들의 선입견을 수정할 생각은 접어두고 우리의 고서들이 밝히고 있는 우리민족의 9000년 역사를 조소(嘲笑)로 일관하고, 신시배달한국(神市倍達桓國)의 5900년의 역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마저도 모조리 신화(神話)로 돌려 버리는 경솔한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고 있다.
참고로, 한반도의 구석기(舊石器) 유적(遺蹟)들만 살펴보아도 그 역사가 40만년에서 80만년 그리고 심지어는 100만년 전까지 소급해 올라가고 있고, 우리의 선조들이 먼저 정착했던 것으로 증명되고 있는 만주지방은 이것보다도 아득하게 더 오래되었음이 최근까지의 과학적인 발굴활동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의 역사를 불과 2300년으로 한정해 보려는 식민사관론자(植民史觀論者)들의 학자답지 못한 행위는, 우리의 진정한 고대사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독자들은 다음에 열거된 몇몇의 예를 통하여 한반도의 인류 문명사가 얼마나 소급해 올라갈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1962년, 함북 웅기의 굴포리(屈浦里), 평남 덕천의 승리산 동굴, 평남 상원의 검은모루 동굴, 황해도 평산의 해상 동굴 등에서 나온 발굴품들 그리고 1964년 충남 공주의 석장리(石壯里) 구석기 유적,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충북 단양의 금굴, 청원의 두루봉 동굴의 유적품들이 모두 80만년 전에서 100만년 전의 것들로 판명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따라서 한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경계선을 어디까지 올려 볼 것인지가 문제이다. 민족사는 국가나 왕권의 역사가 아니므로 부족국가의 이전까지도 소급하여 올라갈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류사회의 진화과정을 정치적 진화과정을 흔히 군사회단계(群社會段階, band-society)⇒부족단계(部族段階, tribe)⇒수장국단계(首長國段階, chiefdom)⇒국가단계(國家段階)로 발전해 간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본서 역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국가가 이루어진 단계인 한웅의 신시 배달한국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안타깝게도 배달한국의 주역인 천산족이 동방으로 침략해 오기 이전부터 이미 선주하고 있던 제1기 정착민들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여 감히 그들의 역사를 펼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 대쥬신제국사-밝해 대조영
  •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 대쥬신제국사-추무태왕
  •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 대한민족통사① 치우천황
  • 임진왜란